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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보호씨가 보도연맹 학살사건으로 희생됐다는 정황이 증언과 기록을 통해 나타나고 있지만, 조사기관인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이하 진실화해위)는 신청기간이 지났다는 이유로 진실규명은커녕 조사마저 어렵다고 답하며 사건 발생 후 80년 가까이 고통받은 희생자·유족들에게 또 한 번 상처를 남겼다. 현행법상 기간 내 신청한 유족만 조사가 가능하며, 미신청 유족을 조사할 방법은 사실상 없다는 것이다.
국가폭력으로 평생 트라우마를 앓다 74년 만에 진실을 밝히기 위해 나선 임이재씨처럼 전국에는 아직 제도 밖에서 진실규명을 바라는 유족들이 있는데, 민간인학살의 '가해자'였던 정부는 피해자 유족을 위한 대책을 현재까지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임씨 가족 발굴한 '보도연맹 학살' 정황, '신청자주의'에 막혀
대구에 사는 임이재씨와 가족들은 지난주 옥천군을 찾아 증언을 수집하고 호적 등의 기록 발굴을 시도했다. 그 결과 "철사에 둘씩 묶여 있었다", "(임보호씨에게) 도망치라고 했지만 '죄가 없다'며 임시구치소에 가만히 있었다", "공무원이었던 내가 (임보호씨더러) 몸조심하라고 당부했다" 등 진술을 확보하고, 객관적 물증인 '호적'에 "단기 4283년(서기 1950년) 7월15일 옥천읍 금구리에서 사망"했다고 기록된 사실까지 밝혀냈다. 임씨 가족의 노력으로 임보호씨가 보도연맹 희생자라는 정황들이 나타나고 있지만, 진실화해위는 현행법상 조사가 불가하다는 입장이다.
진실화해위 대외협력담당관 박영일 홍보전문위원은 "신청 기간이 끝나면 현행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기본법'(약칭 과거사정리법)으로는 구제책이 사실 없고 할 수 있는 일도 아니"라며 "법 개정으로 추가신청을 받도록 하지 않는 한 접수할 수 없다는 한계가 있다"고 했다.
2020년 12월 출범한 제2기 진실화해위는 2022년 12월9일까지 진실규명 신청을 받았다. 2021년 5월 첫 조사를 개시하고 이달 26일로 3년의 조사를 마칠 예정이었지만, 유족들의 요구로 진실화해위가 건의한 끝에 조사기간은 가까스로 1년 연장됐다(2025년 5월26일). 하지만 이미 기간 내 신청받은 사건에 국한해 조사가 연장된 것이라, 추가 증거가 발굴돼도 임보호씨 사건을 조사할 수 없다는 것이 진실화해위의 설명이다.
조사1국 조사4과 이윤희 조사관(옥천 담당)은 "저희가 서류를 직접 보지 못했으니 뭐라 말씀드릴 수 없는 상황"이라며 "(호적처럼) 공적 기록이 있으면 좀 더 객관성이 있다고 생각하는 부분이 있지만 그것만으로 되는 것도 아니다. 신청 기간이 끝나서 조사할 수 없고 안타깝지만 여기까지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2기 진실화해위 상임위원을 역임한 건국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이재승 교수는 "사실 신청 기한이 있다는 사실 자체가 말이 안 된다. 임이재씨처럼 국가폭력으로 트라우마를 겪은 사람들이 아직 많은데 지금까지도 충분하게 조사하지 못했다"며 "진실화해위 활동이 종료되면 다시 동력을 얻기는 무척 어려운 일"이라고 지적했다.
"화해의 전제는 진실규명"... 전문가·유족, 국회에 '상설기구화' 촉구
이어 이재승 교수는 "관련 사건들이 남아 있다면 '충북지역 보도연맹 누락자'와 같은 방식으로 묶어 직권조사를 시도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훗날 국가배상을 위해서라도 진실화해위에 임보호씨 사례를 남기는 것이 중요하다는 의미에서다. 1기 진실화해위 당시 충북 영동·청원군 민간인학살 용역조사를 맡은 충북역사문화연대 박만순 대표도 "1기에서는 보도연맹 학살사건이 직권조사 대상이어서 신청하지 않았어도 조사 과정에서 '확인' 결정을 내려준 사람들이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진실화해위는 전국 각지에서 요청이 많은 현재, 보도연맹 학살사건이 직권조사 대상으로 선정될 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답변했다. 신청인이 아닌 참고인 조사마저도 신청기한이 지났을 경우,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서 발생한 사건처럼 극히 제한된 조건에서만 소수 이뤄진다고 밝혔다.
거기에 27일 열린 조사개시 3주년 기자간담회에서 진실화해위 김광동 위원장은 활동 종료 이후 '진실화해재단 설립' 의견을 밝혔는데, 조사기구가 아닌 연구목적 재단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김 위원장은 "내년 5월 이후에도 지속적인 연구사업과 화해조치 및 위령사업, 그리고 기록의 활용 등이 재단을 통해 지속돼야 한다고 판단한다"고 했다.
3기 진실화해위 출범이 불투명한 상황 속, 우리지역 유족회는 '화해의 전제는 진실규명'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국전쟁 민간인희생자 옥천군유족회 금기홍 회장은 "신청기한이 정해진 것도 문제인데 유족들은 정부가 너무하다고 생각한다"며 "하루 이틀에 끝날 조사도 아니다. 진실규명을 지속해야 과거와 화해할 수 있다는 생각 역시 유족들은 분명히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유족과 전문가들은 어느 정권이 들어서든 진실규명 과정이 안정적으로 이어지려면, 곧 출범하는 제22대 국회에서 진실화해위를 제도적으로 '상설기구화'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금기홍 회장은 "이때까지 여야가 서로 미뤘는데 이번 22대 국회는 과거사정리법을 개정해 진실화해위가 지속해서 철저히 조사하도록 하고, 시효가 지나 보상받지 못한 유족들의 지원책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재승 교수 역시 "진실화해위의 활동 기간을 10년으로 늘리자는 유족들도 많은데 반영이 잘 안된다"며 "결국 국회에서 답을 해야 한다. 신청인뿐 아니라 민간인학살에 대한 진실규명에 있어 전반적인 조사를 이어가야 한다"고 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옥천신문에도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