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굳이?"
지난해, 그림책 작가인 김준영(36)씨가 35년간 살아온 자기 성씨를 '어머니 성'으로 바꾸겠다고 하자 돌아온 반응들이었다. 2019년 결혼을 했고 아직 자녀는 없지만, 아이를 낳는다면 준영씨의 성(모성)을 주고 싶다고 했을 때 돌아왔던 부정적 반응들과 같았다. '굳이'의 사전적 의미는 다음과 같다. '고집을 부려 구태여'.
주변인 중 99%가 '굳이?'라 물었는데, 딱 두 명 준영씨의 행동을 지지해준 사람이 있었다. 친어머니와 동료 작가였다. 동료의 '멋있다'는 응원 한 마디는 김씨가 자신과 같이 어머니 성을 쓰고자 하는 이들을 찾아나서는 계기가 됐다. 어머니 김선경씨 역시 딸의 이런 결정을 지지하는 마음으로 본인도 '엄마 성'으로 바꾸기로 했다.
딸도, 엄마도 '엄마 성'으로
지금 이 기사를 쓰는 나 역시 약 3년 전 혼인신고 당시, 향후 아이가 '엄마 성'을 쓰는 데 체크했었다. 그즈음 먼저 엄마성 쓰기를 실천한 부부 인터뷰를 읽었고, 그 편이 내가 바라는 성평등에 가까워 보였기 때문이다. 여전히 한 해 최소 138명 여성이 남편·애인 등 친밀한 관계의 남성에 의해 죽는 현실에서, 그 정도는 어렵지 않게 할 수 있는 실천 같았다(<한국여성의전화>통계). 물론 시댁의 반대에 부딪혀야 했지만.
준영씨에게도 비슷한 어려움이 있었다. 결혼 전부터 아이를 낳는다면 엄마인 자신의 성을 주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임신 출산시 위험을 구체적으로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단다. 그런 와중에 지난해 12월 <경향신문> 기자들이 독자와 협업하는 프로젝트를 알게 됐고, 여기에 김씨가 '엄마성 빛내기'를 제안했다. 세상에 한 명이라도 '엄마 성 사용자'를 늘리자는 생각에서다.
통상 미성년이거나 재혼 가정일 때 성을 바꾸는데, 성인이라도 어머니 성을 쓰고 싶은 사람들이 있으면 모여서 함께 직접 바꿔보자는 취지다. 함께 하겠다고 한 이들은 약 140여 명, 그 중 일부가 올해 3.8 여성의 날에 기자회견을 하고 전국 법원에 각기 '성·본 변경 청구서'를 제출했다.
여성이 남성 호주 아래 귀속되는 호주제는 2007년 폐지됐지만, 한국은 민법상 부성, 즉 아버지의 성이 기본 값이다. 이걸 바꾸려면 '어머니의 성과 본으로 바꾸고 싶다'는 취지의 청구서와 필수서류, 청구이유를 상세히 적어 법원에 제출해야 한다. 그걸 해당 지역 판사가 신청인의 '복리(福利: 행복과 이익)'에 부합하는지를 따져 기각하거나 허가한다.
청구서만 60여 쪽...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지난 4월 말 수원가정법원은 "본인의 성을 '김'으로, 본을 '의성'으로 변경할 것을 허가한다"고 결정했다. 36년 아빠 성으로 살다가, 지난 두 달 엄마 성으로 살아보니 어땠을까.
지난 6월 24일 서울 광화문 한 카페에서 만난 준영씨는 "다른 분들도, 저도 많이 듣는 얘긴데 일단 얼굴이 밝아졌대요"라며 환하게 웃는다. 그는 또 "내가 별난 게 아니다, 혼자가 아니란 걸 깨닫는 과정이라 정말 즐거웠다. 어쨌든 바라던 삶을 살게 된 거라 좋다"며 다음 말을 보탰다.
"굳이 바꿔볼 만합니다."
다음은 김준영씨와 만나 나눈 대화를 정리한 것이다.
- 왜 엄마 성으로 바꾸고 싶었나.
"아동학을 전공하면서 영유아 발달과 임신출산시 위험을 구체적으로 알게 된 게 큰 계기였다. 보통은 그냥 뱃속에 아이가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론 장기가 위로 밀리는 거다. 여전히 목숨을 거는 위험한 일이고, 몸에 평생 흉터와 후유증을 남기는 일이다. 그 위험한 업무를 하는 주체의 성을 따르는 것이 합리적이고 상식적인 일 아닌가 생각했다."
- 스스로 엄마 성으로 바꾸려고 했을 때 마주한 어려움은 무엇인지?
"비슷한 상황에서 성인이 엄마 성으로 바꾸는 데 성공한 사례를 그때는 알지 못했다. 선행 사례가 안 보였다. 간혹 성공 사례들은 이혼 가정이거나 아버지가 가정에 큰 정서적·금전적 피해를 끼친 경우였다. 나는 둘 다 아니니까 '아마 안 되겠지', 지레 짐작을 했던 것 같다.
둘째론, 아이한테 내 성을 주고 싶다고 했을 때랑 비슷하게 지지를 잘 받지 못했다. '굳이 그래야 하느냐'란 반응이었다. 사랑에 기반한 걱정이긴 했지만 도움 되는 말은 아니었다. 그 반응이 거의 100%였는데 딱 한 명 지인이 제 얘길 듣고 '준영 작가, 멋있다'라고 했다. 그 한 마디만 믿고 갔던 것 같다."
- 어머니 김선경씨도 엄마 성으로 바꾸려했다. 지난 1월 팟캐스트에 나와 '딸의 방탄조끼가 돼 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때 어땠는지.
