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의 꼬리가 몸통을 흔든다." 19세기부터 내려온 미국 속담이다. 널리 쓰이지 않았던 이 표현은 1993년엔 소설책으로, 1997년엔 영화로 나오면서 유행을 타기 시작했다. 사자성어로는 '주객전도'와 흡사한 뜻이다.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이 이 표현의 대중적 주목도를 더욱 높여주었다. 1998년 모니카 르윈스키와의 성 추문이 불거진 직후 클린턴은 아프가니스탄과 수단에 미사일 공격을 지시했다. 이듬해에는 미 하원이 탄핵 절차에 착수하자 이라크를 폭격하기도 했다.
가자 지구에서 학살을 방불케 하는 만행을 저질러 국제사회의 공분을 사고 있는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도 예외는 아니다. 각종 비리 혐의로 심리적 탄핵 상태에 놓인 네타냐후는 권력 유지를 위해 가자 전쟁을 고의로 길게 끌고 가고 있다는 의혹을 사고 있다. 5월 28일 자 미국의 시사잡지 <타임> 인터뷰에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도 이러한 의혹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그런 결론을 내릴 만한 이유가 있다"고 말해 주목을 받기도 했다.
이러한 사례에서도 알 수 있듯 군사적 수단은 국면 전환용으로 안성맞춤이라고 여겨지곤 한다. 언론과 대중의 관심을 다른 곳으로 끌기에는 이만한 선택지도 별로 없기 때문이다. 군사 행동은 피아가 분명하고 이를 비판하는 국내 세력을 이적 행위로 몰아붙이기에 용이하다는 점에서 더욱 그러하다. 그래서 궁지에 몰린 지도자가 국가안보를 비롯한 국익을 저해할 수 있음에도 '개인 혹은 정권의 안보'를 위해 이러한 선택을 하려는 유혹에 빠지곤 한다.
추락 거듭하는 대통령 지지율
윤석열 정부는 어떨까? 최근 윤 대통령은 '채 상병 사건'으로 궁지에 몰려왔다. 대통령실이나 국방부 차원을 넘어 대통령이 직접 개입한 정황이 속속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이와 더불어 헤아리기조차 힘든 국정 실패와 무능으로 윤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은 날개 없는 추락을 거듭하고 있다.
공교롭게도 바로 이 시기에 정부는 9·19 남북 군사합의 전체의 효력을 정지하는 결정을 내렸다. 북의 오물 살포, 위성항법장치(GPS) 전파 교란, 단거리 발사체 시험발사 등을 이유로 들었다. 북의 이러한 행태는 마땅히 규탄하고 중단을 요구해야 하지만, 이것이 9·19 합의의 완전 파기의 필연적인 이유라고 보긴 어렵다. 북이 조건부로 오물 살포 중단을 선언했기에 더욱 그러하다.
더욱 근본적인 문제는 정부가 거론한 합의 파기 사유와 합의 파기에 따른 예상되는 결과 사이의 '불일치'에 있다. 이와 관련해 한덕수 국무총리는 "북한의 연이은 도발은 우리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크게 위협함은 물론 한반도 평화를 심각하게 저해하는 행위"라고 파기 이유를 설명했다.
그런데 이 합의 파기로 인해 국민의 생명과 안전, 그리고 한반도 평화가 더더욱 위협받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정부가 일부 대북 단체의 전단 살포를 "표현의 자유"라며 자제 요청이나 제지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기에 더욱 그러하다.
뭔가에 쫓기듯 선택한 강수
우려되는 시나리오는 '대북 전단 살포 → 대남 오물 살포 → 대북 확성기 방송 → 군사적 긴장 고조'이다. 이러한 시나리오가 군사분계선 일대에서의 군사훈련 재개 및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둘러싼 갈등과 맞물려 있기에 불안 지수는 더욱 높아지고 있다. 이러한 상황 전개는 위기에 처한 한국 경제에도 악재가 될 수밖에 없다.
대통령과 정부도 이러한 상황 전개 가능성을 충분히 예측할 수 있었고, 이러한 우려도 숱하게 나왔다. 또 북이 오물 살포 중단을 발표한 것을 쌍방 자제와 긴장 완화의 계기로 삼을 수 있었다. 이것도 마땅치 않다면, 9·19 합의 완전 파기를 카드로 남겨둘 수도 있었다. 그런데도 뭔가에 쫓기듯 강수를 선택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대통령이 개인의 안위를 위해 국가와 국민을 위험에 빠뜨리고 있다고 본다. 이게 근거 없는 '음모론'이라면, 윤 정부는 국민이 안심할 수 있는 대책을 내놔야 한다. "남북한 신뢰회복 때까지" 9·19 군사합의 효력을 완전히 정지하겠다고 했는데, 도대체 정부가 생각하는 신뢰회복 방안이 무엇인지 국민에게 설명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