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시간 문제에서 가장 많이 거론되는 것은 장시간 노동이다. 장시간 노동이 심혈관계 질환을 비롯한 각종 건강문제와 정신건강에 해를 입히고 일-삶 균형을 저해한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져있다. 한편, 이러한 노동시간의 길이뿐 아니라 노동시간을 어떻게 배치하는가 또한 중요한 문제이다. 노동시간의 배치 문제에서 가장 많은 연구가 이루어지고 관심을 받는 건 교대근무이고, 특히 야간근무를 포함한 교대근무가 주목받는다.
야간근무를 하기 위해서는 밤에 깨어나 일하고 낮에 잠을 자야 하기에 정상적인 생체리듬의 교란이 일어난다. 인체의 건강을 유지하는 수많은 생물학적 작용이 이러한 하루 리듬에 따라 조율되기 때문에 야간근무는 수면장애를 비롯한 여러 건강문제를 일으킨다. 이러한 생체시계의 교란은 생물학적 비동기화(Biological desynchronization)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평일 주간에 대략 8시간 정도 근무하는 표준적 노동시간이 아닌 그 밖의 시간에 노동하는 노동자들, 즉 비표준적 노동시간(non-standard working hour) 또는 비사회적 노동시간(Unsocial working hour)을 노동하는 노동자들은 생물학적 비동기화뿐 아니라 사회적 비동기화(Social desynchronization)도 겪게 된다.
사회적 비동기화란 사회의 리듬과 노동자 개인의 리듬이 어긋나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 안착된 일주일 단위의 사회적 리듬은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평일 5일간 연속적으로 일하고 주말 이틀은 휴식을 취하고 여가를 즐기며 재충전을 하는 것이다. 하루 중에서는 저녁시간, 일주일 중에서는 주말이 노동자들이 가족 및 사회 등 누군가와 상호작용을 하는 가장 소중한 시간이다. 그런데 주말에 일하고 평일에 쉬는 노동자는 이러한 사회의 리듬과 어긋나게 된다. '사회적 휴일'이란 단순히 일을 쉬는 날이 아니라 가족, 친구들과 상호작용을 잘 하는 날이다. 그가 속한 사회의 리듬에 맞게 남들 쉴 때 쉬는 것이다.
이러한 사회적 휴일이 부족한 노동자들에 관한 연구를 국내외에서 수행한 적이 있다. 국내의 대표적인 표본조사인 '근로환경 실태 조사' 데이터를 분석한 연구 결과, 주말노동을 하지 않는 노동자보다 주말노동을 하는 노동자가 소득이나 전체 노동시간 등 다른 요인을 통제한 후에도 우울증상의 위험이 대략 30~40% 증가했다(Lee 등. 2015). 우울증상 위험은 주말노동 횟수가 증가할수록 더 높아지는 경향도 보였다. 즉, 전체 노동시간이 같다면 주말에 쉬는 노동자보다 평일에 쉬는 노동자의 우울증상이 높다는 것을 보여준다.
유럽 31개국의 데이터를 분석한 연구 결과, 월 1회 이상 일요일 근무를 할 경우 일요일 근무를 하지 않는 경우보다 건강 문제 1.17배, 일-생활 균형 저하 1.15배, 작업관련 사고는 1.34배 높아졌다(Wirtz 등, 2010). 핀란드의 병원노동자를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도 주말노동이 많으면 일-가정 갈등이 44% 증가했다(Karhula 등, 2017). 독일에서 '경계없는 노동시간'의 한 형태로 일요일 근무에 관해 연구한 결과, 일요일이나 공휴일 근무는 노동자에게 사회적으로 중요한 시간을 방해하여 피로가 계속되는 것으로 보고됐다(Vieten 등, 2022). 이렇듯, 부족한 사회적 휴일은 노동자의 건강과 웰빙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 기존 연구들에서 확인되고 있다.
서비스 노동자 주말노동 실태조사 결과
올해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는 전국서비스산업노동조합연맹과 함께 '주말노동실태조사'를 진행했다. 서비스연맹의 유통분과와 관광레저분과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온라인 설문조사를 수행하였고 마트, 백화점, 면세점 등 유통분과 노동자 2516명, 호텔, 카지노, 골프장 등 관광레저분과 노동자 205명의 응답 결과를 분석하였다.
대형마트의 경우 일부는 일요일에 월 2회 의무휴업을 하고 있고 일부는 평일에 의무휴업을 하고 있다. 백화점은 월 1회 정도 평일에 정기휴점하고 면세점은 연중무휴로 운영된다. 호텔, 카지노, 골프장 등 관광레저 사업장은 기본적으로 연중무휴로 운영된다. 이중 카지노는 24시간 운영된다. 따라서 유통업과 관광레저업 노동자들의 주말노동은 불가피한 상황이다.
