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한국민주화운동사에서 한 획을 긋는 '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아래 민청학련) 사건 50주년이 되는 해이다.
1974년 4월 3일 서울대를 비롯 주요 대학에서 시위와 함께 '민중, 민족, 민주선언'과 '민중의 소리' 등 유인물이 뿌려지자 중앙정보부는 "공산주의자의 배후 조종을 받는 민청학련이 정부를 전복하고 노농정권을 수립하려는 국가변란을 기도하고 배후에 '인민혁명당' 그룹이 있다"고 발표하면서 긴급조치 4호를 발동하였다.
민청학련 사건은 유신에 반대하는 학생들의 저항이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학생들에 대한 가혹한 탄압과 인민혁명당 관련자 8명에 대해 사형 집행으로 반독재민주화투쟁의 불길이 확산되는 계기로 작용하였다.
반독재민주화투쟁의 확산과 유신 종말 계기로 작용
이후 항쟁은 학생뿐만 아니라 비판적 지식인, 재야 반정부 인사와 정치인들과 종교인들까지 가세하는 양상을 보였고 국제적인 반 박정희 여론을 이끌어 정권에 타격을 주었다. 거듭되는 반유신항쟁 속에 민청학련은 확산된 반체제 그룹의 구심점이 되었으며 결국 유신체제의 종말을 촉발하고 부마민주항쟁, 나아가 서울의 봄과 5.18민주항쟁, 1987년 6.10 민주항쟁의 기반이 되었다.
반세기가 지난 지금 70-80대 고령의 나이가 된 당시의 주역들 100여 명이 30일 오후 4시 서울 조계사 전통문화예술공연장에 모여 당시의 처절했던 항쟁을 되새기고 사형 당한 8명을 포함 그동안 작고한 20여 명의 동지들을 추모하는 행사를 가졌다.
이날 사회는 당시 같이 투쟁한 후 고문 후유증으로 일찍 세상을 뜬 고 김병곤 동지의 딸인 김은희씨가 맡았다. 또 항쟁 동지였던 이철, 이재오, 이학영, 정동영 동지들과 윤호중 국회의원 등 정치인들도 자리를 같이했다.
이들은 '민청학련 50주년 기념 대 국민선언'을 통해 "당시 박정희 정권은 조작 날조와 긴급조치 4호를 통해 민주인사 1024명에 대해 야만적인 탄압을 자행했다"며 "이를 기점으로 저항의 물결이 확산되어 유신의 종말을 가져왔고 전두환 군부세력의 등장과 5.18항쟁과 6.10항쟁으로 이어졌다"고 말했다.
그들은 이어 "오늘 민청학련 50주년 기념 및 작고 회원 추모식을 개최하면서 비통하고 참담한 마음을 금할 수 없다. 윤석열 정권의 반민주, 반민족, 반평화적 작태로 민주주의가 위협받고 이념외교로 국익이 손상당하며 각종 민생법안을 거부해 국민이 함께 일군 민주공화국을 '거부권 공화국'으로 전락시키고 있다"고 비판했다.
민청학련 동지들은 "오늘의 잘못된 현실을 깊이 진단하고 실질적 민주화와 한반도 평화를 위해 투쟁 당시의 초심을 잃지 않고 밝은 미래 건설에 매진하고자 한다"고 다짐했다.
실질적 민주화와 한반도 평화 위해 투쟁 지속해야
민청학련 동지회 강창일 상임대표는 인사말에서 "박정희 정권이 학생들의 민주화 투쟁을 막기 위해 많은 민주 인사들을 고문, 구속시키고 장기간에 걸친 감시와 탄압으로 심신의 피폐와 생활고로 지금도 고통을 당하고 있다"며 "먼저 저 세상으로 간 동지들이 이 땅의 온전한 민주주주의를 기원해 주시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함세웅 정의구현전국사제단 고문도 인사말에서 "당시 구속됐던 지학순 주교의 석방 이후 명동성당을 중심으로 많은 사제들이 청년학생들의 희생과 헌신에 자극받아 투쟁에 나섰다"며 "힘들고 암울했던 시절의 치열함을 잊지 말고 민주주의가 후퇴하는 지금 국민들의 고통을 덜어주고 아름다운 제2의 조국 건설에 노력하자"고 다짐했다.
이부영 자유언론실천재단 이사장은 "당시 유신체제 하에서 통제받고 침묵하던 언론사에 학생들이 몰려와 투쟁을 요구하다 경찰에 연행되는 모습에 언론인으로서 부끄러웠다"며 "민청학련과 인혁당 사건에 자극받아 자유언론실천운동에 본격 나서게 됐다"고 회고했다.
이어서 이창복 선생과 당시 사형당했던 고 이수병 동지의 부인인 이정숙 여사가 유가족 대표로 인사말을 전했고, 당시 함께 투옥됐던 임진택 창작판소리 명창과 정태춘 가수의 추모 공연이 진행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