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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 하면 어떤 게 떠오르나요? 휴가철도 다가왔겠다 이번 여름에는 섬으로 가볼까나? 그렇다면 우리 마음 속에 자라는 섬은 어떨까요? '우리는 서로를 보지 못했는지도 모른다./ 서로 바라보고 있다고 믿었던 옛날에도/ 나는 그대 뒤편의 뭍을/ 그대는 내 뒤 편의 먼 바다를/ 아득히 바라보고 있었는 지도 모른다'(쓸쓸한 섬, 정일근)라는 시처럼 홀로 떠있는 섬은 소통하지 못한 채 쓸쓸함을 달래는 존재로 다가 옵니다. 
 
내가 섬이었을 때
 내가 섬이었을 때
ⓒ 월천상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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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숙 작가의 그림책 <내가 섬이었을 때>도 외로이 떠 있는 섬으로 시작됩니다. 영상작가전문교육원에서 시나리오를 공부하고 한국일러스트레이션 학교에서 그림책을 공부한 작가답게 바다와 섬의 질감을 고스란히 살려낸 그림에 생각의 깊이를 더한 글밥이 보는 이의 마음을 잔잔하게 울립니다. 

그래도, 다리를 놓아보아요

표지를 한 장 넘기면 수많은 섬들이 등장합니다. 흡사 그 모습은 '함께 살아가지만 사실은 저마다 마음 속에 외로운 섬 하나 씩을 키우는 우리들의 모습 같습니다. 
 
'바람이 세차게 불던 날/ 난 혼자인 것 같았어요.
그래서 다리를 놓아가기 시작했지요.'

상투적인 비유지만, 사람 인(人)이라는 한자가 비스듬하게 기울어지는 획을 또 다른 획이 버티어 주듯이 우리는 고달픈 세상을 건너며  '관계'라는 다리에 기대어 보고자 합니다. 
 
내가 섬이었을 때
 내가 섬이었을 때
ⓒ 월천상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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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생각보다 나를 버티어 주는 '관계'는 드뭅니다. '내가 다리를 놓아간다고 해서 저쪽에서도 다리를 놓아오는 건 아니'었지요. 마주 놓아 간다고 해서 꼭 맞닿은 것도 아니'었고요.

한번에 여러 다리를 놓아보면? '튼튼하지 않았'답니다. 그래서 '튼튼'하게 놓으려 하다보니 오래 걸렸어요. 마치 안개 속을 헤매이듯 '멈추고 기다려야 할 때도 있었'다네요. 이렇게 보니 다리를 놓으려 이리저리 애써보는 섬의 시행착오가 우리가 살아온 시간처럼 여겨져요.

섬에서 자라라는 삐죽삐죽 선인장이 눈에 띄어요. 되돌아 보면 시행착오의 많은 부분들이 선인장의 돋아난 가시와 같은 것들이 아니었나 싶네요. 이어지고 싶어하면서도 방어적인 그 아이러니함이 바로 미숙한 관계의 민낯이 아닐런지요. 

'다리를 놓아오던 저쪽에서 내가 다르 놓는게 느리다고 불평을 했'다거나 '또 다른 쪽에서는 내가 놓고 있는 나무 다리가 마음에 안든다'고 하는 장면에서는 가슴이 먹먹해지기까지 합니다. 살아온 날만큼 외로움이 쌓인 건 그저 홀로 있어서만이 아니라 이처럼 내가 세상과, 사람들과 제대로 된 '다리'로 이어지지 못했다는 아쉬움들이 쌓여져서가 더 크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래서 '다리를 놓는 것은 너무 어려워요!' 폭발해버리기도 하지요. 
 
나는 혼자 있기로 했어요. /그러면 싸울 일도, 화낼 일도 없을 테니까요.
 
내가 섬이었을 때
 내가 섬이었을 때
ⓒ 월천상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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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냐고 물어보던 갈매기들마저 사라지고  얼어붙어버린 섬, 싸울 일도 화낼 일도 없으면 편할 것 같은데 추워서 자꾸 움츠러들어요. 삐죽대던 선인장마저 견뎌낼 수 없네요.
 
무언가 따끔따끔한 것이 나를 깨웠어요. / 메마른 섬에서 날아온 모래였어요. 

지쳐보이는 섬에서 날아온 모래에 눈을 뜬 어느 날, 그래요, 나만 얼어붙은 줄 알았는데, 저 섬은 메말라 가고 있네요. '한참을 망설이던' 섬은 '다시 다리를 놓아갔어요'. 드디어 다리가 섬에 닿았을 때 그 섬은 나를 얼어붙게 만든 그 얼음으로  '생기를 되찾았어요. 놀랍게도 섬은 이제 더는 춥지 않아요. 

