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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박새가 이소하는 모습
▲ 아기박새 아기박새가 이소하는 모습
ⓒ 대전충남녹색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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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익~'
'삐이익~'


세종보 천막농성장의 마스코트가 된 아기 박새가 재잘거렸다. 천막농성장을 찾은 분이 쓴 모자 끈에 대롱대롱 매달려서였다. 어미새로부터 경계해야 할 대상에 대한 배움을 아직 받지 못한 탓일 것이다. 그래서였다. 주변에 있던 사람들은 앙증맞은 어린 박새를 잠시나마 가까이서 보면서 즐거워할 수 있는 호사를 누렸다. 

천막농성장 앞 박새둥지에 가녀린 울음소리가 들리기 시작한 건 얼마되지 않았다. 아기박새가 태어난 것이다. 창공을 힘차게 날아다니는 비행 연습을 하는 아기 박새들이 여럿 눈에 띈다. 알에서 깨어난 뒤 2~3주간 홀로서기를 하기 위한 이소 절차가 진행된단다. 새로운 세상에 대한 호기심으로 가득찬 아기 박새는 경계심이 없다. 두리번거리는 모습이 영락없는 아기이다.

지금까지는 부모새가 농성천막이 쳐진 한두리대교 교각 10m 지점에 뚤린 구멍 둥지를 들락날락하며 부지런히 먹이를 주는 것만 지켜봤는데, 이렇게 세상밖에 나온 아기박새를 보니 내가 키운 듯 기특하고 대견하다.

그렇게 천막에서도 한 달의 시간이 흘렀다. 아기박새가 알을 깨고 도약을 시도하는 모습을 보니 그냥 흘러간 시간이 아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생명이 태어나고 도약을 연습할 수 있는 시간을 보낸거구나, 생명의 시간은 그렇게 흘러가고 있었구나 싶었다.

세종보 인근에 사는 물살이들... 보 재가동은 생태학살
 
금강에 돌아온 흰수마자
▲ 흰수마자 금강에 돌아온 흰수마자
ⓒ 대전충남녹색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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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29일 물살이연구소(성무성 소장)와 시민단체가 함께 금강에 사는 어류를 조사했다. 다행히 보가 개방되고 줄곧 발견되던 흰수마자와 미호종개는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올해 초만 해도 금강에 사는 우리나라 고유종이자 멸종위기 1급 어류인 흰수마자가 절멸 위기에 처했다는 결과가 드러나기도 했다. 지난 4~5년간 금강 3개 보 수문이 개방되면서 회복되던 생태계가 담수로 인해 다시 악화되는 것이 원인이었다. 

세종환경운동연합이 2024년 1월 초, 2023년 9월에 있었던 공주보 담수 이후 변화된 금강 상황을 모니터링했다. 세종보 직하류인 학나래교 일대와 공주보 직상류인 백제 큰다리 일대, 백제보 상류인 유구천 합수부 일대 등 3개 지점을 조사한 결과 흰수마자 개체수가 급감한 것을 발견하기도 했다.

보 재가동은 '생태학살'이라고 말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보 담수로 생태계가 악화되고 멸종위기종의 서식지가 위협받는다는 것을 이미 환경부가 조사했기에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보 재가동을 진행하는 것은 알면서도 죽이겠다는 것이다. 생태계를 보호해야 할, 더군다나 멸종위기종을 지정해 보호하고 있는 환경부가 말이다. 

한강에 대한 환상... 지역의 강마저 파괴해
 
솟대 뒤로 금강이 평화롭게 흐르고 있다
▲ 금강을 바라보는 솟대 솟대 뒤로 금강이 평화롭게 흐르고 있다
ⓒ 대전충남녹색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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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막농성장을 방문한 서울환경연합 김동언 국장은 금강과 세종보를 보며 '물이 가득 찬 한강에 대한 환상은 지역의 여러 강과 하천마저 동기화시켰다'고 말하기도 했다. 강에 대한 환상 그 자체가 서울의 한강이다. 

멀리서 바라보고 조망하는 강, 집값을 높여주는 '리버뷰' 프리미엄이 결국 강을 망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 바로 한강이기 때문이다. 모래톱이 살아있고 새들이 서식하는 강이 아니라 썩은 물만 가득찬 강, 오리는 없고 오리배만 떠 있는 죽은 강을 마치 원래의 한강이 그랬던 것처럼 환상에 사로잡혀 있는 것이다. 

그 환상이 지금 금강, 낙동강, 영산강 곳곳에 바이러스처럼 퍼져 강이면 강마다, 지자체들이 배를 띄우고 관광으로 경제를 살리겠다 한 목소리로 외치고 있다. 모두 틀렸다. 다양한 생명들이 함께 사는 강이 '살아있는 강'이다. 시민들의 삶을 살리고, 지역의 경제를 진짜로 살려줄 강은 새들이 날아오고 다양한 생명들이 함께 사는 강이다.    
 
하늘이 몹시 푸른 하루였다, 금강도 몹시 푸르게 흐르길
▲ 금강의 푸른하늘 하늘이 몹시 푸른 하루였다, 금강도 몹시 푸르게 흐르길
ⓒ 대전충남녹색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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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하늘이 너무 예뻐요!"

'슬기로운 천막생활' 생중계(김병기의 환경새뜸)를 준비하는데 우리가 꾸민 무대 뒤 파란하늘이 너무 아름답다. 풀빛, 하늘빛, 구름빛 모두 강물은 그대로 품에 들인다. 사진 속 기술이 아닌 그저 그대로 어우러진 하늘과 강의 모습, 그 자체로도 완벽한 금강의 모습이다. 늘어져있는 버드나무도 운치가 넘치는 하루다.   

천막농성장은 낮은 곳이라, 많은 것들이 흘러들어온다. 비가 지나간 곳곳에 웅덩이가 생기고 미처 물과 함께 빠져나가지 못한 잉어가 웅덩이에 남기도 해 돌려보내주기도 했다. 돌아간 잉어는 어디로 갔을까? 혹시 은혜를 갚으러 돌아올지 모르겠다. 혹 그렇다면 세종보를 걷어내 그 은혜를 갚으라 하고 싶다. 그러면 이제 모든 잉어가 특별해진다.

생명에 대해 아픈 마음을 갖고 천막농성장까지 발걸음 하는 이들이 있다. 선량한 사람들이 사랑하는 것들을 지키기 위해, 애틋한 마음으로 자신의 것을 내어준다. 이 마음은 자연스럽지만 자기 의지로 충만한 선택들이다. 그 선택을 하나도 쓸모없는 것으로 남길 수 없다. 우리 아이들에게 흐르는 강을 보여줘야 한다. 세종보 수문을 닫는다 해도 우리는 남아야 할 이유다.
 
금강에 자리잡은 흰목물떼새 알
▲ 물떼새 알 금강에 자리잡은 흰목물떼새 알
ⓒ 대전충남녹색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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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막농성장 앞에서 포란을 하던 멸종위기 2급 흰목물떼새 둥지는 얼마 전 대청호 조정지댐의 대량 방류로 떠내려 갔다. 환경부가 기어코 세종보에 물을 채운다면 수많은 물떼새 둥지가 수장되고 떠내려 이미 낳아서 정성껏 포란하고 있는 알들이 죄다 떠내려갈 것이다. 새들의 천국인 이곳을 그대로 둘 수는 없는 것일까?

지금 바로 내 앞에서 행복하게 걸음마부터 배우고 있는 아기 박새를 보며 든 생각이다.

태그:#금강, #낙동강, #영산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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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운동가, 글쓰는 사람. 남편 포함 아들 셋 키우느라 목소리가 매우 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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