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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X+U와 MBC가 공동 제작한 다큐멘터리 '그녀가 죽였다' 방송 화면.
X+U와 MBC가 공동 제작한 다큐멘터리 '그녀가 죽였다' 방송 화면. ⓒ 연합뉴스
 
(서울=연합뉴스) 오명언 기자 = "나 지금 동영상 찍으맨(찍는다). 찍으맨?(찍을까?)"

LG U+의 스튜디오 X+U와 MBC가 공동 제작한 다큐멘터리 '그녀가 죽였다'는 전 남편 살해범 고유정의 목소리를 들려주며 시작한다.

고유정은 밝은 목소리로 전남편의 생일을 축하해주는 노래를 부르고 있고, 서른세 번째 생일을 맞았던 피해자는 어린 아들을 품에 안고 있다.

영상 속에서 고유정은 몇 마디 하지 않는다. "00아 아빠 생일이야", "아빠 서른세 번째 생일", "아빠 뽀뽀(해줘)"라고 말한 뒤 본인의 얼굴을 비추며 "엄마는 엉망"이라고 말한다. 다큐멘터리는 "엄마는"이라는 말소리를 반복해서 틀더니, 'AI로 고유정 보이스 재현 중'이라는 자막을 띄운다.

"고유정이고 서른일곱입니다." 곧 있어서 한 여자의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2019년 피의자 신문조서를 AI로 재현된 고유정의 목소리로 읽은 것이다.

'그녀가 죽였다'는 제주 전남편 살인사건, 가평 계곡 살인사건, 연쇄 보험 살인 사건, 인천 초등생 살인 사건, 박초롱초롱빛나리 양 유괴 살인 사건 등 실제 있었던 사건을 색다른 스토리텔링 기법으로 엮은 시리즈다. 내레이션 대신 인공지능(AI) 기술로 구현된 범죄자들의 목소리로 피의자 신문조서와 의견서를 읽어 내려간다.

고유정뿐이 아니다. 보험금을 노리고 남편을 계곡에서 물에 빠지도록 해 살해한 이은해의 목소리를 재현한 AI는 "제 이야기를 할 결심을 하게 되었습니다"고 말하고, 초등학생을 유괴해 살해한 전현주를 닮은 목소리는 "나리 양 유괴사건에 대해서 진술하겠습니다"며 말문을 연다.

제작진은 "AI 기술을 통해 범죄자들의 소름 끼치는 실제 목소리를 재현했고 팩트 기반의 사실적 묘사를 담아냈다"고 설명했지만, 범죄자가 사건에 대해 진술하는 걸 듣는 듯한 경험에 대한 시청자 반응은 갈리는 편이다.

"평범한 사건 재연하고는 전달력이 차원이 다르다"는 반응과 함께 "지나치게 자극적이고 불필요한 연출로 느껴진다", "AI 기술로 범죄자의 목소리를 재현하는 것 자체가 소름 끼치고 불쾌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최근 방송가에서는 AI를 활용한 프로그램이 잇따라 제작되고 있다.

AI의 목소리와 진짜 가수의 목소리를 구분하는 음악 버라이어티 예능 KBS 2TV '싱크로유', 사전 인터뷰 내용을 바탕으로 출연진의 성향을 파악하는 AI 시스템을 활용한 JTBC 'My name is(마이 네임 이즈) 가브리엘', 국내 최초로 생성형 AI를 활용해 제작한 EBS 다큐멘터리 '위대한 인도' 등이다.

올해 초에는 AI가 아예 PD가 되어 캐스팅과 연출, 진행, 편집을 도맡는 프로그램(MBC 'PD가 사라졌다')이 있었고, 지난 3월에는 AI 기술을 활용한 스토리텔링 프로그램(KBS '김이나의 비인칭시점')도 방송됐다.

AI를 전면에 내세운 이런 실험들이 성공적이라고 평가하기는 아직 이르다. 시청자들 사이에서는 신기하다는 반응도 있지만 기괴하고 불쾌하다는 반응도 적지 않다.

그런데도 업계에서는 AI가 미래 방송 제작 환경을 완전히 바꿔놓을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최근 AI를 활용한 프로그램을 제작한 한 방송사 PD는 "예상했던 대로 시청자들의 반응이 마냥 좋지만은 않았다"며 "언캐니 밸리(불쾌한 골짜기·가상인간을 사람과 똑같이 그릴수록 거부감을 느끼는 현상)를 극복하는 것이 과제"라고 짚었다.

이어 그는 "아직은 낯설고 어색하겠지만 시청자들은 앞으로도 AI를 활용한 방송을 반복해서 보게 될 것"이라며 "그중 익숙해진 시청자들 사이에 팬덤이 생기면서 AI만의 매력을 보여주는 독특한 장르가 생길 것 같다"고 전망했다.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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