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에서 단내가 나든 말든 일을 해야 일용할 양식을 구할 수 있는 사람을 우리는 노동자라 부른다. 자신의 노동력을 팔지 못하면 생존할 수 없는 사람들. 그런데 그 노동자의 성별이 여성일 경우, 살아남기 위해 통과해야 하는 바늘귀는 더 좁아진다.
입직부터 퇴직까지 여성 노동자에게 세상은 더 가혹하고 인색하다. 하지만 여성 노동자들은 그런 세상에 잠자코만 있지 않았다. 우리에게는 강주룡이 있고, 동일방직 여공들이 있으며, 톨게이트 여성 노동자들이 있다. 투쟁하는 여성 노동자들의 계보가 우리의 역사이자 미래다.
하지만 일터에서 인간답게 일하기란 여전히 어려운 문제다. 반쯤은 노예인 채로 공짜 노동을 해야 하고, 육체뿐 아니라 정신 역시 반쯤은 주눅이 들어 있어야 하는 게 '정상적인' 일터의 풍경이다. 더구나 여성은 많은 경우 '필수' 노동자라고 칭송을 받으면서도 결코 남성 노동자만큼은 대우받을 수 없는 곳이 일터이기도 하다. 또 이모, 아가씨, 아줌마, 여사로 불리며 청소와 커피 타기 따위와 같은 부수적인 일에는 유독 여성성이 강조되지만, 무급 생리휴가를 보면 여성 노동자의 몸은 남성과 동일한 기준으로 취급된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그런 일터에서 여성이 지지 않기 위한 법을 담은 책이 나와 주목된다. 바로 숨쉬는책공장이 최근 발간한 <일터에서 지지 않는 법>이다. 이슬아, 최여울, 여수진, 김한울 노무사 4인이 '페.페.로' 그러니까 '페미니스트가 페미니스트에게 알려주는 노동법'이란 이름으로 낸 이 책은 '일하는 여성을 위한 여성 노무사 4인의 실전 코칭'이란 부제만큼 여성 노동자가 알아야 할 노동법을 코치한다.
임금명세서부터 생리휴가와 육아휴직, 그리고 퇴직금까지
1부 '페미니스트 노무사가 페미니스트 노동자에게'에서는 이슬아 노무사가 자신과 엄마의 노동을 시작으로 '여성 노동'의 의미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는 우선 여성 직업군을 살펴보며 '저임금 불안정 고용'과 방광염, 역류성식도염, 근골격계질환, 폐암과 같은 직업병 등의 문제가 공통적으로 존재한다는 점을 끄집어낸다.
그리고 그런 성별화된 일터의 문제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여성 노동자가 노동법을 더 잘 알아야 한다고 제안한다. 많은 경우 고용 불안정은 더 크고 회사 규모는 더 작기 일쑤인 사업장에서 일하는 여성 노동자들이 최소한 법적으로 보장된 권리만이라도 당당하게 행사하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이슬아 노무사가 여성 노동자가 노동법을 알아야 한다고 말하는 또 다른 이유는 노동법의 탄생에 여성 노동자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세계적으로는 19세기 산업혁명 시기 성냥공장 어린 여성 노동자들의 투쟁으로 유해물질 사용금지법이 만들어졌으며, 한국에서는 1948~1952년 조선방직 여성 노동자들의 투쟁에 이어 1953년 노동조합법, 노동쟁의조정법, 노동위원회법, 근로기준법 등 노동법이 제정됐다.
또 '남녀고용평등법'처럼 여성 노동자들은 투쟁으로 노동법을 바꾸어 왔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다. 나아가 동일방직노조, 청계피복노조, 콘트롤데이타노조 등 여성 노동자들의 유구한 역사를 이야기하며 "사실 현장에서는 하고 싶은 말은커녕 해야 할 말도 못하는 우리여도 여성이 뭉치면 이야기가 달라"질 것이라고 제안한다.
2부 '시작부터 질 수 없지: 채용과 근로계약'에서는 최여울 노무사가 입직부터 여성 노동자가 당하는 다양한 채용 성차별과 근로계약 시 유의해야 할 차별과 문제를 살펴본다. 그가 소개하는 채용 성차별을 읽다보면 회사, 특히 대기업들이 여성을 채용하지 않기 위해 정말 뻔뻔히도 불법을 저지르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아무런 근거도 없이 남녀 채용 비율을 정해놓기나 '아.묻.따'로 남성 지원자에게 더 높은 점수를 주거나 반대로 여성 지원자의 점수를 깎는 것이다. 그럼에도 채용 성차별에 대한 법적 제재는 고작 500만 원의 벌금이 다다.