유통분과 노동자들은 월평균 5.5회, 관광 레저분과 노동자들은 월평균 6.2회 주말 출근을 하고 있었다. 일요일에 월 3회 이상 출근하는 비율이 유통분과 47.1%, 관광레저분과 69.3%로 주말노동을 상당히 많이 하고 있다. 이에 비해 <근로환경실태조사>의 최근 결과(2020-2021)에서 임금근로자 중 보통 한 달에 일요일 근무를 한 번이라도 하는 경우는 16%, 3회 이상 하는 경우는 8.8%로 서비스 노동자의 주말노동 현황과 큰 차이를 보였다.
보통 한 달 전쯤 정해지는 근무 일정 상 주말에 휴무를 받지 못하면 연차를 사용하는 방법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주말 연차를 잘 사용할 수 없다는 응답이 유통분과 35.0%, 관광레저분과 43.9%에 달했다. 그 이유로 가장 많이 응답한 건 주변 동료의 업무가 가중되는 것이 미안하거나 눈치보여서였다.
일-삶 균형에 대한 만족도 점수 (7점 만점)는 유통분과 3.73점, 관광레저분과 3.78점으로 2022년도 <일삶균형 조사>에서 조사되었던 4.44점보다 떨어져 있음을 알 수 있다. 일-삶 균형의 구성요소에 대한 항목에서 '직장생활 때문에 가족(개인) 생활에 충실하지 못하다'에 '그런 편이다' 또는 '매우 그렇다'고 응답한 비율은 유통분과 52.5%, 관광레저분과 52.2%로 <일-삶 균형조사(2022)>의 40.6%보다 10% 이상 차이를 보였다.
서비스 노동자들은 주말보다 평일이 휴무일인 경우가 많으니 가족, 친구들과 함께 보내기보다는 혼자 시간을 보내기가 쉽다. 쉬는 날에 주로 하는 활동을 조사한 결과 (3개 중복 선택) 높은 응답을 차지한 것은 TV, 넷플릭스 등 OTT, 유튜브 시청 (유통분과 56.2%, 관광레저분과 55.8%), 휴식 (수면, 사우나 등) (유통분과 56.0%, 관광레저분과 36.8%), 가사 및 가족 돌봄 (유통분과 50.3%, 관광레저분과 38.4%) 였다. 다음으로 많은 것은 운동 또는 스포츠 활동 (유통분과 19.1%, 관광레저분과 29.0%), 사교 관련 일 (친구 만남, 동창회 모임 등) (유통분과 29.6%, 관광레저분과 22.6%)이었다.
피로 해소에 상당히 치우쳐 있고 TV시청과 같은 소극적인 여가활동을 주로 하고 있었다. 여성 비율이 높은 유통분과의 경우 가사일과 가족 돌봄으로 휴무일을 보내는 경우도 많았다.
조사참여자를 주말근무 횟수 4회 이하와 5회 이상의 두 그룹으로 나누어 일-삶 균형과 일부 건강 관련 지표를 비교해 봤다. 유통분과와 관광레저분과 모두 주말근무 4회 이하인 노동자보다 주말근무 5회 이상인 노동자가 일-삶 균형 만족도 점수가 낮고, 일-삶 균형에 대한 부정적 응답 비율이 높았다.
불면증상을 물어보는 설문도구 MISS를 사용하여 수면장애를 확인하고 우울증 선별검사 도구인 PHQ-9을 사용하여 중등도 우울 이상인 경우를 분석하였을 때 역시 주말근무 4회 이하인 그룹보다 주말근무 5회 이상인 경우에 수면장애와 우울증상의 유병률이 높은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주말노동을 하는 조사대상자들 내에서도 주말노동을 많이 할수록 건강과 삶에 나쁜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주말노동을 완전히 없앨 수 없다면, 최소한 줄이는 것만으로도 어느 정도 효과를 볼 수 있음을 시사한다.
서비스 노동자에게 사회적 휴일을
우리나라에선 2000년대 초반부터 주5일제를 도입해 점차 확대해왔다. 주5일제가 도입되기 전에 노동자들은 일요일인 주휴일에 피로에 젖은 몸을 회복하느라 다른 일을 할 여유가 많지 않았지만, 토요일과 일요일 이틀을 쉬게 되면서 휴일을 보내는 행태가 크게 달라졌다.
표준노동시간을 일하는 노동자들은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여가와 문화생활을 즐길 여유가 늘어 삶의 질이 좋아졌다. 그 이면에는 휴일에 쉬는 노동자와 가족들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는 노동자들이 있다. 하지만 이들은 사회적 휴일이 부족하여 건강과 삶에 해를 입는다. 서비스 노동자가 주말에 일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생각을 버리고 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해보자.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이혜은님은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소장입니다. 이 글은 한노보연 월간지 일터 6월호, 노동과세계에도 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