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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종종자는 오랫동안 농민들의 손에 의해 최소 30년 이상 이 땅에 심겨진 종자를 말한다. 매년 심겨지며 조금씩 그 땅의 생태계에 맞춰서 적응해 온 토종종자는 우리 삶의 터전과 유기적으로 공명하는 존재이자 농민들이 세대를 거듭하며 만들어낸 하나의 문화유산이다. 최근 유전자변형 농수산물(GMO)과 종자주권 등의 이유로 이미 많이 주목받은 토종종자가 이상기후로 인한 기후위기 속에서 다시 한 번 그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다. 지역 풍토에 맞는 다양성 확보를 통해 병해충 및 환경변화에서 생존율이 뛰어난 토종농작물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는 것이다. 함양군은 농업이 주요 생산기반인 지역으로 농업계획이 중요하다. 경상남도를 통해 함양군도 토종농산물 소득보전 직불제를 시행하고 있지만 저변확대에 한계가 있다. 농업 문화유산인 토종종자를 지킬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토종종자를 지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 그들이 만든 토종종자 생태계를 알아보고 함양농업의 미래를 고민해본다. 

씨앗도서관을 아세요?
 
씨앗도서관협의회 박영재 대표
 씨앗도서관협의회 박영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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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빌려주고 반납받는 도서관처럼 씨앗을 빌려주고 수확 이후 되돌려 받는 씨앗도서관. 지식과 지혜를 얻는 도서관처럼 토종씨앗이 갖는 다양한 전통 지식을 얻게 된다는 다른 의미도 있다. 씨앗도서관을 처음 듣는다는 A씨는 수원씨앗도서관 사진을 보고 깜짝 놀랐다.

"뭔가 엄격한 온습도를 맞춘 채 스테인리스 재질 선반 가득 일련번호로 정리된 차가운 느낌을 떠올렸는데 전혀 다르네요?"

실제로 씨앗도서관은 많은 공간이 필요한 형태도 아니고 종자를 보관만 하는 연구소의 형태도 아니다. 개방된 공간, 많은 사람들의 발길이 닿는 곳에 위치하여 토종씨앗의 가치를 알리는 교육을 진행하기도 하고 토종씨앗 가치전달을 위해 이벤트를 하기도 한다. 씨앗을 수집하고 증식도 한다.

빌려간 씨앗이 얼마나 돌아오는지 묻는 질문에 박영재 대표는 웃으며 "처음에는 한 10%정도 돌아왔지만 지금은 그래도 30%는 돌아온다. 그래서 교육이 중요하다. 반납도 중요하지만 교잡되지 않게 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씨앗도서관의 시작은?

2010년부터 토종씨드림 활동을 시작하여 운영위원으로 수원에서 토종씨앗 증식담당을 하던 박영재 대표는 이상한 현상을 목격했다.

"강원도 횡성에서 수집했던 자주감자가 원래는 길쭉하고 못난이처럼 생겼거든요. 그런데 수원에 왔더니 동글동글해지고 색상도 자주색이 별로 안 나는 거예요. 강화도에서 수집한 분홍 감자 같은 경우도 분홍색이 없어지고 원래 형상들이 밋밋해지는 거예요. 울릉도에서 수집된 감자도 그랬어요."

감자는 영양체라 꽃이 안 피기 때문에 다른 작물과 교잡 될 가능성이 없다. 그럼에도 특성이 변하는 상황이라면 교잡의 가능성이 있는 다른 작물의 경우 더 큰 폭의 변화를 맞이할 수 있다. 토종씨앗이 그 고유한 형태를 잃어 특징이 단절될 수 있다는 말이다.

"와인의 맛을 결정하는 것에 포도의 품종과 떼루아(토양 등 포도에 미치는 환경적 요소)가 있죠. 농작물도 품종의 특징과 토양의 특징, 환경의 특징, 재배 방식에 따른 차이에 따라 변할 수 있어요."

농작물의 변화를 경험한 박영재 대표는 수집한 토종씨앗을 따로 가져오는 것보다 그 지역에서 유지하고 보존할 필요를 느꼈다.

"유전자원 보존 원칙에는 두 가지가 있어요. 현지 외 보존과 현지 내 보존. 농진청이나 백두대간 수목원에 있는 시드볼트가 현지 외 보존을 하고 있으니 현지 내 보존을 고민해야 해요. 그렇게 보존하는 게 작물의 특성도 해치지 않으면서 지역의 자산을 보존하는 의미도 갖고요."

현재 전국에 홍성씨앗도서관을 비롯해 15군데 토종씨앗도서관이 있고 대기하고 있는 지역도 35군데나 있다. 전국씨앗도서관협의회의 목표는 전국 255개 기초지방자치단체 모두에 씨앗도서관을 만드는 것.

전국씨앗도서관협의회는 지역의 특성에 맞춰 밭의 유형과 심는 작물을 컨설팅하고 종자 역시 지원한다.

"채종포 운영과 교육, 나눔은 시스템의 영역이다 보니 노하우를 전달하기도 하고요. 특히 각 지역이 가진 스토리에 맞춰서 어떻게 하면 토종씨앗을 더 잘 알릴 수 있는지도 함께 고민합니다."

부여에는 우리나라 대표 청동기유적인 송국리 유적이 있다. 박영재 대표는 "송국리 사람들이 대표적인 기후난민"이라며 송국리 사람들이 기후를 문제로 김해를 거쳐 제주도로 떠난 역사를 바탕으로 송국리에서 출토된 7가지 곡식에 추가로 제주도 지역에서 수집된 토종 벼를 추가로 심었던 일화를 전했다.

