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태. 그는 여성 작가가 대세인 신인 문학계에서 보기 드문 남성 작가다. 매년 등단 십 년 이내의 젊은 작가들을 선정해 발표하는 2024 젊은작가상 수상자 중 유일한 청일점이기도 하다. 2022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한 신인 작가 김기태의 첫 단편소설집 <두 사람의 인터내셔널>을 읽어보았다.
내가 이 소설을 알게 된 것은 유튜브 Btv 이동진의 파이아키아 채널에서 영화평론가이자 애독가로 잘 알려진 이동진의 추천 영상 때문이었다. 한숨에 다 읽었다는 평에 귀가 솔깃했고 이미 책을 읽어 본 독자들의 댓글 반응도 호평 일색이었다. 단편소설집이라는 점도 마음에 들었다.
이 책은 총 9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다. 수록된 모든 소설의 공통점이 있다면 주인공의 주변부에 있을 법한 인물들이 주인공이라는 점이다. 첫 번째 수록된 <세상 모든 바다>에서는 글로벌 아이돌의 콘서트장이 배경이다. 주인공은 콘서트 티켓을 구하지 못해 객석에 함께 하지 못한 주변인 백영록과 하쿠의 이야기다.
소설의 표제작인 <두 사람의 인터내셔널>에서는 학교에 내야 할 돈을 내지 않아 교무실에 따로 불려간 권진주와 김니콜라이가 주인공이다.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작이기도 한 <무겁고 높은>는 역도를 하는 소녀 송희의 이야기다. 그녀의 목표는 대학입시나 금메달이 아닌 100kg 역도를 드는 것이다. 앞날이 불투명한 그녀에게 코치들조차 크게 관심이 없다. 말하자면 그녀는 주변인에 가깝다.
소설 속 모든 주인공들에게는 급박한 위기 상황이나 극적인 반전이 생기는 법이 없다. 마치 우리의 삶이 그러하듯 그들은 그저 남들과 별 다를 것 없는 모습으로 나름대로 살아가고 있다. 이 소설의 특별함은 거기에서 시작된다. 평범함.
길을 지나다 만나도 아무도 눈길을 주지 않을 것 같은 어중간한 위치에서 아등바등 살아가는 우리들을 주인공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작가는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지만 나와 닮은 소설 속 주인공들을 통해 잔잔히 위로받고 공감하며 책을 읽게 되는 매력이 있다.
학부모로서 가장 인상깊었던 작품은 <보편 교양>이었다. '고전읽기' 과목을 개설한 교사 곽의 이야기다. 곽은 누구보다 진심으로 수업 준비를 하지만 정작 그의 학생들은 노트 대신 베개를 가져와 잠을 청하거나 이어폰을 꽂고 수학 문제집을 풀고 있다. 왜냐하면 '고전읽기'는 수능 과목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곽은 여전히 수업에 진심이다.
그러던 어느 날 곽은 학생들에게 마르크스의 책을 추천했다는 이유로 학부모로부터 민원을 받는다. 일이 커질세라 노심초사하던 것과 달리 학부모는 먼저 나서서 자신이 잘 몰라서 실수했다며 사과하고 일은 수월하게 마무리 된다.
학부모의 태도가 갑자기 달라진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교사의 진심이 통했다는 다소 허무맹랑해 낭만적이기까지한 이유로 회귀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지극히 현실적이다. 바로 사설 입시컨설턴트의 조언 때문이었다. 고전읽기 과목이 대입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었다.
소설은 그가 가르치던 아이들이 졸업하는 날에서 마무리 된다. 곽은 잠을 자던 아이들의 이름을 정확히 불러 아이들을 놀라게 하고 곽은 혹여 앞날이 정해지지 않은 아이들에게 상처가 될까 그들의 미래를 묻지 않고 돌아선다.
내가 이 소설이 가장 인상적이었던 이유는 오늘 날 공교육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비판하는 태도를 취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오히려 담담히 그 현장에서 자신의 할 일을 묵묵히 해내는 인물 곽을 통해 독자가 더 많은 것을 스스로 생각해보게 한다는 점에서 인상적이었다.
오늘 소개한 작품들 외에도 화제작 <나는 솔로>를 참고해 쓴 듯한 연애 리얼 리티프로그램에 출연한 서른일곱 여자의 이야기 <롤링 선더 러브>나 글로벌 스타와 그의 팬 이야기를 쓴 <로나, 우리의 별> 등도 우리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소재를 가지고 이야기를 전개한다는 점에서 익숙하고 반갑다.
비 예보가 있는 이번 주말은 김기태 작가의 <두 사람의 인터내셔널>과 함께 보내볼 것을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