근로계약서에 대해서는 회사의 부당한 처우에 '노동자 스스로를 지킬 최소한의 무기'라며 입사부터 퇴사까지 여성 노동자가 알아야 할 권리를 꼼꼼히 짚어준다. 근로계약서를 작성하지 않을 경우 최대 500만 원까지 벌금을 낼 수 있으며, 계약기간이나 임금을 왜 꼭 확인해야 하는지, 그리고 근로계약서에 있는 내용이더라도 무조건 OK는 아니라는 점 등을 알아갈 수 있다.
3부 '적당하게 일하고 제대로 받기: 근로시간과 임금'에서는 여수진 노무사가 존엄을 지키며 일하는 데 필요한 '노동시간'과 '임금'의 모든 것을 말해준다. 그는 시작부터 '열심히'가 아니라 '적게 일해야 한다'라며, 노동시간의 보편적 의미부터 남성생계부양자 모델, 생리휴가, 상병수당 등 젠더적 관점에서의 문제까지 살펴본다.
임금에 대해서는 '내 노동의 영수증'인 임금명세서의 기본급과 수당, 공제액에 관한 정보부터 이른바 '임금 지급의 4대 원칙'과 떼인 월급 받는 법, 그리고 성별 임금 격차까지 여성 노동자가 알아야 할 정보들을 풀어간다.
4부 '차별과 괴롭힘, 당당하게 맞서기: 평등과 안전'에서는 김한울 노무사가 노동자, 특히 여성 노동자가 일터에서 직면하는 위험과 차별, 일터에서의 괴롭힘을 살펴보고 어떻게 맞설 것인지에 대해 조언한다. 김 노무사는 우선 우리는 다른 '몸'으로 일하며 이 몸은 직장에서건 일상에서건 분리되지 않는다는 점을 전제한다. 그리고 이를 토대로 '여성의 노동이 더 안전하다'는 사회 통념이 왜 잘못됐는지, 또 차별에 대비하고 맞서는 방법을 살펴본다.
이어 자신의 사례를 비롯해 일터에서의 괴롭힘에 대해 가스라이팅, 감정 불평등, 일터 민주성이란 키워드로 돌아본다. 또 여성 노동자들은 일터에서도 성적으로 대상화되는 현실을 주목하며 성적 괴롭힘으로서 직장 내 성희롱을 살펴보고 '딱 한 번도 넘어가지 말자'고 제안한다.
연쇄적이고 구조적인 성차별에 맞선 실천 코칭
책 마지막에는 일하며 투쟁하는 여성 노동자들의 이야기들이 실렸다.
"사실 20만이 적은 수는 아니"라는 건설산업연맹 김경신 부위원장은 "여자들이 왜 (노동조합) 안 하려고 그러는지 확인해서 노동조합이 지원해줘야 될 게 뭔지" 고민해야 한다며 "남성 지회장이나 남성 지부장이 안 나오거나 이러면 임금을 더 올려주든, 원하는 게 뭐든, 조직 내에서 판단해 시스템을 바꾸잖아요"라고 강조한다. 보건의료노조 금천수요양병원지부의 천은혜, 주정진, 전영은 노동자는 "나가 봤자 현실은 똑같으니 여기서 바뀌어야 한다"고 말한다.
출산 이후 1년 동안 단축근무를 보장받은 것은 이들이 노조 활동을 통해 바꾼 것들 중 하나다. "노조를 시작하니 아이들이 더 예뻐 보인다"는 공공운수노조 함미영 보육지부장은 "만약 돌봄노동이 없었다면 많은 여성들이 경력 단절을 겪었을 것"이라며 "여성의 경제활동을 다른 여성이 받쳐주고 있는 상황"이라고 꼬집었다.
책 기획자 헬북이 '에필로그'에 적은 것처럼 '일터에서 지지 않는 법'은 사실 존재하지 않는지도 모른다. 최근 현대건설기계에 3년간의 불법파견을 인정하고도 겨우 벌금 700만 원을 내린 판결이나 강원도교육청의 유천초 부당징계에 맞선 소송에서 원고 이름마저 잘못 말하며 기각한 춘천지법처럼 법은 아직은 사측 편에 서 있다.
그러나 페.페.로가 강조하듯이, 그런 만큼 여성 노동자가 현재의 법이 보장하는 권리를 아는 것, 나아가 그 권리를 넓혀 내기 위한 단결이 더욱 중요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일터에서 지지 않는 법>은 여성 노동자가 존엄하게 노동하는 데 필요한 실전 코칭이 분명하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사회주의를향한전진 온라인신문에도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