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전, 세살배기 딸아이가 어린이집에 가게 되었다. 큰아이가 6세에, 둘째 아이가 5세에 기관에 다니기 시작한 것에 비하면 좀 이른 편이었다. 하지만 세 아이를 양육하느라 세상과 단절된 채 살아온 지 10년쯤 되었으니 이제는 '나를 좀 돌아보아도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를 기관에 보내게 되자, 오전은 오롯이 나만의 시간이 되었다. 처음에는 주로 TV를 보며 시간을 보냈다. 오후면 아이를 데리러 가야 하니, 오전만큼은 충분한 휴식을 취하고 싶었다. 하지만 휴식의 즐거움은 곧 무기력함으로 다가왔다. 나를 위해 쓸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을 누군가가 만들어놓은 콘텐츠에 쏟기만 하는 것이 아깝게 여겨졌다.
나는 곧 다른 일을 찾기 시작했고, 우연히 학창 시절에 끄적이던 노트 하나를 발견했다. 새벽에 독서실에서 공부하다가, 야간에 학교에서 자습하다가, 어떠한 서사가 떠오르면 마음껏 펼쳐 샤프로 휘갈기던 노트였다.
미소가 지어졌다. 대입을 앞둔 고3이 답답한 현실을 벗어나고자 만들어낸 세상이 제법 그럴듯했다. 개연성도 떨어지고, 문장력도 서툴기 짝이 없었다. 하지만 재미가 있었다. '내가 이런 캐릭터를 만들었다고? 내가 이런 스토리를 전개해 냈다고?' 나를 향한 효능감이 싹 트는 순간이었다.
고민할 필요 없이 다시 쓰기 시작했다. 남편이 가끔 회사 업무를 보기 위해 가져다 두었던 노트북을 열었다. 샤프로 쓰던 낭만도 나쁘지 않았지만, 확실히 키보드의 속도가 만족스러웠다. 천천히 샤프로 쓰고 지우개로 지우면서 느긋하게 쓰던 글이, 이제는 타타타타 소리를 내며 더 빠르게 세상을 만들어가게 되었다.
키보드 두드리는 소리는 경쾌하다. 두드리는 속도만큼 사람이 만들어지고, 사건이 일어나고, 사랑이 피어나며, 세상이 펼쳐진다. 집 안에 있지만 어디에나 있을 수 있다.
여자이지만 남자가 될 수 있고, 엄마이지만 아이가 될 수도 있다. 결혼했지만 미혼일 수도 있고, 주부이지만 전문 직장인이 될 수도 있다. 상상하고 써낸 글 한 줄로 나는 어디에도 갈 수 있었고, 무엇이든 될 수 있었다. 서랍 속에 고이 넣어두기만 했던 꿈을 과감히 꺼내는 순간, 삶의 빛깔이 달라졌다.
그렇게 혼자만 즐겁게 상상하며 만들어낸 이야기를 웹소설 플랫폼에 무료로 연재하기 시작했다. 완결된 이야기였기에 매일 한 편씩 올리는 성실함을 발휘할 수 있었다. 그래서인지 제법 많은 독자를 만났다. 독자들의 짤막하지만 따스한 댓글들에 뛰어댔던 심장이 아직도 생생하다.
- 잘 읽고 갑니다.
- 다음 편 기다릴게요.
- 두 꼬마의 모습이 너무 예쁘네요.
- 따뜻한 이야기 감사합니다.
두 아들과 딸 하나를 키우면서 떠올리게 된 스토리가 꽤 많은 분에게 따스하게 다가갔던 모양이었다. 연재 4화 만에 출판사의 컨택을 받게 되었다. 나의 글을 e북으로 출간하고 싶으니 계약하자는 제안이었다.
그때의 기쁨을 무슨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작가님'이라 불리는 동안 구름 위를 걷는 듯한 기분이었다. 어릴 때 이루지 못한 꿈 하나를 이룬 것만 같아 자꾸만 어깨가 으쓱했다.
큰아이의 친구들이 웹소설 작가로서 나를 인터뷰하러 오기도 했다. 다양한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인터뷰 하는 수행평가가 있는데, 나를 대상으로 선정했단다. 나는 당시 초보 작가였지만, 흔쾌히 승낙했다.
어릴 때 소설가가 꿈이었으나 높은 현실의 벽에서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시대가 변하고 출간의 벽이 낮아졌으며 독자를 만날 수 있는 손쉬운 길이 열렸다. 인기와 수입이라는 현실은 차치하고서라도 아이들에게 꿈을 이야기하기에 더없이 좋은 기회였다.
나는 지금도 소설을 쓰고 있다. 약 7년간 7권의 전자책을 발간했다. 수입의 현황은 처참할 정도라 밝히기가 민망하다. 하지만 드문드문 나의 이야기에 지갑을 열어주시는 분들이 있다. 매달 확인할 수 있는 판매 내역은 '그만할까?'라는 생각이 들 때마다 '계속 써 주세요'라는 응원의 메시지로 다가온다. 다음 작품을 기다린다는 출판사 직원분의 성실한 연락도 나를 힘 나게 한다.
전공을 살려 직업을 얻기 힘든 세상이다. 꿈을 이루며 밥 벌어먹기도 힘든 세상이다. 가정 경제에 도움이 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으련만, 그저 허락된 환경 안에서 나는 여전히 꿈을 먹고 살고 있다. 나의 꿈이 단순히 나의 즐거움에 국한되지 않기를 바란다. 내가 쓴 글 한 줄로 만들어진 세상이, 사람이, 사건이 읽는 누군가에게 즐거움과 위로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오늘도 나는 세상 한 줄을 펼친다.
서랍 속에 고이 넣어둔 '꿈'이라는 녀석을 꺼내는 이들이 많았으면 좋겠다. 먹고 살기 힘든 세상살이에 '꿈은 사치일 뿐'이라는 생각을 모르지 않는다. 하지만 달라진 삶의 빛깔 속에서 조금 설레는 마음 안고 살아가는 것이 오히려 힘든 세상살이에 위로가 되지 않을까 싶다. 다시 서랍 속에 넣게 될지언정 오늘은 녀석을 한번 꺼내 보기라도 하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