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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잠을 잘 자지 못했다. 불면의 밤이 길어질수록 삶의 질이 떨어졌다. 고질적인 위장병과 두통이 나아지지 않아 동네 내과를 찾았다. 의사에게 '혹시 불면이 내 병이 낫지 않는 것과 상관이 있느냐'고 물었다.

의사는 당연하다면서 수면제 한 달 치를 처방해줬다. 복용주의 사항으로는 '하루 1정 이상 먹지 않을 것'과 '잠 자기 직전에 약을 먹어야 한다'는 설명을 들었다. 정신건강의학과가 아니어도 수면제를 처방받을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이럴 줄 알았다면 진즉에 말할 걸, 이렇게 생각했다. 

약 먹고 잠든 다음날 아침... '빵봉지, 택배 40개'라니
 
약 먹는 사람.
 약 먹는 사람.
ⓒ pexe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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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반 알로 시작했다. 약을 먹고 잠이 들었다. 푹 자고 일어난 아침, 새로운 세상을 만난 듯했다.

복용 기간이 길어질수록 반 알로는 잠이 들지 않아 복용량을 한 알로 늘렸다. 약을 늘리자 아침에 불쾌한 두통이 동반됐다. 하지만 두통이 곧 사그라들었기 때문에 심각하게 여기지 않았다. 병원 방문 때마다 수면제를 처방받았는데, 어느새 나는 수면제 없이는 잠을 잘 수 없게 됐다. 약에 의존하게 된 것이다. 

삼차신경통이 발병했고 참을 수 없는 통증으로 수면제를 먹고도 잠들지 못하는 날이 늘어났다. 고통스러움에 복용량을 늘렸다. 몸이 나른해지더니 몽롱해짐을 느꼈고, 갑자기 꼬꾸라지는 일도 있었다. 

이렇게 약에 의존하던 어느 날, 아침에 눈을 떠보니 침대 옆에 빵 봉지 여러 개가 뒹굴고 있었다. 너무 놀랐다. 전날 잠든 순간부터 내 기억의 세포들을 하나하나 깨워가며 시간을 더듬었다. 내가 빵을 먹은 건 아무리 생각해도 기억나지 않았다. 꿈을 꾸다 그랬나 싶기엔 실제 행동의 시간이 길었을 것이기에 으레 잠에서 깼어야 설명이 된다. 그러나 그러지 않았다.

어떤 날은 집으로 택배가 40개 정도 도착했다. 나는 주문한 적이 없었다. 급히 쇼핑 앱을 열어봤다. 내가 주문도 하고 결재까지 했다.

'섬망 증상(뇌의 전반적인 기능장애가 발생하는 증후군)'이었다. 그때는 이 일을 누구에게도 알리지 못했다. 더 이상은 안 되겠다는 생각에 정신건강의학과를 찾았다.

반성과 고민 그리고 바람

나는 내 행동을 반성한다. 지금 이 글을 쓰기까지 고민도 많았다. 그럼에도 내가 이 글을 쓰는 이유는 우리 주변에 나 같은 약물 오남용 환자가 있을 것이기에 경각심을 일깨우고 싶기 때문이다. 또한 주변에서 수면제를 구하는 일이 어렵지 않음도 지적하고 싶다.

내가 처음 약을 처방받았던 날 약의 부작용에 대해 상세한 설명을 듣지 못했다. 간단한 복용 방법만 안내받았을 뿐. 수면제 같은 약의 처방은 의사와 충분히 상담하며 약의 부작용과 위험성에 대해 정확한 설명을 들어야 한다. 물론 복용 주의 사항을 제대로 따르지 않은 나의 잘못도 있으나, 나 같은 오남용이 가능했던 시스템의 사각지대 역시 존재한다. 개선이 필요하다. 

하나 더. 정신건강의학과를 찾는 이들에 대한 사회적 편견(가령 곱지 않은 시선)이 사라지면 좋겠다는 말도 덧붙인다. 필자가 처음부터 정신건강의학과를 찾지 못했던 것은 당시 내가 교사였고, 정신건강의학과에 내원했다는 사실이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지는 게 두려웠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은 어떻게 지내느냐고?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치료와 상담을 병행 중이다. 코가 아프면 이비인후과를 가듯이 마음이 아프면 정신건강의학과에 가는 것은 당연하다. 정확히 알아야 치료도 치유도 가능하다. 병을 감추지 않아도 되는 사회가 되길 바란다.

태그:#수면재, #약물오남용, #제도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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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과 사회문제에 관심이 많은 일반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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