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인간사회든 저마다의 불평등에 합당한 근거를 대야만 한다. 그러지 못할 때는 정치사회적 구성물 전체가 붕괴될 위험에 처한다. 그래서 어느 시대든 불평등이 존재하고 응당 존재할 수밖에 없다는 식으로 불평등을 정당화하고 구조화하는 경제적 사회적 정치적 규칙을 진술하기 위한, 일군의 모순된 담론과 이데올로기를 만들어낸다." (피케티, 안준범 옮김, 2020, <자본과 이데올로기>, 11쪽, 문학동네)
<21세기 자본>으로 유명해진 피케티(Piketty)가 <자본과 이데올로기>에서 한 말이다. 그는 지배계급은 끊임없이 불평등을 유지하는 이데올로기를 만들어낸다고 했다. 기득권 지배층이 만든 허구가 사람들에게 얼마나 수용되는지에 따라 사회 모습은 달라진다.
책 <불평등과 이데올로기>는 피케티가 제기한 '불평등'과 '이데올로기' 문제를 다룬다. 영미 모델 미국, 유럽 모델 독일, 지중해 모델인 스페인, 북유럽 모델인 스웨덴과 비교하며 한국의 불평등 현실, 이데올로기, 쟁점, 변화 가능성 등을 탐색한다. 외국과 대비는 우리 사회 현실과 위치를 분명하게 드러낸다.
책은 5부 20장으로 구성됐다. 1부 통계로 보는 한국의 불평등, 2부 한국 사회의 불평등 이데올로기, 3부 불평등 사회와 공정성, 4부 불평등·불공정 담론의 쟁점들, 5부 불평등 체제의 불안정은 중간 주제에 해당한다. 모든 주제가 의미 있지만, '불평등과 이데올로기'라는 큰 주제에 비추어 1부와 2부가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작은 주제라고 볼 수 있는 1장~20장은 각각 20개의 불평등 관련 질문으로 이루어져 있다. 글쓴이는 그 질문에 각종 통계와 논거를 들어 대답한다. 시작은 '한국 사회 불평등은 견딜 만한가?' '왜 우리는 불평등한가?'라는 물음이다.
우리는 왜 불평등을 견디고 있는가?
지배계급은 '불평등은 없다', '불평등은 정당하다', '평등 사회 실현은 불가능하다'라는 이데올로기를 퍼뜨린다(책, 85쪽) 책은 이 명제들을 질문으로 바꿔 하나씩 각종 자료를 통해 증명하며 우리 사회 불평등 현실을 드러낸다(책, 86~132쪽).
책 첫 두 가지 질문인 '한국 사회 불평등은 견딜 만한가?' '왜 우리는 불평등한가?'는 '왜 우리는 불평등을 견디고 있는가?'로 향할 수밖에 없다. 위 표를 포함해 각종 자료가 보여주며 많은 이들이 몸으로 느끼듯, 우리 사회 불평등은 심각하다. 실재한다. 이것은 정당들과 대통들도 인정했다. 그렇다면, 한국 사회 구성원들은 왜 불평등을 참고 있을까?
글쓴이는 한국에서 '불평등은 정당하다'라는 말이 매우 복잡한 형태로 유지되기 때문이라고 본다. '불평등 대물림'을 알면서도 강한 '능력주의(메리토크라시)' 인식과 '계층 상승 이동 가능성에 대한 기대'를 버리지 못하고 있다는 진단이다.
"한국은 강한 실력주의와 결합된 상승 이동 가능성과 수저 계급 사회의 불평등 대물림으로 인한 불공정성이 공존하며 각축하고 있어 상승 이동 기회 보장 명제는 수용되지도 거부되지도 않았다고 할 수 있다." (책, 115쪽)
'능력'이라는 이름으로 불평등을 강하게 요구하면서, 그것을 평등과 공정이라고 여기는 '집단적 착시 현상의 결과다. 그 '능력' 속에는 소수 기득권층이 정한 특정한 직업을 가진 사람들과 몇몇 학교 출신만 포함된다.
한국인들이 불평등 심화 현상을 분명하게 인식한다는 통계는 여러 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책에서는 국제사회조사프로그램(ISSP) 2009, 2019년 사회불평등조사, 노회찬재단과 한국비정규센터 2023년 자료를 활용해 이를 보여줬다(책, 163~166쪽).
우리 사회에서 '인생 성공에서 노력이 중요하다'는 응답은 2009년 87.2%에서 2023년 59.0%로 10년 사이에 급감했다(책, 165쪽). 반면, '인생 성공에서 출신 배경이 중요하다'는 대답은 2009년 24.9%에서 2023년 50.4%로 큰 폭으로 증가했다(책, 166쪽).
