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인권위원회가 시끄럽습니다. 윤석열 정부 들어 새로 임명된 이충상, 김용원 상임위원이 인권단체와 언론들을 상대로 막말을 일삼아 논란이 일고 있습니다. 이와 관련 인권위 전현직 직원들이 두 상임위원에 대해 보고 들은 내용을 익명으로 보내와 몇 차례에 걸쳐 싣습니다. [편집자말] |
지난 20일,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 상임위원회 자리. 이날 김용원 상임위원은 사무처 제출 안건보다 자신의 주장이 시급하고 중요하다며 정상적 회의를 방해했다. 그로인해 이날 오전 9시 30분 시작된 회의는 4시간 동안 진행됐다. 그로부터 일주일 전인 13일 회의 역시 안건 상정 없이 3시간 반 넘게 진행되었다. 이 장면을 인권위 내부 직원뿐 아니라 언론사 기자들과 일반 시민들이 방청석에서 지켜봤다.
김용원 위원은 언론사를 '기레기'라 하고, 일반 시민 방청객을 '인권 장사치'라 불렀다. 그날 여러 언론이 그의 막말을 전면으로 다룬 기사를 보도했다. 그의 발언을 두고 다른 상임위원이 "시민을 인권 장사치라고 호칭해도 되겠습니까?"라고 물으니, 김 위원은 단호한 어조로 "인권 장사치라고 해도 된다. 얼마든지 된다"며 재확인 해 주었다.
사실 이날 '막말'에 가려 김용원 위원의 또 다른 주장은 대중에 잘 전해지지 않았다. 그는 "의안 뿐만 아니라 행정절차 모두 그 결정에 상임위원이 참여해야 한다"고 했다. 이날 그의 주장에 대해 송두환 인권위원장은 '일반행정업무'는 계선을 따라 결정되면 된다고 답변했고, 김 위원은 '일반행정업무'의 범위를 누가 정하느냐며 목소리를 키웠다.
이어 김용원 위원이 상임위원도 위원장 못지않게 사무처 직원들의 보고를 받고 지휘도 할 권한을 갖고 있다는 취지에서 '상임위원의 업무범위를 정해야 한다'고 하자, 송 위원장은 '그 문제를 안건으로 제출하면 진지하게 논의하겠다'고 답했다. 그는 고성과 막말, 그리고 혐오 속에 간간이 그럴 듯한 문제제기를 섞어 낸다. 얼핏 탁월해 보이기도 하는 그의 재주는 상대방을 곤혹스럽게 만들기도 한다. 위에 언급한 건에 대해서도 일부 분석가들은 '그렇지 않아도 그동안 위원회가 그 주제를 제대로 다루지 않았으므로 이번에 정리하는 것도 좋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상임위원 역할 논의에 반대하는 이유
13일 회의는 이 수법이 성공한 대표적 자리였다. 상임위원의 업무 범위 설정에 대해 위원장은 피해갈 수 없는 주제라고 보았고, 별도로 얘기할 필요가 있음을 인정해야 했다. 어쩌면 직원들조차 '그래 그 논의 해야지. 이번에 정리해야지'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생길 것이다. 하지만, 혐오와 막말로 범벅된 주제라도 주제 자체가 그럴 듯하면 인정해야 할까?
위원회 20여 년의 역사 속에서 상임위원의 모호한 역할, 특히 사무처 업무와 관련한 모호성은 항상 논쟁을 불렀다. 언제나 위원장-상임위원-비상임위원-사무총장 간 역할과 관계에 대한 다양한 주장들이 제기되었다. 관행에 의한 공식적 절차는 존재했다. 그러다 간혹 의욕이 강한 상임위원이 있을 때 돌발적인 상황이 발생하기도 했다. 어쩌면 이 문제는 합의 정신이 살아 있는 어떤 때, 좀 더 진지하게 검토할 필요 있다.
그래서 나는 김용원-이충상 위원이 있는 지금 이 논의가 진행되는 것에 반대한다. 대화가 필요한 주제라 하더라도 그들이 문제를 제기하는 배경과 맥락, 그리고 무엇보다 의도에 부적절함이 깔려 있는 듯하다. 지금까지 그들이 보인 말과 행동을 보면, 그들의 목표는 상임위원의 권한이 아닌 위원장과 사무총장의 권위와 역할을 헐뜯고, 궁극적으로는 쫓아내는 게 아닐까 의심스럽다.
