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전북 전주시 한 초등학교 3학년 학생의 '교감 뺨 폭행' 사건이 큰 파장을 불러오고 있다. 이른바 학교 내의 '금쪽이'에 대한 우려가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정작 많은 언론이 문제의 본질과 원인을 진단하고 해법을 제시하기보다 자극적 내용을 앞다투어 보도함으로써 우려만 확대 재생산할 뿐이다. 급기야 교원단체가 우려를 표명하고 나섰다.
전교조 전북지부는 성명에서 "구조적 문제를 이야기하지 않고 치유가 필요한 학생에 대한 자극적인 내용들만 기사화되는 현실이 안타깝다"라고 지적했다.
그렇다면 교실 속 '금쪽이'는 정녕 구제 불가능한 문제아인가! 폭탄 돌리기의 대상일 뿐인가? 본질은 그게 아니다. '금쪽이들'의 공통점은 그들의 마음 한켠이 아프다는 사실이다. 그것도 아주 심하게. 그들이 "나는 지금 아파요"라고 신호를 보낼 때, 우리는 무엇을 했는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 ADHD 진단을 받은 사람은 2022년 기준 13만 9천여 명이다. 이는 2018년 5만 9천여 명에 비해 두 배 이상 증가한 수치다. 이들 중에는 남성 비율이 여성의 두 배가량 되었고, 나이가 어릴수록 그 수가 많았다. 심평원은 ADHD를 '국민관심질병'으로 다루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ADHD는 의학적으로는 장애로 인식하지만 사회적으로는 장애가 아니다. 물론 국가와 문화에 따라 이에 대한 인식의 차이가 있겠지만, ADHD는 아동·청소년기에 나타나는 보편적 장애로 인식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이 있다. 왜냐하면 사회적·학업적 문제를 비롯한 여러 영역에서 기능을 상실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국가 차원의 관심과 지원이 절대 필요하다. 선진국에서는 이미 ADHD 아동을 특수교육 대상으로 분류해 지원하고 있음을 주목해야 한다.
실제로 정서행동위기학생의 80%가 ADHD 진단을 받았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ADHD에 대한 초기 진단과 조기 치료가 정서행동위기 학생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수많은 '금쪽이들'을 위한 치유와 안전망 구축이다. 사실 '금쪽이'에 대한 원인진단도, 해법도 이미 다 나와 있다. 문제는 교육당국의 의지다. 그러니 누군가 나서야 한다.
나는 2014년부터 2018년까지 경기도교육청 학생안전과에 근무했다. 당시 세월호 참사 이후 안전 문제가 큰 이슈가 되면서 도교육청은 학생안전과를 신설해 안전사고, 학폭, 아동학대, 자살예방 등 학생의 안전과 관련한 업무, 그리고 민원이 많은 업무를 이곳에 하나로 모았다.
당시를 돌이켜 보면 그중 가장 견디기 힘들었던 일은 학생들의 죽음을 직접 대하는 일이었다. 교통사고, 물놀이 익사 사고 등도 가끔 있었지만 학생들 죽음의 대다수는 자살이었다. 매일 아침 컴퓨터를 열 때마다 "오늘은 제발 아무 일 없기를..."을 마음속으로 간절히 원했던 기억이 있다.
자살유가족과 학교 관계자를 만나 위로하고 지원방안을 협의했다. 이런 일을 반복하면서 위기학생을 지원할 안전망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그래서 전국 최초로 '위기학생지원단'을 만들어 정서행동위험군 학생 지원체계를 구축했다. 그 대표적인 예가 2019년 설립한 '병원형Wee센터'다.
병원형Wee센터는 학교 현장에서 자살이나 자해 등 정서·심리적 어려움을 겪는 고위험군 학생에게 정확한 진단과 전문적인 치료, 대안교육과정 등을 지원하여 학교로 복귀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수행한다. 5년 전 경기도를 4개 권역으로 나누어 4곳에 설치한 병원형Wee센터는 지금도 4곳에서 운영 중이다. 이곳을 이용한 대다수 학생들은 학교로 복귀해 무사히 졸업할 수 있었다.
5년 전에 비해 정서행동위험군 학생은 급증하는데 이들을 지원할 인프라 확충은 제 자리에 머물러 있다는 게 문제다. 그러니 서둘러야 한다. 예산이 문제가 아니라 철학과 의지의 문제다.
아프다고, 많이 아프다고 SOS를 보내는 '금쪽이'들을 위한 국가 책무를 바로 세워야 한다. '금쪽이'를 돕는 일은 모든 선생님들과 아이들을 돕는 일이다. 이것이야말로 교실 수업 정상화의 지름길임을 인식하자.
22대 국회가 개원하면서 이른바 '금쪽이 지원법'으로 불리는 '정서행동 위기학생 지원에 관한 법률안'이 발의된 것은 만시지탄이긴 하나 다행한 일이다. 강력한 처벌이 두려워 스스로 경계하고 조심하여 학교폭력과 교권침해 행위를 중단할 수 있다면, 그들은 이미 '금쪽이'가 아니기 때문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교육전문언론 교육언론[창](www.educhang.co.kr)에서 제공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