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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과거 사춘기 시절 괴로움을 이기려고 시를 외우다 보니 지금도 시를 100여 편 암송한다. 그런 사실을 잘 아는 지인이 희소병을 극복한 시인의 시집이 있다면서 박찬호 시인의 세 번째 시집 <그곳에 그리도 푸른 바다가 있을 줄이야>를 선물해 주었다.

그 덕에 박 시인의 첫 번째 시집 <꼭 온다고 했던 그 날>, 두 번째 시집 <지금이 바로 문득 당신이 그리운 때>도 찾아 읽게 되었다. 내친김에 시인을 직접 보고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고 싶어 29일 서울 종로구 사무실 근처 책 카페인 에뮤에서 시인을 만나봤다.
 
  박찬호 시집, <그곳에 그리도 푸른 바다가 있을 줄이야>
박찬호 시집, <그곳에 그리도 푸른 바다가 있을 줄이야> ⓒ 다시문학
 
박 시인은 대학 때 문학을 전공하고 졸업 후 대기업 광고 회사에 들어가 PR 부문과 SP(Sales Promotion) 마케팅 부문에서 11년을 근무한 뒤 개인 마케팅 기획사를 차려 24년째 회사를 운영하고 있는 35년 차 현역 광고인이라고 한다. 또한 지난 2020년 '월간 시' 제29회 추천 시인상과 계간 '미래시학' 시 부문 신인문학상에 동시 당선되어 등단한 시인이기도 하다.

늦깎이 시인으로 등단했지만, 그간 마음속에 품고 있었던 시에 대한 열정으로 2021년 제1 시집 '꼭 온다고 했던 그 날', 2022년 제2시집 '지금이 바로 문득 당신이 그리운 때'를, 얼마 전 2024년 6월 초에는 제3 시집 '그곳에 그리도 푸른 바다가 있을 줄이야'를 발간하기도 했다. 다음은 박 시인과 만나 나눈 대화를 정리한 것이다.

생의 끝을 향해가는 시가 많은 이유
 
  세 번째 시집을 펴낸 박찬호 시인
세 번째 시집을 펴낸 박찬호 시인 ⓒ 김슬옹
 
- 직접 뵈니 죽음 관련 시를 많이 썼던, 희소병을 앓았던 분 같지가 않습니다.(웃음) 이제 다 나으신 건지요? 아프시면서 시를 쓰신 건가요, 아니면 아픔을 극복하기 위해 시를 쓰신 건가요?

"(웃으며) 다행히 건강해졌습니다. 아마도 앞선 시집에서 죽음 관련 주제가 많은 것은 제 시 쓰기의 출발과 관련이 있는 듯합니다. 대학 때 문학을 전공했고 특히 시 쓰기를 좋아했지만, 사회에 나와서 소위 '먹고 살기 바빠서' 본격적으로 시를 쓰지는 못했고 그저 틈틈이 시를 쓰던 와중인 2019년 제게 비강암 중 아주 희소한 암인 '기형암육종'이 발병했었습니다.

우리나라에 몇 사례가 없다는, 그래서 치료방법도 제대로 나와 있지 않고 예후도 좋지 않다는 그런 암이었습니다. 수십 차례의 항암치료와 두 차례의 수술, 그리고 60 여 일간의 방사선 치료, 암과 관련되어 할 수 있는 치료는 모두 다 받았었습니다.

그렇게 암 투병을 하면서 죽음을 목전에 두고 시를 쓰기 시작했고 첫 시집을 냈습니다. 2집 또한 언제 암이 재발해 죽을지 모른다는 그 불안감에 휩싸인 채 시집을 발간했고 아마도 그런 절체절명의 심경들이 제 시에 녹아 있다 보니 아무래도 서정성 있는, 자연을 노래하는, 사랑을 되뇌는 그런 종류의 시보다는 죽음을 앞둔, 뭔가 끝을 향해가는, 생의 고민과 연민을 생각하는 그런 사유적이고 비관적인 시가 많은 듯합니다."

시인의 말투는 언제 병마와 싸웠느냐는 의문이 들 정도로 몸짓도 말투도 시원시원하였다. 시인은 절망의 순간에 시를 쓰면서 마음이 평온해졌다고 한다. 병마를 이기기 위해 시를 쓴 것은 아니지만 시를 쓰면서 마음의 평화와 더불어 몸의 평안도 가져왔다고 한다. 그렇게 몸과 마음을 극복한 시가 세 번째 시집인 셈이다. 그래서 세 번째 시집과 앞선 두 시집과의 차이에 대해 좀 더 이야기를 나누었다.

- 최근에 제3시집 '그곳에 그리도 푸른 바다가 있을 줄이야'를 출간하셨는데 기존 1, 2집과 다른 점이 있다면 어떤 것이 있을까요?

