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9년 12.12 쿠데타 당시 반란군으로부터 상관을 보호하려다 전사한 고 김오랑 육군 중령(육사 25기, 1990년 중령으로 추서)의 유가족들이 곧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할 예정으로 알려졌다.
원고는 고인의 누나와 9명의 조카들이다. 원고들은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제출할 소장에서 "망인(김 중령)은 대한민국 헌정질서를 파괴·유린하는 반란군과의 교전 중 총격으로 살해당한 것인 바, 이는 국가배상법 제2조 제1항의 '공무원이 고의로 법령을 위반하여 타인에게 손해를 입힌 때'에 해당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원고들은 "피고(국가)는 국가배상법 제2조 제1항에 따라 망인의 사망 자체로 인하여 망인과 망인의 유족들에게 발생한 재산적, 정신적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주장했다.
원고들은 망인이 사망한 이후 군 수사기관이 사망 현장을 고의적으로 훼손한 점, 반란군이 망인의 시신을 특전사령부 뒷산에 가마니 덮인 채로 방치하다 화장한 후 뒤늦게 현충원에 안장한 점은 사망 경위를 조작·왜곡하고 사망 의미를 축소시키기 위한 목적이 있었다고 지적했다.
또 "반란군이 망인의 죽음을 단순한 우발적 사고로 조작 및 왜곡함으로서 허위사실로 망인의 사회적 가치평가를 저하시켰으며, 이는 망인의 사후 인격권은 물론이고 유족들의 망인을 추모할 권리를 침해하였다"고 강조했다.
"반란군, 죽음을 우발적 사고로 조작 왜곡... 망인의 사회적 가치평가 저하"
김오랑 중령은 영화 <서울의 봄>에서 배우 정해인이 연기한 오진호 소령의 모티브가 된 실존 인물이다.
김 중령은 정병주 육군특수전사령관 비서실장으로 근무하던 1979년 12월 13일 새벽 정 사령관을 불법체포하기 위해 사령부에 난입한 반란군 측 3공수여단 병력과 교전하다 현장에서 숨졌다.
사건 직후 반란군은 김 중령이 선제 사격해 3공수 측이 응사했다고 왜곡했다. 사망 원인도 '직무 수행이나 훈련 중에 사망'을 뜻하는 순직으로 기록됐다.
이후 2022년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진상규명위)의 조사로 반란군이 정 사령관을 체포하려고 총기를 먼저 사용했고 이를 저지하는 과정에서 김 중령이 권총으로 응사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관련 기사 :
12.12 반란군에 맞서다 숨진 김오랑 중령... 순직 아닌 '전사'로).
진상규명위는 국방부에 재심사를 요청했고 국방부 중앙전공상심의위원회 재심사 과정을 거쳐 그해 11월 전사 사실을 인정하고 유가족에게 통보했다.
군 인사법에 따르면 전사자는 '적과의 교전 또는 무장 폭동·반란 등을 방지하기 위한 행위로 인하여 사망한 사람', 순직자는 '직무수행이나 교육훈련 중 사망한 사람'으로 구분하고 있다.
고인이 쿠데타군에 대항하다가 사망한 사실이 명백한 만큼 '직무 수행 중 사망'을 의미하는 순직보다는 '적과의 교전 또는 무장 폭동·반란 등을 방지하다 사망'을 뜻하는 전사가 적합하다는 의미였다.
지난해 12월 영화 <서울의봄> 개봉이후 12.12쿠데타와 김오랑 중령의 죽음이 재조명되면서 '1979년 12월 13일 서울에서 순직'이라고만 기재됐던 고인의 묘비는 지난 2월 새 묘비로 교체되면서 '12.12 군사반란 중 전사'했다는 내용과 함께 월남전 참전, 보국훈장 수훈(2014년) 등의 공적도 새롭게 추가됐다.
김오랑 중령 평전 <역사의 하늘에 뜬 별 김오랑>을 쓴 김준철씨는 <오마이뉴스>와 통화에서 "김오랑 중령의 죽음은 두 가지 의미가 있다"면서 "첫 번째는 상관인 특전사령관을 지키는 것, 두 번째는 특전사령관 비서실장으로 당시 상황을 군사반란이라고 판단해 군의 합법적 명령계통과 민주주의 체제를 수호하려는 행동이었다"고 평가했다.
김씨는 또 "군사반란임을 인지하고 반란군에게 대항한 것은 죽음을 불사한 행동이었다"면서 "적극적인 대응과정에서 사망한 김 중령의 위자료는 단순 피해자의 한 개인 범위로 국한하기보다는 제한될 수 없는 범위로서 위자료가 인용돼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앞서 법원은 지난 2월 12.12쿠데타 당시 국방부 지하 B-2 벙커 초병 근무 중 반란군에게 살해당한 고 정선엽 육군 병장(당시 국방부 제50헌병중대 소속)의 유족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한 바 있다.
유족(정 병장 형제 4명)은 국가가 정 병장의 죽음을 은폐했다며 위자료 청구 소송을 제기했고 1심에서 승소했다. 1심 판결은 피고인 정부가 기한 내 항소하지 않아 최종 확정됐다. 재판부는 국가가 원고 4인에 대해 각 2000만 원의 배상금, 총 8000만 원과 지연이자를 지급할 것을 명령했다.
재판부는 "고인은 국방부 B-2 벙커에서 근무하던 중 반란군의 무장해제에 대항하다 살해됐다"며 "이는 전사에 해당함에도 국가는 '계엄군 오인으로 인한 총기 사망사고'라며 순직 처리해 고인의 사망을 왜곡하고 은폐한 사실이 인정된다"고 판시했다.
이어 "국가의 위법한 행위로 고인의 생명과 자유, 유족들의 명예감정이나 법적 처우에 관한 이해관계 등이 침해됐음이 명백하다"면서 "국가는 국가배상법에 따라 유족들에게 정신적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판결 이유를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