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시 예술의 섬 장도에는 하프나무가 있다. 나무의 형태가 현악기인 하프를 닮았다고 해서 '하프나무'라 불려진다. 2023년에 여수시 공원과에서 숲 가꾸기 사업 일환으로 장도의 무성한 칡넝쿨과 잡목들을 제거하면서 특이한 형태의 삼나무가 발견되었다.
그 나무는 비스듬하게 누워있다. 태풍과 같은 큰바람에 쓰러진 듯하다. 나무가 눕게 되면서 12개의 가지들이 하늘을 향해 꼿꼿이 자라 자신들의 자태를 뽐내고 서 있다. 이 하프나무에 활력을 불어넣은 이가 최병수 작가이다.
그는 이곳을 음악 공원으로 조성하기 위하여, 그 나무 주변에 설치 작품들을 세우고 있다. 높은음자리표 등 다양한 형태의 음표들이 곳곳에 자리하고 있다. 이 음표들이 주변의 대나무 숲과 어울려 아름다운 하프의 선율을 만들어 내는 것 같다.
최병수의 작품 세계에는 고정관념이 없다
장도에는 최병수 작가의 작품이 참 많다. 국내보다 해외에 더 잘 알려진 환경운동가이자 설치미술가인 최 작가를 이곳에서 만났다.
그에게 어떻게 해서 화가가 되었냐고 물었더니 대답이 재미있다. '화가 나서 화가가 됐다'고 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이 '우리나라 국가 1호 관제(官製) 화가'라고 웃으며 말했다. 어리둥절한 필자에게 그는 자신의 지난날을 회고하며 말했다.
서슬 퍼런 군사독재 시절인 1986년, 숨조차 제대로 쉴 수 없는 그 당시에 수많은 대학생들이 독재정권에 저항했다. 언론의 자유가 박탈되었기에 대학생들은 자신의 의사 표시로 대자보를 쓰거나, 벽화를 그리기도 했다.
당시 최 작가에게는 홍익대학교 미술대에 다니는 친구들이 있었다. 목수 일을 하고 있었던 그는 그 친구들이 벽화를 그리는데 사다리를 만들어 도움을 주었다. 그 일로 인하여 그는 그 친구들과 함께 경찰서로 연행되었다.
한 경찰관이 취조 과정에서 그림을 그린 대학생들에게는 말을 올리더니, 국졸이자 목수인 자신에게는 반말하며 무시하였다. 이어서 경찰은 그를 송치할 목적으로 그의 직업란을 '화가'로 기재하였다.
그런 경찰의 처사에 화가 난 그는 이를 계기로 화가의 길로 뛰어든다. 민족미술협의회(민미협)에서 활동하기 시작했다. 당시 그의 대표적인 작품이 '한열이를 살려내라!'의 대형 걸개 그림이다.
1987년 6월 항쟁 당시 연세대학교 정문에서 최루탄에 맞아 쓰러졌던 이한열 열사를 추모하기 위해 연세대학교 도서관 건물에 걸린 그림이 바로 그가 그린 작품이다. 이후 그는 현장미술가, 설치작가, 환경운동가 등 다양한 활동으로 분주하게 시간을 보내고 있다. 2005년에 암 요양차 여수의 백야도로 왔다가 아예 여수에 눌러앉게 되었다고 한다.
웅천에 위치한 예술의 섬 장도에는 그의 많은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그의 작품세계는 참으로 독창적이고 기발하다. 장도 남쪽 끝 데크 광장에 전시된 그의 작품 중 '섬'에는 'ㅅ'이 없다. 단지 'ㅓㅁ'만 있다.
나머지 'ㅅ'을 찾는 것은 관람객의 몫이다. 가만히 보니, 멀찍이 보이는 '까막섬'이 그 퍼즐의 실마리다. '△' 모양의 그 섬을 나머지 글자에 맞춰보니 영락없이 '섬'이라는 글자가 완성된다.
최 작가에게 질문했다. "작가님은 그동안 수많은 작품을 만들어 왔는데, 이처럼 독창적인 작품을 만들어 가는 가장 중요한 동력이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이에 대해 그는, "그야 물론 상상력이지요"라고 즉각적으로 대답한다. 이어서 그에게 풍부한 상상력의 비결이 무엇인지 물어봤다.
"저는 학교를 안 다녔어요. 저는 중학교 2학년 때 학교를 그만뒀지요. 그래서 저는 그 어떤 고정관념에도 사로잡히지 않습니다. 또한, 화가가 되기 전에 저는 다양한 일을 해 봤습니다. 보일러 기사, 중국집 배달부, 웨이터, 목수 등 대략 19가지 정도 한 것 같아요. 이런 다양한 경험들이 저의 상상력의 자양분이 되지요.
마지막으로, 관찰입니다. 저는 호기심을 가지고 사물을 자세히 관찰합니다. 어떨 때는 서너 시간도 하지요. 오랜 시간 동안 들여다보면 영감이 떠오릅니다. 그 영감을 바탕으로 나만의 스토리텔링을 하지요. 예를 들어, 저기 저 바다와 섬들을 보세요. 그곳의 바닷물이 모두 사라진다면 어떻게 보이겠습니까? 저기 보이는 섬은 산이 되는 것이고, 우리 앞엔 거대한 지리산 계곡이 놓여 있겠지요."
그러면서 그는 우리나라 교육 현실을 안타깝게 바라보고 있다고 했다. 아이들의 상상력을 키워주는 역할을 해야 할 학교에서 오히려 이를 죽이고 있다는 것이다. 자신은 그런 학교가 너무 재미없어서 뛰쳐나왔다고 한다. 무한경쟁의 사회에서 상상력과 창의력만이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낼 수 있는 무기임을 그는 강조했다.
"우리 아이들은 엄청난 상상력과 호기심으로 무장되어 있습니다"라고 말하면서 자신의 경험담을 들려주었다. 1998년 경기도 고양시의 한 학부모 단체에서 자신에게 어린 학생들을 지도해 달라는 부탁이 들어와서 처음에 사양했지만, 너무 간절히 부탁해서 수락했다. 그리고는 '가르치지 않기'로 작정했다고 한다. '스스로 상상하고, 상상력을 끄집어내는' 수업을 하기로 한 것이다.
아이들을 마음껏 놀게 하고, '화분에 자신의 미래를 심어오라'는 숙제를 내줬다. 다음 날 아이들은 다양한 것을 화분에 심어왔고, 그 이유를 설명했다. 화분에 숟가락을 심어온 초등학교 3학년 아이가 있었다. '요리사가 되겠다는 것인가?' 했더니, 아니다. '사람들에게 사랑을 퍼주는 일을 하며 살 것이다'였다. 또 다른 아이는 30센티미터 자를 화분에 심어왔다. 그 이유인즉, '자처럼 꼿꼿하게 살아가겠다'였다.
예술의 섬 장도를 찾는 사람들은 작품을 통해 최 작가를 만난다. 관람객들은 '여인상', '기후 요정', '옷걸이와 옷 꼬리' 등 그의 독특한 작품들 앞에서 사진을 찍는다.
장도를 예술의 섬으로 바꾸기 위해 노력하는 최 작가의 다음 행보가 기대된다. 또 하나의 명품이 된 하프나무를 중심으로 어떤 형태의 음악공원이 탄생될지 그의 상상력을 기대해 보자.
덧붙이는 글 | 여수 넷통 뉴스에도 송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