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층짜리 집이 있습니다. 각 층에 인구의 1%를 거주시키되 1층에 가장 소득수준이 낮은 계층을 거주시키고 층이 높아질수록 소득수준이 높아지는 식으로 사람을 거주시킵니다... 이제 지하층으로 내려가 봅시다."
2020년 동물당 창당 관련 세미나를 진행했다. 당시 동물법비교연구회 김영환(현재 동물권단체 케어 대표)씨의 발제 중 일부다. 지하층으로 가면 누가 있을까? 물론 여기에서 지하층은 비유적인 표현이다. 그러나 실제 지하층에 사는 동물이 있다.
대구광역시 실내 테마파크 동물원에 백사자 한 쌍이 있었다. 그들은 7년간 지하층에서 살았다. 아니, 갇혀 있었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백사자들이 살던 환경은 매우 열악했다. 최소한의 빛으로 어두컴컴한 환경, 그리고 쓰레기와 오물 등으로 뒤덮인 거주 환경이다.
과태료 300만 원. 사실상 학대에 가까운 환경에 방치한 해당 동물원이 받은 처분이다. 낙찰가 1억 3100만 원. 백사자뿐만 아니라 동물원에 있는 324마리의 금액이다. 동물을 방치한 인간에게는 솜방망이 처벌이 내려졌고, 열악한 환경에 살았던 동물들 몸값은 생각보다 비싸게 거래됐다.
백사자를 비롯한 방치된 동물을 대구의 또다른 동물원이 1억 3100만 원에 인수했다. 지하층 실내 동물원과는 달리 야외방사장을 갖췄다. 햇빛도, 바람도, 풀도 없는 실내 동물원과는 확실히 다른 환경이다. 언론은 새 보금자리로 이동했다고 보도한다. 보금자리는 매우 포근하고 아늑한 곳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과연 백사자들은 '보금자리'로 이동한 걸까? 이제 그들에게 장밋빛 인생이 펼쳐진다고 볼 수 있는 걸까? 그리고 비싼 값을 치러서 열악한 환경에 있었던 동물을 구한 또다른 동물원을 영웅 대접해줘야 하는 걸까.
동물원은 사라져야만 한다
백사자 한 쌍이 7년간 지하층에 방치될 수 있었던 건 동물원 시설에 관한 별다른 요건이 없었기 때문이다. '적정한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라는 있으나 마나한 법령만이 시설에 관한 조건이었다. 해당 동물원이 조성될 때만 하더라도 합법이었던 것이다.
다행히도 서식환경에 관한 내용이 개정되었다. 정부는 사람과 동물 모두가 행복한 동물원을 만들겠다며 지난 2020년 '제1차 동물원 관리 종합계획'을 수립하고 2022년 동물원 및 수족관의 관리에 관한 법률(아래 동물원수족관법)을 개정했다.
주요 개정 내용은 등록제를 허가제로 개정한 것이다. 여러 허가 조건 중 동물원 동물복지와 관련된 주요 내용은 사육환경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는 것이다. 서식환경에 관한 일반기준과 종별 기준을 이전보다 구체적으로 제시했고 야외방사장을 갖춘 동물원에서만 맹수를 사육할 수 있다.
종별 사육시설 기준은 야생동물 보호 및 관리에 관한 법률 시행규칙에 따른다. 그러나 제시된 종별 기준을 살펴보면 정말 비인간동물에게 적정한 기준인지는 의문이다. 지리산에서 방사한 반달가슴곰이 김천시 수도산에서 발견되기도 했고, 지리산에서 방사한 1세대 반달가슴곰의 후손은 덕유산에서 발견되기도 했다. 이처럼 반달가슴곰만 하더라도 활동반경이 매우 넓다. 사육시설 설치기준에 따르면 반달가슴곰은 넓이 21m², 높이 2.5m를 충족해야 한다. 21m² 가로 4m, 세로 5m 정도의 공간이다. 과연 반달가슴곰에게 적합한 넓이라고 할 수 있을까.
사육시설 면적뿐만 아니라 서식 환경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빠지지 않는 게 '환경풍부화'다. 환경풍부화란 활동성을 높일 수 있는 구조물을 설치해주거나 노력을 기울여 먹이를 찾도록 만들어주는 '먹이풍부화', 냄새나 촉각 자극 등을 풍부하게 만들어주는 '감각풍부화'와 같은 환경을 조성해주는 것을 뜻한다.
미국 동물권 철학자 톰 리건은 "더 넓은 공간을 할애하거나 자연에 가까운 환경을 조성해주거나 더 많은 친구를 만들어주는 것이 근본적으로 악한 것을 옳게 만들지 못한다"라고 주장한 바 있다. 물론 이는 공장식 축산을 퇴출하자는 주장이지만, 동물원에도 동일하게 해당된다.
동물원은 사라져야만 한다. 동물원은 인간과 동물이 모두 행복할 수 있는 공간이 절대 아니다. 그저 인간이 동물을 가두고 전시하여 구경하도록 만든 공간일 뿐이다. '환경풍부화'라는 마법 용어에 속아서는 안된다. 환경풍부화는 면제부일 뿐이다. 인간이 마음 편하게 동물을 가둘 수 있도록 돕는 면제부 말이다. 백사자만 지하층에 살았던 게 아니다. 동물원을 떠올려보라. 철창과 시멘트 벽이라는 명확한 경계가 존재한다. 인간이 사는 지상층과 동물이 사는 지하층은 단순한 비유에 그치지 않는다. 여전히 수많은 동물이 지하층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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