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21살 신예진은 ‘희망’이라는 꽃말의 데이지를 품고 2023년 2월 26일부터 2024년 2월 25일까지, 365일동안 전 세계 45개국을 여행했습니다. 여행하며 만난 ‘삶을 이유를 찾는 여정’을 <너의 데이지>를 통해 풀어나갑니다. ‘데이지(신예진)’가 지난 1년 동안 여행하며 만난 100명의 사람에게 ‘삶의 이유’를 묻는 연재 기사입니다. [편집자말] |
수도인 카트만두를 가득 채운 수많은 사람들 사이로 여름을 알리듯이 자카란다꽃이 피어오른다. 동남아시아 여행을 마친 뒤, 인도 옆 네팔로 향했다. 네팔의 수도 카트만두에서 상인들은 분주히 아침을 맞이했다.
푹푹 찌는 무더위와 매연으로 혼잡한 거리를 헤집고 카트만두에서 지낼 Dibyancy's Girls Hostel(이하 디바이낸시 호스텔)로 향한다. 여학생을 대상으로 운영되는 디바이낸시 호스텔에 들어선 한국 여행객인 나는, 순간 쏟아지는 수많은 네팔 여학생들의 관심에 당황한다.
네팔 전통음식 달밧을 먹으며 학생들의 관심에 대응하던 중, 누군가 정장을 빼입고 바쁘게 달려와 사원증을 목에 둘렀다. 자길 '아르차나'(Archana, 이하 아르차나)라고 자신을 소개하며 밖으로 빠르게 사라진 그. 친구들은 그가 근무하는 '히말미디어(himal media)'에 가려고 아침마다 요란스럽게 출근한다고 말한다.
저널리즘으로 세상을 바꾸는 삶
다음 날 아침, 호스텔 창가 너머 잠에서 깬 사람들의 아침 소리가 들려온다. 아르차나도 일어나 기지개를 켜고 있다. 23살 젊은 나이에 기자가 되어 카트만두 이곳저곳을 뛰어다닌다는 아르차나. 같은 방에 머문다는 우연을 이용해 그의 삶을 묻기 시작했다. 차려입은 정장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부스스한 머리의 아르차나는 친근한 친구처럼 웃으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아르차나가 7살이었을 당시, 그의 아버지는 재혼으로 여동생과 남동생을 가졌다. 새로운 가족을 위해 아르차나도 가정부 엄마를 따라 바느질 일을 시작했다. 그는 컴퓨터사이언스 전공을 꿈꿨지만, 가난한 가정은 그를 지지해 주지 못했다. 그가 15살이 되는 해, 바느질 일과 함께 아르바이트로 라디오 일을 시작하였다. 생계를 위해 시작한 일은 어느새 그의 삶 속 중요한 임무가 되었다.
"어렸을 때부터 가난으로 벗어나고 싶었어. 생계를 위해 저널리즘을 시작했지만, 결코 가벼운 문제가 아니었어. 저널리즘으로 세상을 바꾸는 건 도전적이야. 그렇지만, 나는 저널리즘을 통해 누구도 차별받지 않는 사회를 만들고 싶어."
리포팅은 그녀가 잘하는 일이지만, 저널리즘을 선택한 것은 그에게 쉽지만은 않았단다. 가족은 '여자라면 집에 있어야 한다'라는 생각으로 아르차나가 기자가 되기를 원치 않았다. 설상가상 법적으로 폐지된 카스트가 분분하게 남아 그에게 걸림돌이 되었다.
카스트제도에서도 최하층인, 불가촉천민에게 속했던 그의 집안은 다른 이의 거처와 절에도 자유롭게 다닐 수 없었다. 모두가 마시는 물조차 마시지 못한 적도 있다고. 그러나, 그에게 닥친 장애물은 그가 펜을 잡게 하는 이유를 더욱 공고히 만들었다.
"물론 카스트는 법적으로 폐지되었지만, 여전히 사회에 남아있어. 저널리즘은 이야기를 전달하는데 큰 힘을 가졌어. 저널리즘을 통해 신분제도가 잘못되었다는 걸 알리고 싶어. 또 나의 이야기를 통해 마을 여성들에게 격려가 되고 희망을 주고 싶어. 그게 변화의 시작이잖아."
계급으로, 성별로 차별받지 않는 사회를 위해
우린 같은 호스텔 방에서 아침을 맞이했다. 아르차나는 기자 생활을 하며 카트만두 곳곳을 취재한다고 했다. 올해로 24살을 맞이하는 아르차나의 눈에는 더 나은 세상을 꿈꾸는 젊은이의 열정이 담겨있었다. 금전적 독립을 위해 분투 중이면서도 자신의 구역에만 머물지 않고 끊임없이 투쟁하는 그의 모습은 조그만 호스텔 방 안의 공기를 긴장하게 만들었다.
아르차나는 미디어 산업과 저널리즘이 꾸준히 발전 중인 네팔에서 더 나은 삶을 위해 앞으로도 노력할 것이다. 그가 지내온 수많은 시간은 겹겹이 쌓여 그의 꿈을 굳건하게 만들었다. 계급과 성별로 차별받지 않는 사회를 위해 그는 오늘도 취재하고, 평등을 향해 펜을 잡는다. 그에게 삶의 이유를 묻는다.
"내 삶의 이유는 모두가 평등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야. 카스트나 성별을 이유로 차별이 없는 사회말이야. 앞으로도 계속 쭉."
여전히 만연한 네팔 카스트 제도 아래에서 언론을 통해 세상이 변화할 거라는 그의 믿음은 괜스레 나의 코를 찡하게 한다.
여전히 세상이 변할 수 있다는 희망 때문일까. 바늘을 잡던 십 대 소녀는 펜을 잡는 젊은이가 되어 오늘도 카트만두 거리를 나선다. 시대가 해결하지 못한 암묵적 신분제도와 여성 권리를 위해 투쟁하는 그의 모습은 카트만두에 가득 핀 보랏빛의 자카란다가 되어 환하게 피어오른다.
덧붙이는 글 | 해당 기사의 원본 이야기는 기사 발행 후 기자의 블로그를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https://blog.naver.com/daisy_path 이 기사의 각색 이야기는 아래 기자의 브런치를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https://brunch.co.kr/@daisypat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