"기회 구조의 불공정으로 인해 한국인은 가난을 개인 능력 부족의 결과가 아니라 사회 구조적 폐해의 결과로 인식하는데, 이러한 경향은 점점 더 강화되고 있다." (책, 171쪽)
통계청이 발표한 '사회 조사 결과'도 같은 상황을 보여준다. 자신의 계층 상승 이동 가능성과 자녀 세대의 계층 상승 이동 가능성 모두 30% 아래다(통계청 2023년 11월 8일 보도자료, <사회 조사 결과>, 29쪽). 특히 자녀의 계층 상승 이동 가능성은 2013년 39.6%였는데, 이후 꾸준히 감소했다. 2023년에는 29.1%이다.
글쓴이의 답을 들었지만, 다시 물어보게 된다. 그런데 왜 한국 사회는 불평등을 견디고 있을까?
어떻게 바꿀 것인가?
책에서 또 다른 답을 찾을 수 있다. 한국인들이 '평등 사회 가능성'을 자신하지 못한다는 주장이다. 불평등한 사회를 바꾸는 데는 동의하지만, 대안적 평등 사회로 가려는 의지는 강하지 않다는 것이다(책, 116~125쪽). 거칠게 표현하면, 문제는 알고 있지만,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필요한 돈과 시간을 쓰는 데는 망설인다는 말이다. 물론 그 망설임 속에는 대안 제시의 부족도 들어 있을 것이다.
"현재 우리 사회는 불평등의 정당성을 놓고 각축하고 있다. 불평등의 정당성이 부정되어야 평등 사회로 나아갈 수 있다. 그러나 평등 사회를 실현할 가능성이 없다면 시민들은 불만이 있더라도 불평등 체제를 현실적으로 수용하고 적응할 것이라는 사실 또한 부정할 수 없다." (책, 315쪽)
이것은 우리 사회 최근 정치 상황을 돌아봐도 짐작할 수 있다. 새로운 정치인의 급부상과 몰락의 반복. 기대에 대한 배신과 좌절이 반복되면 체념하게 된다. 직업 정치인들은 그 체념을 먹고 자라지만, 그 사이 다수 구성원의 삶은 피폐해진다.
어떻게 착취당하는 이들이 현실을 받아들이거나 적극적으로 가담할까? 불평등한 체제가 유지될 수 있을까? 이 질문은 오래됐다. 많이 이들이 던지고 다양한 답을 내놨다. 해결책을 내놓은 사람들도 있다. 마르크스(Marx), 라이히(Reich), 들뢰즈와 가타리(Deleuze and Guattari), 조스트(Jost), 그리고 내가 모르는 사회 변화를 바라는 수많은 존재.
책 <불평등 이데올로기>는 이 질문에서 출발했다. '한국 사회는 왜 불평등을 받아들이는가?' '평등하지 않은 한국은 왜 유지될까?' 그의 질문과 대답이 특별하지는 않다. '노동자 중심 주체 형성 전략'과 '평등 사회를 향한 제도 개혁'이라는 대안은 순진하다는 느낌까지 든다(책, 325~326쪽). 그래서 이 책은 특별하다.
우리는 '불평등'을 지나치게 '기본값(디폴트, default)'으로 생각한다. 자칭 진보와 보수를 가리지 않고. 그래서 자신의 문제로 여기지 않는다. 자기의 직업, 자신의 전공 분야, 가족의 문제가 되면 정작 달려들지 못한다. 아니 않는다. 역주행도 마다하지 않는다.
"사적 상황에서는" 자신의 주장과 "역행하는 방향으로 거리낌 없이 행동"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오욱환, 2021, <교육 불평등>, 6쪽, 교육과학사). 교육학자 오욱환은 모두가 '교육 평등화'를 주장했지만, 아무도 실현하지 못했다면서 그 이유를 이렇게 짚었다.
"당신들의 잠은 편안합니까?" (책, 346쪽)
<불평등과 이데올로기> 마지막 문장이다. 글쓴이가 소수 1% 엘리트에게 던진 질문이다. 우리 사회에 '불평등'과 '평등'에 관한 주장은 턱없이 부족하다. 자료가 쌓이지 않는다. 질문은 더욱 적다. 내가 발을 담그고 있는 교육 분야는 더 그렇다. 불평등에 관한 더 많은 말이 필요하다. 더 큰 목소리가 있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불평등 이데올로기>를 채운 20가지 질문은 충분히 의미 있다.
"세상에는 두 부류의 사람들이 있다. 불평등 체제로부터 혜택을 받는 사람과 피해를 입는 사람, 자신의 몫보다 더 많이 누리는 사람과 덜 누리는 사람, 남의 몫을 빼앗는 사람과 자신의 몫을 빼앗기는 사람." (책, 31쪽)
나 자신에게 먼저 묻는다. '나의 잠은 편안한가?' 같이 물어보자. '우리의 잠은 편안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