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왜 스토리는 올리면서 내 연락은 안 봐?"
인스타그램에 뭘 하고 있는지 사진은 올리면서 메신저 답장을 하지 않았더니 친구에게 날아 온 연락이다. 이에 어떻게 답변해야 할지 난처해진다. 우선 얼버무리며 슬퍼 보이는 이모티콘과 함께 답장을 보낸다. "미안, 연락이 온 줄 몰랐어..." 문제는 그다음. 즐겁게 페스티벌을 즐긴 날 사진을 올리려 하는데 친구가 보내놓은 연락이 신경 쓰인다. '아! 답장을 하고 사진을 올려야 하나?' 그때부터 사진을 올려야 할지, 친구에게 답장을 먼저 해야 할지 내적 갈등이 시작된다.
코로나19 이후 우리 사회는 비대면으로 연결되었다. 사람들은 흔히 모바일 세대라면 비대면을 편하게 여길 거라고 생각한다. 물론 뜨거운 이슈였던 콜포비아(전화 받는 것을 두려워하는 전화 공포증) 같은 현상을 미루어봤을 때 대면보다 비대면을 선호하는 경향이 많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MZ 세대가 비대면 소통을 할 때 겪는 어려움이 전혀 없을까? 어려움이 없다면 왜 이처럼 많은 연락을 보지 않고 있는 걸까?
2030 남녀 5명의 이야기
연락 몇백 통이 휴대폰에 쌓여있는 것은 단순히 답변을 귀찮아하는 몇몇 MZ 세대만의 문제가 아니다. 오늘날 MZ들의 비대면 소통에 대한 인식을 확인하기 위해 20, 30대 남녀 목소리를 들어봤다. 인터뷰를 진행해 본 결과, MZ 세대에게도 비대면 소통은 하나의 과제였다.
"인스타그램은 모르는 사람들한테도 연락이 와서 불편해요. 모르는 사람이 제 게시물을 몰래 보는 느낌이거든요." (20대, 대학 재학, 여성)
"인스타그램에 현재 앱을 이용하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는 기능이 있는데, 제가 쉬고 싶을 때도 연락을 해야 될 것 같은 부담을 느껴요." (20대, 대학 재학, 남성)
"바쁘게 이동하던 도중 연락을 읽어 답장을 하지 못했다가 지인과 오해가 생길 뻔한 적이 있어요. 그 뒤로 빨리 답을 줘야 할 것 같아요." (30대, 직장인, 여성)
낯선 사람에게 연락을 받을 때 드는 불쾌감, 쉬어야 할 때도 답해야 될 것 같은 의무감, 빨리 답장해야 할 것 같은 압박감 등이 20대의 비대면 소통 피로도를 높이는 것처럼 보였다.
이에 더해 홍보성 계정이 투자 방법을 알려주겠다며 보내는 연락, 전혀 모르는 사람이 계정을 둘러보고 '얼굴이 마음에 든다'며 대뜸 전화번호를 묻는 연락을 하면 비대면 소통에 대한 피로가 점점 쌓이게 된다는 답변도 있었다.
자기검열 문제도 20대의 비대면 소통을 어렵게 하는 요인 중 하나였다. 연락처보다 인스타 아이디 공유가 더 익숙한 MZ 세대의 팔로워(인스타그램 친구) 목록에는 연락 끊긴 지 오래인 사람들도 많다. 자신이 누구에게 어떻게 평가받을지 모른다는 데에서 오는 불안감은 SNS 사용자들이 자기검열을 하기 쉬운 환경을 만든다. "친하지 않은 사람도 저의 사진을 쉽게 확인할 수 있어 검열을 하게 될 때가 있다"라는 23살 여성의 목소리를 통해서도 SNS 속 자기검열도 비대면 소통을 어렵게 하는 요인임을 확인할 수 있다.
20, 30대들이 비대면 소통에 답답함을 느끼고 있는 현상에 대한 구체적인 분석의 필요성을 느껴 저자 도우리 작가와 지난 9일 서면 인터뷰를 진행했다. 도우리 작가는 자신의 책 <우리는 중독을 사랑해> 속에서 '갓생', '중고거래', '안읽씹', '#좋아요' 등 MZ 세대의 중독적인 모습을 재치 있게 풀어내는 등 MZ로서 그들의 내면에 깊이 공감하고 있는 작가다.
빨리 답장하지 않는 것 자체가 잘못?
도 작가는 '지금 당장 어떤 입장을 빨리 내놓으라고, 빨리 대답하지 않는 것 자체가 곧 잘못이라고 여기는 분위기가 생긴 게 문제인 것 같다'며 "서로가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 살필 여유가 없으니, 다시 말해 저신뢰 사회이다 보니 '지금 나를 무시하는 건가?'라는 생각으로 곧장 빠져드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이는 '대답을 맡겨놓았다는 사고방식'이라고 꼬집으며 '시민적 정체성의 비중을 높여 다른 시민, 모두가 처한 이 사회에 대해 다각도로 고려하는 고민을 더해가려는 시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아래는 도 작가와의 인터뷰 내용이다.
- 도우리 작가님의 책에는 퇴근 후 업무 연락을 금지하는, 연결되지 않을 권리가 아니라 관계를 더욱더 진하게 만들어주는 침묵, 기다림의 공간을 지킬 수 있는 '대화할 권리'라는 개념이 등장합니다. 해당 개념이 비대면 소통을 어려워하는 MZ들에게 보다 편한 소통을 하는 데에 실마리가 되어줄 것 같은데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실 수 있나요.
"대화할 여유가 충분히 주어지는 사회여야 할 것 같아요. 대화할 권리라 하면 보통 내 주변의 가까운 사람들/혹은 사회적 성공을 성취한 사람들을 주로 상상하는데요. 저는 그렇지 않은 사람들과의 대화도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책에도 이런 말이 있더라고요. '건강한 민주주의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두려움 없이 서로를 만날 수 있고 무례하지 않게 반대 의견을 낼 수 있으며 자신과 하나도 닮지 않은 사람들과도 친구가 될 수 있는 공간을 설계할 필요가 있다.' 시민적 공간, 공공의 공간을 더 많이 상상하고 확보하고 요구하는 것 역시 대화할 권리에 핵심적이라고 생각합니다."
- 오늘날 단톡방이 주는 편의성, 관계 유지에 도움을 주는 이점 등의 장점으로 비대면 소통을 하지 않을 순 없는 사회가 되었습니다. 현명하게 비대면 소통을 할 수 있는 작가님만의 방법이 있다면 추천 부탁드립니다.
"저는 비대면 소통에 현명하지 못한 편이에요. (비평적인 글을 쓰는 것과, 그걸 실천하는 건 참 다른 문제입니다.) 일단 현명하지 못함을 인정하는 게 하나의 방법인 거 같아요. 그렇지 않으면 현명하지 못할 때마다 또 자책하고... 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다만 제 삶에서 '이상한 시간들'을 더 보내려 하고 있어요. 함께 모여서 '좀 현명하지 못하면 어때?', '좀 이상하면 어때?', '아니 사실 우리 모두 이상하지 않아?', '어떻게 더 잘 이상해지지?'라고 실패에 대해 실컷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시간을 보내고 나면 신기하게도 비대면 소통도 좀 더 제 주관대로, 덜 불안해하면서, 제가 필요할 때 잘 이용할 수 있는 힘이 생기는 거 같더라고요. 제가 어쩔 수 없이 작가여서 드리는 말씀이기도 할 텐데, 누군가와 함께 책 읽거나 같이 글 쓰는 시간이 그런 시간인 것 같아요. 추천드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