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의 격노로 인해서 이 모든 것이 꼬이고 모든 것이 엉망진창이 됐다."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이 이른바 'VIP 격노설'을 재차 언급했다. 21일 오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가 진행한 해병대 채상병 특검법(순직 해병 수사 방해 및 사건 은폐 등의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검사의 임명 등에 관한 법률안) 입법 청문회에서 수사 외압 의혹의 정황이 더욱 짙어지는 모양새이다. 반면, 같은 입법 청문회 현장에 있던 다른 증인들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라거나, 수사 중인 사안이라는 이유로 증언을 거부하면서 상반되는 태도를 보였다.
"수사 중이라 답하지 못한다" 반복에 결국 10분간 강제 퇴정
이시원 전 대통령실 공직기강비서관을 향해 야당 의원들의 질문이 쏟아졌지만, 정작 이 전 비서관은 거의 답변을 하지 않았다. "지금 특검법안의 수사 대상이 된 상황에서 이미 고발이 됐고, 현재 공수처에서도 한참 수사 중이라 의원의 질의에 답하지 못함을 양해 부탁드린다"라는 이야기였다.
그는 해당 사건이 경찰로 이첩된 2023년 8월 2일 당시 유재은 국방부 법무관리관과 전화를 한 내역 때문에 여러가지 의심을 사고 있다. 특히 그날 하루에만 국가안보실 및 국방부 고위 관계자 등과 18차례 통화한 내역이 밝혀지며, 이번 수사 외압 의혹의 핵심 인물로 떠올랐다.
하지만 이 전 비서관이 증언을 일관되게 거부하자, 야당 의원들은 "국민들이 우습냐?" "뭐 하러 나왔느냐?"라고 거세게 반발했다. 정청래 법제사법위원회 위원장은 "앞으로도 '수사 중이니 발언할 수 없다'는 핑계를 계속 댈 것 같다"라며 "계속 그렇게 할 거냐?"라고 따져 물었다. 정 위원장은 답변할 수 있는 내용에 대해서는 성실하게 답하라는 취지로 "마지막 경고"를 했다.
하지만 전현희 국회의원의 질문 순서에서도 이시원 전 비서관의 답변은 달라지지 않았다. 그러자 정청래 위원장은 결국 "이시원 증인, 10분간 퇴정하시라"라며 "계속 그렇게 말하면 퇴정시킨다고 분명하게 경고했다"라고 날을 세웠다. 상임위원장이 "10분간 퇴정하시기 바란다. 10분 후에 들어오시라"라고 하자 이 전 비서관은 별다른 대꾸도 하지 못한 채 잠시 청문회장에서 이석해야 했다.
회수는 외압 아니라는 차관, 통화 날짜 착각하는 3스타 장성
이외에도 이날 입법 청문회 오전 질의에서 '문제적' 장면들은 다수 연출됐다. 일부 증인들은 과거 국회에서 관련해서 했던 발언에 대해 집중적으로 추궁을 받았다. 장경태 의원은 신범철 전 차관을 향해 '국방부장관이 대통령과 통화했느냐'라는 질문에 "통화하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 제가 장관께 여쭤봤다"라고 답변했던 점을 상기시켰다. 신 전 차관은 "7월 30일날 대통령께서 장관과 통화했느냐는 취지로 이해했다"라며 "장관께서 '없다'고 하셨기 때문에 '없다'라고 말씀드렸다"라고 설명했다.
장 의원은 "그때 상황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으시고, 사실관계 명확하게 하지 않으시고 답변하신 건가?"라고 따져 물었다. 신 전 차관은 당시 질문 취지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고 해명했다. 본인의 통화 내역 역시도 "회수에 관련한 것"이라며 외압이 아니었다고 강조했다. 회수는 수사 외압이 아니라는 맥락의 답이 이어지자 의원들의 반발도 계속됐다.
