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24일 오물 풍선 350여 개를 살포했습니다. 경기 북부와 서울 등 남측에만 100여 개가 낙하했습니다. 북한의 대남 오물 풍선 살포는 올해 들어서만 벌써 여섯 번째입니다. 5월 말 살포된 1차 260여개, 6월초 2차 600여 개를 합치면 천여 개가 훌쩍 넘습니다.
오물 풍선이 낙하하면서 차량을 덮치거나 각종 쓰레기 잔해가 주택과 상가를 덮쳤습니다. 심지어 오물 풍선에는 인분에서 유래됐을 기생충도 다수 발견됐다고 합니다. 국민들은 불안에 떨 수밖에 없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6·25전쟁 제74주년 행사에 참석해 북한의 오물 풍선 살포에 대해 "비열하고 비이성적인 도발"이라며 강력하게 비난했습니다. 윤 대통령의 단호함과 북한이 살포하는 규모만 보면 오물 풍선은 대한민국에 대단히 위협적입니다. 그런데 정작 군 당국의 대응을 보면 고개가 갸우뚱해집니다.
군 당국, 오물 풍선 막을 방법 없다... 대북 방송도 중단
북한이 여섯 차례나 오물 풍선을 남한 측에 보냈지만, 정부와 군은 막을 방법도 대응책도 내놓지 않고 있습니다. 아래는 이와 관련한 국방부 출입기자와 군 당국의 질의응답입니다.
기자 = 북한이 쓰레기 살포 도발을 했는데 여기에 대해서 정확하게 대칭적인 대응할 수 있는 방안은 없는 건지, 북쪽에서 풍선이 넘어왔을 때 직접적으로 사격으로 떨어뜨릴 수 있는 그런 조치는 할 수 없는 것인지 답변 부탁합니다.
이성준 합참 공보실장 = 북한이 쓰레기를 버린다고 해서 저희도 쓰레기를 버릴 수는 없습니다. 그것은 범죄 행위고요.... (중략) 국가가 대응하는 데는 또 국가의 품격이 있습니다. 저희는 그에 맞게 행동하고 있고요. 쓰레기가 날아오는 오물 풍선을 격추해서 떨어뜨리는 것은 2차적인 피해가 있고 또 그 탄이 다른 곳으로 갈 경우에 다른 피해가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안전하게 떨어진 다음에 수거하는 것을 저희는 지침으로 하고 있습니다.
군 당국은 북한의 오물 풍선에 대응해서 안전하게 수거하는 것만 하고 있다고 합니다. 앞서 군 당국은 지난 9일 접경지역에서 고정식 확성기로 대북 방송을 하는 등 맞대응을 했습니다. 그러나 이후에는 확성기 가동도 대북 방송도 없었습니다. 합동참모본부는 25일에도 오물 풍선에 대응하는 "대북 확성기 방송은 현재까지 실시하지 않았고, 실시 계획도 없다"고 밝혔습니다.
오물 풍선이 우리나라에 끼치는 영향과 위협의 정도에 비추어 본다면 군 당국의 대응은 이상하리만치 소극적입니다. 못 막는 게 아니라 안 막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대남 오물 풍선의 시작은 대북 전단
북한이 오물 풍선을 보내는 이유는 대북 전단 때문입니다. 북한은 대북 전단에 맞서 5월 28일부터 계속해서 오물 풍선을 살포했고, 또다시 전단을 북한으로 보내면 오물로 몇십 배 되갚겠다고 수차례 공언한 바 있습니다.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은 21일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공개한 담화에서 "국경 부근에는 또다시 더러운 휴지장과 물건짝들이 널려졌다"라며 "분명히 하지 말라고 한 일을 또 벌렸으니 하지 않아도 될 일거리가 생기는 것은 당연하다"라고 말했습니다.
북한이 대북 전단에 민감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천영우 한반도 미래포럼 이사장은 21일 열린 '북한의 대남정책 전환과 향후 남북관계 전망' 포럼에서 "(대북 전단이) 김정은을 자극적으로 표현한 내용도 담고 있어 북한이 강경 반응을 보이는 것"이라며 "북한 당국이 받아들이는 대북전단의 민감성은 매우 크다"고 지적했습니다.