"옛 지명도 연구를 해요. 제사 때 올리는 작물이 밤, 대추, 감, 사과, 배. 그러면 枾(감나무 시), 栗 (밤 율), 梨(배 이) 등의 한자가 들어간 마을이 있어요. 그렇게 생활권이 되는 거죠. 그런 힌트로 토종 과수나무를 찾을 수도 있겠죠. 그래서 지역에 대한 공부를 많이 해야 돼요."

토종씨앗 저변 확대가 중요한 이유, 기후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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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전자변형 농수산물(GMO)과 종자주권 등 이미 필요성에 대해 많은 이야기가 됐던 토종씨앗이 다시 한 번 주목을 받은 이유는 바로 기후위기다. 이상기후 앞에서는 오랜 기간 축적된 농업지식 역시 무력할 수 밖에 없는 상황 속에 토종씨앗의 다양성이 하나의 해법으로 제기되기 시작한 것이다.

또한 매년 새로 심는 F1 종자와 달리 토종씨앗은 수확한 씨앗을 이듬해 새로 심는 농사를 반복해 지역의 기후와 토양에 적응한다는 특징도 가진다. 토종씨앗으로 기후위기를 이겨내기 위해서는 다양한 종자, 그리고 적응을 해낸 종자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씨앗을 유지하기 위해서 짓는 농사에서는 씨앗이 점점 안 좋아질 수 밖에 없어요. 넓은 땅에서 농사를 지으면 씨앗이 좋아지겠죠. 재배해서 유지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량한 개체들을 계속 선발하는 효과를 만들어내야 하거든요. 그러니까 진정한 의미의 유지라고 하는 것은 대단위 면적에서 이뤄지는 재배인 거죠."

석과불식(碩果不食). 큰 과실은 먹지 않고 내년을 위해 남겨둔다는 뜻이다. 최초의 농경이라고 말하는 신석기 시대. 기원전 8000년 전부터 약 일만년 동안 대부분 농부의 손을 거쳐 우량한 종자를 분별해내던 그런 전통이 끊어졌다. 미묘하게 변하는 환경과 기후에 적응해내던 종자들은 이제 몇몇 사람들을 통해 간신히 유지되고 있을 뿐이다. 토종씨앗 경작지를 확보하려면 소득창출 방안 마련이 중요하다.

"대단위 면적에서 이뤄지려면 상업적으로 토종씨앗이 쓰여야 돼요. 화성시 같은 경우 궁평리라고 하는 마을이 있는데 거기는 아예 토종마을을 선언 했어요. 여기는 로컬푸드에 납품하고 학교 급식으로 돌려주는 방식으로 해서 토종 농산물이 다 팔려요. 팔리는 게 보이니까 '너도 나도 심을래' 하게 되는 거예요. 처음에는 30농가에서 출발했는데 지금은 50농가가 토종을 재배해요."

기존의 농가가 토종씨앗 재배를 시작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지방소멸의 위기 속에서 토종씨앗에 우호적인 청년 농가, 귀촌 농가를 확보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러기 위해선 지역에 연착륙할 수 있는 장치가 마련이 필수적이다.

"스마트팜을 통해 새롭게 농업을 시작하는 사람들이 농업을 배우면서 소득을 창출할 수 있는 기간도 마련하고 어떤 작목을 선택할 것인지에 대한 준비 기간도 마련을 해줘야죠. 부여에는 체류형귀농지원센터를 운영하거든요. 센터에 참가하면 1년 동안 거주하면서 교육도 받고 주변 농가 체험하고 이 커리큘럼 안에 토종 교육이 있어요. 부여 귀농 정착률이 60%가 넘어요."

토종씨앗의 소득창출 방안 마련은 귀농 정착률을 높이는 방법에도 의미가 있다. 시장에서 토종작물은 일종의 특작 대우를 받기 때문이다.

"기존 농산물 판매 시스템을 개인의 노력으로 변화시키는 것은 어려운 일이죠. 행정이 함께 고민하고 움직일 때 유의미한 결과를 만들 수 있어요."

우리가 나아갈 농업의 미래는?

씨앗도서관은 재정의 대부분을 후원에 의존한다. 그러다보니 재정 안정성이 매우 떨어질 수밖에 없다. 지자체의 연구 관련 용역을 진행할 때도 있지만 대부분 후원이 중심이다. 박영재 대표는 "지금 토종씨앗을 지켜나가는 사람들은 희생을 해서 하지만 이후 세대들은 토종씨앗을 지키는 일로 먹고 살 수 있을 정도로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저는 지금 좋아서 하지만 내 이후 세대들에게는 단순히 가치 있고 의미 있는 일만으로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 그걸 찾아나가는 게 앞으로 저의 숙제죠."

씨앗도서관이 걱정하는 미래는 토종씨앗의 미래, 농업의 미래와 닮아있다. 지속가능한 형태의 농업은 무엇일까? 박영재 대표에게 물어봤다.

"미래 농업은 기후위기에 대안을 찾아갈 수 있는 농업이 돼야죠. 이게 꼭 어떤 하나의 형태라고 볼 순 없고요. 소농, 가족농 위주 농생태학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농사. 지역과 유기적으로 네트워킹이 될 수 있는 농업이 돼야죠. 그러려면 결국엔 씨앗에서부터 출발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지역 안에서 자립할 수 있는 구조 체계를 만들어 나가서 생태계를 만드는 거죠."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함양뉴스에도 실렸습니다.


태그:#함양 농업에 토종종자 생태계 마련하기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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