알고보니 혼자인 줄 알았는데 혼자인 섬은 없었다고, 그림책은 바닷속 깊은 곳에 서로 서로 연결되어있던 섬을 그려냅니다. 이런 걸 '인연'이라고 하는 걸까요? 

소개글처럼 우리는 관계로 인해 상처받고 그로 인해 단절을 결단하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또 관계맺으려 하고, 그 관계로 인해 회복되고 나만의 향기를 되찾습니다. 얼어붙은 섬이 스스로에 갇혀 머물렀다면 다리로 연결된 섬에게 열매를 맺을 기회는 영영 없었겠지요. 
 
'당신이 지쳐/ 자신이 작게만 느껴지고/ 눈물 고일 때/ 당신 곁에서 그 눈물 닦아드리리다.(중략) / 힘든 때가 닥치고/ 친구 하나 없어도/ 험한 세상에 다리가 되어 드리리다. ( 사이먼&가펑클 노래, The bridge over troubled water)
 
큰늑대 작은 늑대의 별이 된 나뭇잎
 큰늑대 작은 늑대의 별이 된 나뭇잎
ⓒ 시공주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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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라도, 선물이 되는 

결국은 다리로 이어진 두 섬의 이야기를 보니 올리비에 탈레크가 그림을 그리고 나딘 브룅코숨이 글을 쓴 사랑과 관계에 대한 우화 <큰 늑대 작은 늑대> 시리즈의 한 권이 떠올랐습니다. 바로 <큰 늑대 작은 늑대의 별이 된 나뭇잎>입니다. 

화창한 봄날, 작은 늑대는 곱고 부드러운 연두색 나뭇잎을 맛보고 싶었지요. '큰 늑대야, 저 나뭇잎을 따다 줘', 큰 늑대는 뭐라고 했을까요? '기다려 봐, 때가 되면 떨어질 거야.'

여름이 돼서 짙어진 나뭇잎도, 가을의 고운 갈색으로 물든 나뭇잎도 작은 늑대는 가지고 싶다 했지만 그때마다 큰 늑대는 '곧 떨어질 거야'라고 답했지요. 그런데 희한하게도 작은 늑대가 따다달라던 나뭇잎은 추운 겨울이 되어서도 여전히 굳건하게 매달려 있었어요. 이제 작은 늑대는 더는 큰 늑대에게 나뭇잎에 대해 말하지 않았습니다. 

눈 내린 어느 날 비로소  큰 늑대는 나무 위에 오릅니다. 그런데 눈이 내린 나무 위에 올라가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어요. 발을 디딜 때마다 작은 가지들은 뚝뚝 부러졌어요. 심지어 미끌미끌한 나무에 대롱대롱 매달리다 떨어질 뻔하기까지 했어요. 미소를 짓던 작은 늑대는 나뭇잎 한 장 때문에 이럴 일은 아니라고 생각하기에 이르렀습니다. 하지만 그 순간 드디어 큰 늑대는 작은 나뭇잎을 잡으려는데, 

그만 작은 나뭇잎은 큰 늑대의 손가락 사이에서 산산히 부서져버렸습니다. 허무한 엔딩? 저물어 가는 햇빛 속에서 별처럼 쏟아지는 나뭇잎들을 맛보고 느낀 작은 늑대, '그렇게 예쁜 것은 태어나서 처음 보았어', 모지스 할머니의 책 제목 '인생에서 너무 늦은 때란 없습니다.'가 떠오르는 엔딩입니다. 

둘은 어긋날 때가 더 많았지요. 함께 하는데도 엇갈리는 다리 같기도 하고, 마저 이어지지 못한 다리 같습니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이 되도록, 가지고 싶다던 소망을 더는 입 밖에 내지 않을 때까지 말이죠.

어쩌면 큰 늑대의 시도는 너무 늦었을 지도 모르고, 바스라지는 나뭇잎을 보고 작은 늑대는 '이게 뭐야' 했을 수도 있지요. 그래도 큰 늑대는 애를 썼고, 작은 늑대는 그 노력에 정말 예쁘다며 화답했습니다. 별처럼 아름다운 건 늦었다 포기하지 않고 눈 덮인 나무 위를 올라간 큰 늑대의 애씀아닐까요. 

내가 섬이었을 때

조경숙 (지은이), 월천상회(2024)


큰 늑대 작은 늑대의 별이 된 나뭇잎

올리비에 탈레크 (지은이), 나딘 브룅코슴 (그림), 이주희 (옮긴이), 시공주니어(2008)


태그:#내가섬이었을때, #큰늑대작은늑대의별이된나뭇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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