천 이사장은 "북한의 오물 쓰레기에 대해 너무 호들갑을 떨 필요가 없고 과잉대응할 필요가 없다고 본다"면서도 "다만 북한을 특별하게 자극하는 남한 단체들에 대해 적절한 조치를 취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과거 이명박 정부 때도 그런 단체에 대해선 단속을 했다"고 밝혔습니다.
이어 "북한이 원점타격하겠다는 게 비록 신빙성은 없지만 만의 하나 그런 일이 발생하면 국민의 안전이 위협받게 된다는 논리로 과격한 단체에 대해선 경찰이 제재를 해야 한다고 설득했다"면서 "아무리 표현의 자유가 있다 하더라도 그 표현의 자유를 국민의 안전까지 위협하는 방식으로 행사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전단 살포가 표현의 자유? 헌재 결정문에 담긴 진짜 이유
정부는 대북 전단을 막기 위해 2020년 '남북관계 발전에 관한 법률'을 개정해 전단 살포를 금지했습니다. 그러자 대북 전단을 살포하는 탈북 단체들은 '표현의 자유'를 침해했다며 헌법소원을 제기했고 위헌 결정이 내려졌습니다.
탈북 단체와 정부는 헌재의 근거를 이유로 대북 전단 살포를 막을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통일부 대변인은 지난 10일 기자브리핑에서 "전단 등 살포 문제는 표현의 자유 보장이라는 헌법재판소 결정의 취지를 고려하여 접근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헌법재판소의 결정문을 자세히 읽어보면 대북 전단 살포가 북한의 도발로 이어지고 있다는 2016년 대법원 판결처럼 대북 전단 금지법이 대한민국 국민의 생명과 신체의 안전을 보정하는 입법 목적에 부합한다고 판단했습니다.
다만, 대북 전단 살포를 일률적으로 금지할 경우 '과잉금지원칙'을 어길 수 있고, 경찰관 직무직행법 등을 활용해도 충분히 막을 수 있다며 위헌 결정을 내린 것입니다.
대북 전단 살포, 충분히 막을 수 있는데...
'경찰관직무집행법' 제5조 1항을 보면 '사람의 생명 또는 신체에 위해를 끼치거나 재산에 중대한 손해를 끼칠 우려가 있는 위험한 사태가 있을 경우 경찰관은 그 장소에 모인 사람에게 경고할 수 있고. 그 장소에 있는 사람 등에게 위해를 방지하기 위해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조치를 하게 하거나 직접 할 수 있다'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대북 전단 살포가 대한민국 국민의 생명과 신체와 재산에 위협을 주는 행위라는 인과관계가 분명하다는 사실이 드러나고 있다는 점에서 경찰이 직접 나서서 탈북 단체의 전단 살포를 막을 이유가 충분한 셈입니다.
그런데도 윤희근 경찰청장은 10일 기자간담회에서 "(대북 전단 살포를) 국민의 생명과 신체에 대한 심각한 위협이라고 연결 짓기에는 무리라고 본다"면서 헌재의 판단과는 전혀 다른 의견을 내놓았습니다.
지난 17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윤석열 정부의 대북 전단 대응의 문제점과 해결 방안' 토론회에 참석한 접경지역인 파주 헤이리마을 안재영 촌장은 "지난해 9월 위헌 결정으로 멈춰있는 대북 전단 살포 금지법에 대한 헌법재판소 지적 사항을 속히 보완해 전단 살포를 근본적으로 막아달라"고 호소했습니다.
앞서 통일부는 14일 탈북 단체와 면담을 진행하면서 대북 전단 살포 금지를 요청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라는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존중하기 때문'이라고 해명했습니다.
경찰과 통일부는 헌재의 판단을 존중한다면서 결정문에 담긴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켜야 하고, 현행법으로 충분히 막을 수 있다는 의미는 외면하고 있는지, 그 속내가 정말 궁금해집니다.
덧붙이는 글 | 독립언론 '아이엠피터뉴스'에도 게재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