"1, 2집은 대학 선배이자 시인으로 왕성히 활동 중이신 이승하 시인께서 수록 작품 선정부터 시집 해설서까지 완벽히 정리해 주셨습니다. 제가 암 투병 시절 간간이 만나 제 투병 생활과 시에 관한 생각 등을 표명할 때 제 의지를 적극적으로 응원해 주시며 용기를 북돋워 주셨는데 그때 그 시인께서는 제 투병이나 그와 관련된 죽음, 아픔, 이별 등 서정성이 있다고 판단되었던 작품 위주로 선정하고 수록하셨습니다. 아마 당시의 제 심경과 제 사고를 가장 잘 표현하고 대변한 작품들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반면, 3집의 경우는 기본적으로 저의 삶의 철학적 기저-죽음, 비관론-를 바탕으로 하고 있으나 1, 2집 대비 상대적으로 개인적 죽음과 우울을 좀 더 넘어선 사회적 담론(정의, 가치, 편중, 가난, 부, 인간의 욕심 등)을 담고자 노력한 작품들입니다. 주변 사람과 사물, 현상을 통해 그 사회를 보고 현실을 바라보고자 한 작품들이 많습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서정시의 운율 등에 얽매이기보다는 어떤 삶의 서사를 얘기하는 산문시 형태의 작품들이 많다는 것이 또 3집의 특징 중의 하나입니다."

- 그렇다면 전반적으로 본인은 본인의 시를 어떻게 평가 또는 생각하고 계시는가요?

"아이고, 무척 어렵고 갑자기 땀이 나는 질문인데요. 사실 그동안 시를 쓰면서 제 작품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거의 없습니다. 이것은 아마도 우리들이 거울이 없으면 우리들 자신의 얼굴을 평생토록 볼 수 없듯이 자기 시를 자기가, 본인 스스로 평가하고 생각한다는 것은 분명 옳든 그르든 한계가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런 면에서 최근 저는 새로운 거울 하나를 선물 받았습니다. 며칠 전 배달 되어온 책으로 계간 '미래시학' 2024년 여름호 제49호인데요, 이 책에 <책 속의 작은 시집>이란 코너에 시인이자 문학 평론가 오대혁 교수님이 제 시에 대해 평한 글이 있더군요. '구술의 시를 통한 죽음의 관조'란 제목의 비평이었는데 이 비평문의 맨 마지막 문단을 제 시에 대한 평가로 갈음하고자 합니다."
 
<결론적으로 박찬호 시인은 구술성 강한 시를 통해 삶과 죽음의 문제를 깊이 있게 다루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시쓰기는 언어적 한계를 일정 정도 극복하면서 자유롭고 발랄한 느낌을 자아낸다. 꽤 까다로운 삶과 죽음의 문제인데도 어렵지 않고 경쾌하게 다가선다. 특히 죽음을 관조하는 시선을 다채롭게 그려내면서도 많은 울림을 주고 있다. 저물녘에 친구를 앞에 두고 술잔 기울여 가며 주고받는 대화처럼 따뜻하다. 이는 박찬호의 시가 보여주는 개성이자 특징이라 아니할 수 없다.>
- 오대혁(2024). <미래시학> 여름호. 38쪽

 
- 이번에 출간하신 제 3시집 중에서 시인님이 최근 생각을 가장 잘 반영한 작품은 무엇이며 그 이유는 무엇인가요?


"시란 어느 작품이고 나름의 생각과 삶의 철학을 다루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어떤 시든 그 의미와 가치는 있다고 생각되는데요, 그중 이번에 출간된 3집 중 제일 첫 장에 등장하는 <7대 불가사의>라는 시는 우리들 대한민국의 현주소를 극명히 보여주는 예라 생각합니다. 시에는 힘이 있고 울림이 있고 그 삶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7대 불가사의>
그가 스스로 공정하다고 외치는 것
그녀의 모습이 여장부같아 외려 호감이 간다고 말하는 것
그들이 얘기하는 것은 다 국민을 위한 것이라 주장하는 것
이것들을 전달하는 사람들은 그것들이 중립적이라 말하는 것
이 얘기를 듣는 사람들은 종종 진실이라 믿는 것
그 위엄과 위험이 자음 하나의 차이임을 모르는 것
그리고
그것은 절대 부끄럽지 않고 스스로 떳떳한 모습이라 생각한다는 것
-'그곳에 그리도 푸른 바다가 있을 줄이야'


시인은 이제 개인의 병마를 극복한 만큼 우리 사회가 앓고 있는 아픔에 대해 더 적극적으로 시를 쓰고 싶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가장 좋아하는 자신의 시로 '7대 불가사의'를 뽑은 이유가 공감이 됐다.

한편 시인의 시를 보면 문체 양식이 다양하다. 전형적인 간결한 시도 있고 산문처럼 긴 산문시도 있다. 그 어떤 시든 공통점은 술술 잘 읽힌다는 점이다.

이런 문체는 의도적인 건지 대화 중에 물었는데, 시인은 현학적으로 어려운 시는 멀리 한다고 한다. 술술 읽히는 시에 대한 시인의 관점이 드러난 시도 있다. 언어학자인 기자가 가장 좋아하는 시이기도 하다.

<직관적 혹은 감각적>

분명해야 한다
명확해야 한다
밝아야 한다
복잡하지 않아야 한다
이해가 쉬워야 한다
꼬지 말아야 한다

그래서
진리는 언제나 단순한 곳에
그렇기 때문에
진실은 아직도 어두운 곳에
-'그곳에 그리도 푸른 바다가 있을 줄이야'


사실 어려운 시는 잘 읽히지 않는다. 위 시는 우리들 모두가 가지고 있어야 할 삶의 원칙이라 생각되는 것은 나만의 생각일까? 아마도 이 시집에 공감하는 이들의 보편적 공감이 아닐까? 

그곳에 그리도 푸른 바다가 있을 줄이야

박찬호 (지은이), 다시문학(2024)


#시집#서평#박찬호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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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민정음학과 세종학을 연구하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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