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가 나에게 부담되는 요구를 하면 '미안, 내가 이런 상황이라서 힘들 것 같아'라고 말하면 돼요. 또 상대가 나를 하대하면 단호하게 '싫어. 내가 왜?'라고 말하면 돼요. 그러나 이 말을 할 용기가 나지 않으면 무시, 침묵, 무대응을 하면 돼요."
한 여성이 조근조근, 조언을 건네고 있다. 자기계발서에서 볼 법한 문장을 말하는 이 여성은 교탁 앞에 서 있다. 말하는 대상은 반 아이들이다. 1분 남짓의 짧은 영상은 SNS에 올라왔고, 430만 조회수를 기록했다.
영상의 주인공, 강원도 춘천시 후평초등학교 교사 김지훤씨다. 현재 5학년 담임을 맡고 있다.
김 선생님의 SNS 계정에는 '마음 회복하는 법', '인성의 격차', '자기 객관화' 등의 1분짜리 영상이 약 30개 정도 올라와 있다. 어떤 계기로 영상을 올리게 됐을까. 지난 13일 김 선생님을 인터뷰했다.
5학년 반 학생들에게 전한 '진심', 의외의 곳에서 터졌다
김 선생님의 '끼'를 주변 선생님들이 알아본 것이 계기가 됐다고 했다.
"제가 학교에서 행사 진행도 열심히 하고, 백설공주 옷을 입고 입학식 영상도 만들고, 춤도 추고하니까 주변 선생님들께서 저의 끼를 매우 높게 봐주셨어요. 선생님들이 '당장 교직 그만하고 다른 걸 해라' 막 이러셨었죠. 동료 선생님들께서 만날 때마다 '뭐라도 해라, 유튜브라도 올려라'라면서 엄청 권유를 해 주시는데, 그 말을 듣다 보니까 점점 그 말에 젖어들게 됐어요."
그렇게, 평소 아이들에게 해주던 이야기들을 SNS에 올리기 시작했다. 첫 번째 영상은 '첫사랑 이야기'였다. 생각보다 사람들의 반응이 좋아서 '이게 되네?' 생각을 했다고 한다. 이후 '평소에 내가 하는 것을 올려보자'라는 생각이 들어 아침 조례 시간 10분을 활용해 보기로 했단다.
"아침 조례 시간에 하는 말들을 짧게 찍어올렸는데 많은 학부모님들께서 아이들을 양육할 때 너무 도움이 된다고 말씀해 주셨어요. 그러면서 (앞으로 어떻게 해야할지) 길이 보였던 것 같아요."
김 선생님은 평소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볼 때 깨닫는 바가 있으면 아이들이 가장 먼저 생각난다고 했다. 그 영감을 정리해서 아이들에게 이야기해 주는 식이다. 영상을 찍기 위해 조례 시간에 할 말을 굳이 정해 오지는 않고 아이들과 소통을 하며 유동적으로 대화를 한다고 했다.
이렇게 제작된 영상들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SNS에 달린 댓글을 보면 "36살짜리 제자는 안 필요하신가요", "아이들에게 하는 말이지만 어른들도 꼭 들어야 하는 말이에요", "지혜가 넘치는 선생님이십니다"라는 반응이 대부분이다. 그녀는 이러한 반응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자신이 하는 상투적인 말들을 따뜻하게 받아들이는 어른들을 보며 오히려 마음이 뭉클했다고 전했다.
"영상을 올리고 보니, '왜 저는 이런 것을 (미리) 알지 못했을까요?'와 같은 댓글이 정말 많았어요. 요즘 한국 사회가 우울로 만연하잖아요. 충분히 사랑받으실 만한 자격이 있으신 분들인데 스스로를 자책하며 살아가고 남들과 비교해가면서 무너져가는 모습들이 안타까웠어요. 제 영상이 진짜 별게 아니고 너무 상투적인 말들인데도 그 말에 힘을 얻어 가시는 걸 보면서 우리 사회가 진짜 위로가 많이 필요한 사회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김 선생님에게 현재 우리 사회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물어보았다. 그러자 "나를 사랑하는 것"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이어 "다들 인생을 그냥 즐기셨으면 좋겠다"라며 재미있고 단순하게 살아가자는 마음을 전했다.
"슬픔이 있고 기쁨이 있기 때문에 재밌는 거잖아요. 그냥 그렇게 단순하게 순간을 즐기면서 '나'라는 친구와 함께 살아가셨으면 좋겠어요."
"선생님이 해주시는 말을 듣고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졌어요"
선생님의 마음은 학급 아이들에게도 가 닿았다. 장난기가 많던 한 아이는 며칠 전 선생님에게 "아침마다 해주셨던 이야기를 들으면서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졌다"며 마음을 터 놓았다. 김 선생님, 짧게 이야기하는 것들이 아이들에게 모두 흡수가 되고 있다는 것을 느낀 순간이었다고 말했다.
그래서 선생님은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중이다.
"아이들이 저를 보면서 은근한 기대를 쌓아가더라고요. '선생님은 이러실 거야, 이런 분이실거야' 라고요. 그런데 제가 했던 어떤 행동으로 아이들의 기대가 무너진다면 아이들의 환상도 깨지게 될 것 같아요. '좋은 어른인 줄 알았는데, 그럼 난 누굴 보면서 살아야 하지?' 하는 고민도 생길 것 같아요. 그래서 '어른'은 아이들에게 한순간도 실망을 주지 않기 위해 늘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아이들의 기대와 환상을 지켜줄 수 있는 실망시키지 않는 어른이 좋은 어른이라고 생각합니다."
김 선생님이 가장 좋아하는 책은 <빨간 머리 앤>이라고 한다. 앤은 사고뭉치이기도 하지만 스스로에게 실망하기도 하고 격변기를 겪으며 성장한다. 그런 앤을 보며, 김 선생님 역시 항상 앤을 생각하며 살고자 한다고 했다.
"앤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그래 내가 앤이라고 생각하고 그냥 이 상황도 기분 좋게, 긍정적으로 넘기자라고 생각해요."
앞으로 더 똑똑한 어른이 되고 싶다는 김지훤 선생님. "사람에 대한 이해도 넓고, 지식도 방대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바람을 전했다.
오늘도 김 선생님의 SNS에는 반 아이들에게 이야기를 해주는 영상이 올라왔다. 지혜롭고 따뜻한 사람이 되라는 의미를 지닌 선생님의 이름처럼, 선생님은 오늘도 교탁 앞에 서서 실망시키지 않는 어른이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