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 치유 글쓰기 프로그램에서 만나 시민기자가 된 그룹입니다. 20대(Z), 30대(M), 40대(X)까지 총 6명의 여성들로 이뤄진 그룹 'XMZ 여자들'은 세대간의 어긋남과 연결 그리고 공감을 목표로 사소하지만 멈칫하게 만드는 순간을 글로 씁니다.[편집자말] |
인간은 태어나 자라면서 대부분 '엄마, 아빠'라는 단어를 먼저 배우며 누군가를 부르는 법을 깨우친다. 그 이후에 아기들이 가장 많이, 빠르게 배우는 단어들은 어떤 것이 있을까? 아이들이 생후 3개월 이후 배우게 되는 어휘 25개 중 13개 정도는 사람, 동물, 음식, 즉 생물에 대한 단어인 것으로 밝혀졌다. 멍멍, 냐옹, 짹짹, 이후에는 곤충에 대한 폭발적인 관심 시기를 지나, 공룡의 모든 종류까지 외우는 시기가 온다.
우리는 본능적으로 주변 환경과 세계를 인지하고 이름 붙이며, 나름대로의 주관적인 법칙으로 '분류'하여 머릿속에 저장한다. 나무와 초록 초록한 식물들은 한 그룹으로, 강아지와 고양이도 또 하나의 그룹, 날아다니는 것들과 물속 세계에 있는 것들도 자동으로 한자리씩 차지한다.
이렇게 "한 동물이 감각으로 인지한 세계"를 생물학자들은 '움벨트(Umwelt)'라고 부르는데, 진화생물학자이자 과학 저널리스트인 캐럴 계숙 윤의 저서 <자연에 이름 붙이기>(정지인 역, 월북)에는 이 독일어 단어가 정확히 370번이나 등장한다.
어디에나 존재하는 움벨트의 세계
움벨트는 어디에나 존재하지만 사람마다 주관적으로 그것을 느낀다. 지난 봄 양가 부모님 네 분과 함께 다녀온 울릉도 여행에서 그것을 여실히 체감할 수 있었다. 울릉도 산골소녀인 엄마와 강원도 삼척 산골소녀인 시어머니에게 울릉도의 숲길은 거의 제철 나물이 펼쳐진 식탁과 같았기 때문.
"쑥이 너무 좋다 여기~"
"어머 이거는 미나리 아니야?"
"여기 고사리 천지네~"
같은 말들을 주고받는 그녀들을 뒤따라 걷다 보면, 남편과 내 손에는 어느새 보리수 열매 같은 것들이 하나씩 쥐어져 있다.
나에게는 그저 푸릇푸릇한 숲길로 뭉뚱그려지는 곳을, 그들은 각자 가진 움벨트적 시각으로 더 감각적으로 느끼는 것이다. 급기야 그들은 다음날 새벽 5시에 외할머니 댁 뒷산으로 쑥을 캐러 가자며 나물 캐기 원정대를 결성하기도 했다(그들의 우정을 응원하며 다른 움벨트적 시각을 가진 우리 부부는 늦잠을 잤다).
진화분류학자는 움벨트에서 무엇을 보았을까
과학자 부모님 사이에서 태어나, 스스로도 과학자의 길을 걷고 과학자와 결혼까지 한, 뼛속까지 과학으로 무장한 저자는 "생명의 세계에 질서를 부여하는 유일한 방법은 과학이라는 것을 확신 이상으로 확신"했다고 말한다.
과학만이 진리를 말해줄 것임을 확언하며 분류학의 계보와 그것의 승리에 대해 쓰려고 연구하던 그는, 조사를 하면 할수록 무엇인가 잘못되었음을 감지한다.
초기 분류학은 칼 린나이우스를 필두로 시작된다. 그는 자연의 질서는 고정되어 있는 것이라 생각했고, 그 고정된 세계를 뛰어난 감각과 직관으로 분류하여 체계를 만들고자 했다. 이후 다윈을 통해 진화의 개념이 알려지게 되었다. 고정되지 않고 진화하는 세계에서 분류학도 변화해야 했지만, 그것은 쉽지 않은 과정이었다. 진화적 분류와 사람들이 본능적으로 인지하는 것 사이에서 충돌이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등장한 수리분류학자들은 그 충돌을 심화시켰다. 그들은 수많은 형질을 숫자화해서 생물 간의 관계를 밝혔는데, 이제 더 이상 비슷한 생김새 같은 것은 분류에 있어서 중요한 부분이 되지 못했다. 그 뒤 화학자들은 RNA 분자의 염기서열을 분석함으로써 분자 분류학의 시작을 알렸고, 실제 동물들을 관찰하는 것보다 실험실의 시험관을 들여다보는 것이 훨씬 더 정확한 방법론이 되었다.