"세상 든든했다. 엄마가 진술서 써주는 정도로 생각했는데, 그렇게 해주리라곤 생각도 못 했다. 그때는 나 같은 행동을 하는 사람이 너무 절실했고, 똑같은 행동을 해주는 사람이 너무 필요했는데 엄마가 그걸 해준 거다. 엄마의 청구는 기각됐다. 엄마가 극I 성향인데, 그럼에도 (나 때문에) 팟캐스트나 영상에 자주 출연하신다.
얼굴 공개가 부담스러울 텐데 큰 용기를 내셨구나 싶고, 그게 큰 힘이 됐다. 똑같은 행동을 해주는 사람이 너무 필요했는데 엄마가 그걸 해준 거다. 내가 나중에 자식을 낳으면 꼭 엄마 같은 엄마가 돼야지, 혹 자식을 낳지 않더라도 이 세상 어린이들에게 엄마 같은 어른이 돼야지 생각 했다."
- 법원 청구서가 60여 쪽으로 방대하다. 근데 이렇게 길어야 바꿀 수 있는 건가.
"맞다. 저도 이 정도로까지 해야지만 바꿔주는 건가 싶었다. 다만 이 때 목적은, 일단 엄마 성 쓰는 사례를 한 명이라도 더 만드는 거였다. '무조건 되게 한다'는 느낌으로 정말 모든 자원을 다 끌어냈었다. 진술서 분량도 어마어마했다.
게다가 저는 이 사안에 대해 몇 년 동안 생각해 온 거라 쓸 말이 많았다. 그나마 저는 직업작가라 글쓰기에 친숙하단 게 도움이 됐다. 그런데 자기 생각을 글로 표현하는 게 쉽지 않잖나. 다른 분들과 같이 신청하다보니 그게 큰 장벽인 분들도 많더라. 이렇게 해야지만 성을 바꿔주는 세상은 어딘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아버지의 진술서 "본인의 결정을 응원한다"
- 아버지가 낸 진술서가 인상 깊다. "큰딸의 성을 아버지인 저의 성에서 제 부인의 성으로 변경하는 것에 동의하며 본인의 결정을 응원한다"며 이렇게 썼다. '저는 준영이를 포함해 자녀들이 성별로 인한 편견이나 고정관념에 갇히지 않기를 바랐습니다. 준영이가 아버지인 제 성을 따라야 한다는 것은 제가 바라고 교육해온 양육 스타일과는 반대되는 고정관념입니다. (...) 세상에 자기 의지로 태어난 사람은 아무도 없는데 자신의 성마저도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부모가 정해주고 있습니다. 일생 중 최소한 한 번은 자신의 의지에 따라 성본을 변경할 기회가 주어지 것이 필요하다고 봅니다'라고.
"아버지께선 말씀하셨다. '성인이 아예 새로운 성도 아니고 낳아준 엄마 성으로 바꾼다고 하는데 거기에 내(아버지) 동의가 필요하다는 게 이해가 안 된다'고. 다른 참가자 사례를 볼 때, 법원에선 필수서류가 아닌데도 '친부 동의서'를 관행적으로 요구하고, 없으면 허가를 거의 안 해주더라. 바뀌어야 할 부분이다."
- 부성우선주의가 상위법인 헌법에 위배된다고 했는데. 좀 더 설명한다면?
"헌법 11조에는 '모든 국민이 평등하고, 성별로 차별 받지 않는다', 10조엔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있다'고도 써 있다. 그런데 민법 781조의 부성우선주의, 아빠 성을 기본으로 하는 건 다른 이유가 없이 오로지 성별뿐이다. 저는 부성우선주의는 가정 내 평등과 행복을 달성하는 데에도 걸림돌이라 보고, 이게 민법이 헌법을 위반하는 거라고 본다."(실제로, 지난 2021년 "아빠 성 우선주의는 구시대 유물"이라며 관련한 헌법소원이 제기된 상태다. - 편집자말)
- 법원 허가 결정이 났는데, '굳이' 바꿔보니 어떤지.
"너무 좋다. 제가 바라던 일은 이 세상에 엄마 성 쓰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늘어나는 거였는데 한 명 늘어났잖나. 다른 참여자들까지 하면 최소 11명이 늘어났다. 저도 그렇고 다른 이들도, '얼굴이 많이 밝아졌다'는 얘길 많이 듣는다. 혼자가 아니라는 걸 확인하는 과정이었다. 비슷한 세상을 꿈꾸는 사람들의 이름과 존재, 얼굴을 직접 보는 게 저한텐 큰 위로가 됐다."
-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옛날엔 여자가 바지를 입는다는 이유만으로, 머리가 단발이란 이유만으로 기사가 나오곤 했다. 제가 이걸 한다고 했을 때 '전통이 무너진다'고 하는 분들 많았는데, 예전 전통을 다 따지면 우린 지금 직업 선택의 자유도,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할 자유도 없지 않았을까. 제가 그랬듯, 내 생각이 너무 소수라서 외롭다거나 내가 비정상인가 생각하는 분들은 그런 생각을 안 하셨으면 한다. 세상은 바뀌고 있다. 희망 잃지 않으시면 좋겠다."
이날 준영씨와 나는 눈을 맞추고 자주 고개를 끄덕이며 서로의 얘기에 공감했다(준영씨를 나는 '신념 아이돌'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인터뷰 뒤 찾아본 '굳이'의 의미가 그가 보여준 올곧은 태도와 잘 어울린다는 생각을 했다. '굳이'의 다른 사전적 뜻은 다음과 같다. '단단한 마음으로 굳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