두 사람은 이날 회의의 공개 여부를 논의하는 시간에(그러니까 아직 외부 방청객이 참여하지 않은 채 진행된 첫 한 시간 정도의 논의 시간에) "내 발언은 송 위원장의 불법 행위와 관련된 내용인만큼 비공개해야 한다. 그게 송 위원장에게도 좋은 일이다"(이충상 위원)라며 목적을 분명히 했다.
그들이 좋지 않은 의도를 갖고 있음을 방증하는 발언은 너무 많다. '사무총장 따위'와 '국장 따위'라는 말은 감초처럼 등장했다. 사무총장이 지난 3월 모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사무처와 위원회는 자전거 앞바퀴와 뒷바퀴 같은 관계"라고 언급한데 대해 3개월 가까이 지난 6월 10일 전원위원회에서 이는 '사무처가 앞바퀴이고 위원회가 뒷바퀴라는 것이냐'며 따지더니 급기야 사무처는 바퀴조차 아니다며 분개했다.
위원장-상임위원-사무처의 관계
일단 대화가 불가능한 이들과는 당연히 대화할 필요가 없다는 명확한 사실을 다시 한 번 강조 하면서, 상임위원의 역할, 그리고 위원장-상임위원-사무처(사무총장) 간 관계에 대해 한 번 살펴보도록 하자.
의사결정을 1명이 아니라 여러 명이 하는 조직을 합의제 기구라 부른다. 독임제는 의사결정 방식이 명확하지만 합의제는 합의의 방법이나 각 의사결정 주체들의 의견 수렴 방식 등 모든 절차에서 다양한 변주가 가능하기 때문에 구체적인 작동 방식은 저마다 다르다. 사실 '일반론'이라는 게 없다.
국가인권위원회는 11명의 인권위원과 이를 보좌하는 사무처로 구성된다. 모든 안건에 대한 의사결정은 11명의 인권위원들 간 합의를 기본으로 하는 합의제 기구인 셈이다. 인권위원 11명은 위원장, 상임위원, 그리고 비상임위원으로 나뉜다. 인권위원은 1인 1표제라는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에 따라 의사를 결정하므로 의사를 심의하는 순간만큼은 모두 동등한 권한을 갖는다. 위원장만 회의(전원위원회)를 주재하는 권한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만 다르다.
문제는 위원회가 운영되기 위해서는 안건 심의와 의결 외에도 수많은 업무를 필요로 하기 때문에 발생한다. 안건 의결만 한다면 위원 1명당 몇 명의 보좌진을 두고 순수 행정지원 인력 십수 명만으로도 충분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안건'이라는 것이 생성되기 위해 필요한 일을 상상해보면 정확한 업무량 가늠이 어렵다. 특히 '인권'이라는 주제는 사실상 거의 모든 사회문제와 연관되므로 그 업무 범위가 무한히 넓어질 가능성도 있다.
위원회는150여명의 사무처로 출발했다. 여기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우선, '인권'이라는 거대한 주제를 다룬다는 점 때문이다. 진정사건을 접수받아 처리해야 하고 직권으로도 인권침해와 차별행위에 대해 조사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 받았기 때문에 상당히 넓은 업무 범위를 고려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또 하나는 안건 상정 외에도 인권과 관련된 한 다양한 업무를 수행하라는 의미이다. 조사라는 업무에 투여되는 안건 상정 준비 작업이 대단히 복잡하고 고도의 전문성을 필요로해, 몇 명의 비서진으로 감당할 수 없으니 큰 규모의 조사 전담 사무처 조직이 필수적이라 본 것이다.
교육, 홍보, 협력 등 업무 대부분은 의결이 불필요한 행정 집행 성격을 갖는데 이 업무의 범위도 상당히 규모가 커질 가능성이 있어서 결국 규모 있는 사무처가 필요했고 사무총장을 두었다. 그리고 위원장으로 하여금 사무처 사무를 관장하는 사무총장을 지휘하도록 하였다. 즉, 인권위는 합의제를 근간으로 하면서도 일부 사안에 대해서 위원장이 단독 결정하는 독임제 방식을 접목한 셈이다.