마지막으로 분기학자들이 등장한다. 분기학은 단 계통(monophyly)만을 분류 군으로 인정해야 한다는 개념인데, 이 개념에 따르면 '물고기는 (단 계통이 아니므로) 존재하지 않는다'. 물고기를 포함한 많은 친숙한 분류 군들이 존재하지 않는 것을 증명한 이들은, 움벨트를 과학에서 더 멀리멀리 떨어뜨려 놓는다.
이 모든 분류학의 역사 속에서 인간의 움벨트는 분류학의 발전을 계속해서 방해하는 존재가 되었는데 - 비과학적이고 주관적인 그것이 너무나도 부정하기가 힘든, 인간의 본능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저자는 어린 시절 숲에서 버섯과 나무와 열매를 만지며 자신만의 움벨트를 형성하며 자랐다. 그러나 직관적이지 않은, 그러니까 흰 가운을 입고 연구실 안에서 DNA를 살펴봐야 생물의 분류 군을 알 수 있게 된, "과학적으로 발전한" 지금의 상황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과학과 생명의 세계에서 멀어지게 했는가를 깨닫게 된다.
자연과 생명의 세계가 현미경 너머로 넘겨진 이후에 사람들은 관심을 잃었다. 쇼핑몰이 지어졌고 스마트폰이 생겨났다. 사상 초유의 생명다양성 위기와 대멸종의 시기가 닥쳐왔는데 많은 이들이 체감하지 못한다. 저자는 이는 우리가 움벨트적 시각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절대 진리란 없음을 인정하고, 특히 본인이 몸담고 있는 과학계를 비판적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작가의 솔직함과 통찰력이 인상 깊다. 분류학이 진정한 과학이 되는 과정을 겪으면서 우리는 생명의 세계를 과학에 일임해버렸고, 이제는 생명의 세계에 무관심하다.
책의 말미에 역자가 말했듯 "생명과 자연에 대한 경이를 회복" 하는 것에 있어 움벨트가 답을 알려 줄 수 있지 않을까.
자연과 다시 연결되기
한편 낚시광인 시아버지의 움벨트 안에서 물고기는 계절별로 '제철' 폴더 안에 각각 저장되어 있다. '이건 무슨 물고기에요?' 하면 챗GPT 마냥 답이 척척 나온다. 썰어져 있는 횟감도 한눈에 어떤 물고기인지 알아맞히는 그이기에, 수산시장에 가면 그의 움벨트적 시각을 빌릴 수밖에 없다. 강태공 시아버지에게 분기학자들은 감히 주장할 수 없을 것이다. 물고기는 너무나도 여실히 존재한다.
자연 속으로의 여행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움벨트를 얼마든지 느낄 수 있다. 얼마 전 지인의 추천으로 조경사 정영선의 개인전 <이 땅에 숨 쉬는 모든 것을 위하여>에 다녀왔다. 그는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조경가로, 도시 공간 속에서 자연적 환경을 조성하고, 우리가 아는 많은 곳에 자연과 더불어 사는 삶을 위한 설계를 했다. 또한 그는 고유 자생종의 생물 다양성을 보전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였다고 한다.
과수원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후 조경사의 꿈을 키운 그는 여의도 샛강공원의 부지가 아스팔트 주차장이 될 뻔한 것을 막았고, 정수장이었던 선유도는 예전의 모습을 그대로 살려 독특한 역사와 매력을 지닌 공원으로 탈바꿈시켰다. 그 같은 사람들이 존재하기에 우리는 커다란 건물들이 빼곡한 도시에서도 자연과 연결될 수 있음을 느낀다.
새로 이사 온 아파트에는 커다란 살구나무가 보호수로 자리 잡고 있다. 살구나무에 꽃봉오리가 맺혔을 때, 피는 과정을 매일 보고 싶어서, 지하주차장으로 다니던 지름길 대신 나무 앞으로 조금 돌아서 지나가곤 했다. 큰 나무가 피워낸 여리여리한 분홍색 꽃을 관찰하며, 그 주변에서 열심히 사진을 남기고 감탄하던 주민들은 모두 박물학자였다.
나는 이제 벚꽃과 살구꽃이 피는 시기와 생김새의 차이점도 알게 되었다. 다만 점점 봄이 짧아지고 있다는 사실과 꿀벌들이 사라지고 있다는 사실도. 이제 분류학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말보다 멸종으로 인해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말이 더 무섭다는 것도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