임기훈 전 국가안보실 국방비서관 역시 과거 국회에서 김계환 해병대 사령관과 통화한 사실이 없다고 발언한 점을 지적당했다. "왜 거짓말하셨느냐?"라는 장경태 의원의 물음에 임 전 비서관은 당시에 "(통화) 날짜를 착각했다"라고 답했다.
장 의원은 어이가 없다는 듯 짧게 한숨을 쉰 뒤 "아니, 군인 아니신가? 3스타 장군이, 날짜와 시간을 다투는 직업 아니신가?라고 꼬집었다. 같은 답이 반복되자 그는 "아이고, 위증하신 거다, 이건"이라며 "본인이 처벌받기 직전인데 날짜를 착각할 수 있느냐?"라며 날을 세웠다.
그는 "날짜를 기억하지 못하더라도 사실관계는 알 것 아닌가?"라며 "해병대 사령관과 국방비서관이 통화한 것도 기억 못하나? 그래가지고 무슨 장군을 달고 있나? 안보실을 맡고 있는 사람 아닌가?"라고 힐난했다.
박정훈 "이첩 보류의 본질은 수사 축소·왜곡·변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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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 “법 앞에 모두 평등, 진실 밝히도록 도와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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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성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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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박정훈 전 수사단장은 적극적으로 증언에 임하는 자세를 보였다. 이종섭 전 장관이 '법리적 문제'를 이유로 '이첩 보류'를 지시한 것이지 수사 외압이 아니라는 식으로 이야기하자, 박 전 단장은 "사건 이첩은 법에 정한 절차대로 당연히 이뤄져야 될 내용이었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지금 이 자리에 있는 국방부장관도 이첩 보류 명령만 했다고 하지만 이 사건 이첩 보류의 본질은 '혐의자, 혐의 내용, 죄명을 빼라' 결국, 수사를 축소하고 왜곡하고 변질하라는 것이 본질"이라고 직격했다. "사건서류를 경찰에 이첩하는 걸 하루이틀 늦춘다고 해서 달라질 건 아무 것도 없다. 단순 이첩 보류라면 제가, 또 해병대 사령관이 2박 3일 동안 고민할 이유가 없는 것"이라는 지적이었다.
VIP 격노설에 대해서도 재차 힘을 실었다. 박 전 단장은 "대한민은 법치국가라 말했다. 법대로, 절차대로, 규정대로, 진행되면 될 일"이라며 "한 사람의 격노로 인해서 이 모든 것이 꼬이고, 모든 것이 엉망진창되고, 수많은 사람이 범죄자가 됐다"라고 한탄했다. 그는 "그 과정에 저렇게 많은 통화와 공모가 있었다는 것이 너무나 참담하고, 대명천지 대한민국에 이런 일 있을 수 있는지 납득되지 않는다"라고 이야기했다.
정청래 법사위원장은 "박정훈 수사단장이 1차 조사 수사를 한 것에는 장성급인 임성근 사단장이 포함돼 있었고 정상적으로 수사 자료가 이첩돼서 갔으면 임성근 사단장은 보직 해임될 위기였던 것"이라고 강조했다. "장성급 보직 해임은 국방부 장관에게 보고해야 되기 때문에 박정훈 수사단장이 보고를 하러 갔다. 모든 수사를 장관에게 보고하지 않는다"라며 "누군가 임성근을 구하고 싶었던 것"이라는 추측이었다.
그는 "그래서 이 순간 수사 외압이 시작됐고, 그리고 대통령실로부터 전화, 대통령의 격노 그리고 대통령과 이종섭 증인과의 통화, 그리고 공직기강비서관, 국방비서관, 유재은 법무관리관 등등이 얽히고설킨 너무도 복잡한 전화통화들을 하게 되는 것"이라며 "그리고 보직 해임돼야 할 임성근은 보직 해임되지 않고, 박정훈 수사단장이 해임되고 지금 이 고통을 받는 것이다. 이것이 수사 외압 범죄의 씨앗이 싹 트는 순간"이라고 정의했다.
자신의 추론에 대해 의견을 묻자, 박정훈 전 단장은 증인은 "전적으로 위원장 의견에 동의한다"라고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