합의제와 독임제의 병용은 규모있는 사무처를 갖는 구조에서 불가피하다. 국회도 비슷하다. 국회의장은 본회의를 지휘하고 투표권도 행사하면서도 동시에 사무총장을 관리 감독하여 사무처를 통할한다. 각 의원들은 법안 심사 관련하여 사무처로부터 다양한 보좌를 받지만 사무처 행정업무에 관여하지 않는다.
사무처의 고유 역할 기능, 인정돼야 한다
위원장은 독임제 업무의 최고 결정권자라는 점에서 다른 인권위원들과 확연히 구분되는 이중적 권한을 가졌다. 사무총장은 사무처의 수장으로서 11명 인권위원을 보좌하면서 동시에 계선의 최고 결정권자로서 위원장의 지휘를 받아야 한다. 그렇기에 항상 긴장하면서 절묘한 균형을 잡아야 하는 어려운 직무이다. 최근 박진 사무총장이 3월 언론 인터뷰에서 앞바퀴, 뒷바퀴라고 한 의미가 여기서 기원한다.
독임제를 접목한(구조라는 견해의 측면에서) 합의제 기구에서 의결권을 갖는 위원들과 행정조직(사무처)간 관계, 그리고 다른 위원들과 달리 사무처를 관리하는 업무를 따로 부여받은 위원장 간의 관계는 모호하게 보일 수 있다. 법령에서는 원칙만 설시할 뿐 구체적인 부분까지 정하는 것은 어렵다. 따라서 논쟁이 발생할 때마다 합의의 정신과 원칙에 따라 정리하고 관행으로 정착시키는 방식이 현실적이다.
그러나 여전히 사무처의 고유한 역할과 기능은 인정되어야 한다. 이를 거부하고 '사무처 따위'라면서 상임위원보다 '아랫것'이라는 혐오적 사고를 내비친다면, 그것은 인권위의 근간을 부정하는 셈이다. 만일 그런 조직을 원한다면 지금의 사무처는 해체하고 위원실/비서 체제로 가야한다. 모든 위원들이 비서진을 거느리고 조사와 안건 작성, 상정, 그리고 심의까지 모두 해 나가야 하는데,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 구조는 11명 인권위원이 독자적인 자율성을 갖고 있음을 전제로 하며 동등한 비서인력을 11명 모두에게 제공해야 한다. 사실상 상임위원과 비상임위원 간 구분은 없어진다. 그런데 무엇보다 실현이 불가능하다. 일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개별 위원실에서 처리할 수 없는 통일적이고 종합적인 행정 업무가 늘어나므로 사무처에 준하는 조직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위원실/비서 조직은 한계가 명확하다. 괜히 국회가 국회의원의 독립적 조직(의원실)을 중심으로 움직이면서도 거대한 사무처 조직을 갖는게 아니다.
결국 미우나고우나 현재 사무처의 온전한 고유성을 인정해야 한다. 사무처의 온전한 고유성을 인정한다면, 위원들은 심의 역할에 충실하면 된다. 사무처가 상정한 안건을 수동적으로 심의만 하는 역할에 갇혀 있다는 비판이 종종 제기되어 왔다. 충분히 고려할 만한 주장이며 언젠가는 이 부분에 대한 진지한 논의가 필요하다는 점은 인정한다. 그러나 지금처럼 위원들이 심의 의결 역할조차 사회적 인정을 받지 못한 현 상황에서, 이 논의는 물음표 투성이다.
인권침해(차별을 포함)에 대한 제대로된 심의 의결이 되는, 정상적 논의 상황이라면, 위원장-위원-사무처(사무총장) 간 관계를 정립하려는 시도는 권장할 만할지 모른다. 그런데 최근 인권위 내에서 상임위원의 역할을 둘러싼 논쟁이 발생한 맥락과 배경을 볼 때 생산적 토론을 기대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김용원, 이충상 두 위원은 '상임위원의 역할' 운운하기 전에 파리원칙을 전면으로 거스르는 언행에 대해 먼저 책임을 져야 한다. 그리고 회의 자료조차 읽었는지 알 수 없이 위원회 회의에 참석해서 거수기 노릇을 한다는 평가를 받는 몇 위원들은, 인권위원회 의결에 관한 논의에 앞서 자신들이 어디쯤에 서 있는지 성찰해보길 바란다. 사무처를 탓하기 전에 자신들의 위치를 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