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1편에서 이어집니다.
2024년 정부R&D예산 삭감의 후폭풍
많은 과학기술 연구자들은 2024년 R&D 예산 삭감으로 인해 연구 중단 및 축소, 비정규직 인력 실직 등과 같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러한 어려움은 단순히 R&D 예산을 복원한다고 해서 바로 회복되기 쉽지 않기 때문에 우리 과학기술 분야의 중장기적 퇴보를 가져올 것으로 전망된다.
2024년 3월 3일부터 27일까지 출연연과학기술인협의회 총연합회(이하 연총)가 학생연구원을 포함한 과학기술인 대상으로 R&D 예산 삭감 피해에 대해 설문 조사를 진행하였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 인원 160명 중 39%는 연구 진행이 어렵다고 답했고, 이외에도 인건비 부족(29%), 채용 및 계약연장 불가(16%). 연구 중단(6%), 연구 활동 제한(5%) 등의 피해를 겪었다고 응답했다.
2024년 3월 25일부터 4월 3일까지 KAIST 대학원 총학생회에서 KAIST 대학원생들을 대상으로 R&D 예산 삭감 영향에 대해 설문 조사한 결과(응답자 696명), R&D 예산 삭감의 여파로 이공계 경력을 계속 쌓는 것에 불안감을 느끼고, 대학원생 월 인건비가 평균 10만 원 정도 줄고, 재료와 장비를 제대로 쓰기 어려워지는 등 연구와 일상 생활에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나타났다.
2024년 들어서 연구개발(R&D), 기술서비스업 등이 포함된 전문·과학 분야에서 '비자발적 실직자'가 지난해와 대조적으로 5개월 연속(2024년 1월부터 5월까지)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R&D 예산 삭감으로 인해 비자발적으로 과학기술계 현장을 떠나야 하는 연구자들이 증가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는 통계이다.
2025년 정부 R&D 예산 편성에 대한 우려 ①
: 예산 편중에 따른 연구생태계의 붕괴
대통령실 과학기술수석비서관은 2025년도 주요 R&D 예산이 증가하고 내용상으로 환골탈태에 가깝게 달라졌다며 '장밋빛 미래'를 전망하지만, 2025년 정부 R&D 예산 편성에 대한 우려도 제기된다.
정부는 이른바 "12대 국가전략기술"을 선정하여 해당 분야에 R&D 예산을 집중적으로 투자하겠다는 방침을 세웠으며, 이 기조는 2025년도 예산 편성에서도 유지되었다. 최근 발표된 2025년도 주요 R&D 예산안을 보면, AI-반도체 분야는 올해 대비 38.8%, 양자기술 분야 32.1%, 이차전지 분야 28.9% 등으로 예산이 대폭 증가할 전망이다. 특히 AI-반도체, 첨단바이오, 양자 세 분야를 '3대 게임체인저'로 일컬으며 전체 예산의 14% 가량을 집중 투자할 전망이다.
이처럼 특정 분야에 예산을 집중 투자하여 육성하는 방식은 과거 한국이 한정된 자원으로 단기간에 기술력을 확보하기 위해 선택했던 전략이었고, 모두가 알고 있듯 소기의 성과를 거둔 방식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과거의 추격형 기술 개발과 달리 현재 한국에게는 선도형 기술 개발이 필요하다는 사실이며, 이는 윤석열 정부 또한 되풀이하여 주장한 바 있다. 추격형 기술 개발은 이미 다른 나라가 개발하여 완성한 기술을 습득하고 도입하는 것이기 때문에 어떤 면에서는 인력 양성과 동시에 이루어진다.
반면 선도형 기술이란 말 그대로 아무도 가본 적 없는 길을 개척하는 것이며, 이를 위해서는 그 토대가 되는 기초원천기술 역량을 지닌 인력이 사전에 충분히 양성되어 있어야 한다. 과학기술 개발은 돈만 있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이를 수행할 사람이 훨씬 중요한데, 정부의 과학기술 정책에서는 이를 완전히 무시하고 있다. 마치 자판기처럼 돈만 넣으면 기술이 나오는 것처럼 여기고 있다.
예를 들면, 앞서 언급한 3대 게임체인저 분야에 전체 예산의 14%를 투입하려면 비슷한 비율의 연구인력이 확보되어 있어야만 제대로 된 연구가 수행될 수 있는데, 과연 이에 대한 고려가 있었는지 의문이다.
실제로 얼마 전 한 지자체에서 양자기술 개발 관련 R&D 예산을 배정받아 지역 내 연구기관을 대상으로 참여를 희망하는 연구자를 모집한 적이 있었는데, 단 한 명의 연구자도 찾지 못해 올해 예산을 그대로 날려버린 일이 있었다고 한다. 이 예산은 내년에도 배정될 예정이라고 하는데, 어느 운 좋은 신진 연구자가 내년에 새로 임용되어 해당 예산을 독점하게 될지, 어떤 중견 연구자가 1년간의 피나는 노력 끝에 양자기술 전문가로 변신하여 관련 사업을 수주할지 지켜볼 일이다.
특정 주제를 중심 기조로 내세우고 관련 분야에 R&D 예산을 집중하는 경향은 이전 정부에서도 지속적으로 나타났던 현상이었고, 그때마다 국내 연구자들은 두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자신의 전문 분야가 다시 빛을 볼 날을 기약하며 묵묵히 기다리는 연구자가 있는가 하면, 정부 기조와 조금의 연관성이라도 찾아내어 어떻게든 연구비를 마련하는 연구자도 있었다.
그리고 일반적으로는 후자의 방식을 선택하여 연구 실적을 꾸준히 낸 사람이 유능한 연구자로 평가받곤 한다. 전자의 방식을 선택한 연구자는 연구 실적을 내기 힘들기 때문에 다음에 기회가 왔을 때도 연구비를 수주하기 힘들 가능성이 크며, 결국에는 대부분 학계를 떠날 수밖에 없게 된다. 마치 자연선택과 같이 날이 갈수록 정부 기조에 적용 또는 맞추어 어떻게든 연구비를 마련한 연구자들은 살아남지만, 그렇지 못한 연구자들은 버티기 어렵게 되는 것이다.
흥미롭게도 대중이 생각하는 유능한 연구자의 모습은 현실과는 정반대라는 것이다. 비단 과학기술 분야만이 아니라, 보통 사람들이 떠올리는 전문가의 이미지는 세태에 흔들리거나 시류에 영합하지 않으면서 오랜 세월 한 가지 분야에 몰두하여 정진하는 이의 모습일 것이다. 위인전에 나오는 위대한 과학자들의 일생에 걸친 노력이나 수십 년에 걸친 연구성과를 통해 노벨상을 거머쥔 과학자들에 그토록 찬사를 보내는 이유는 그것이 우리가 연구자들에 대해 기대하는 이상적인 모습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작금의 국내 연구 환경에서 그러한 연구자가 탄생하길 기대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다.
2025년 정부 R&D 예산 편성에 대한 우려 ②
: 잘못된 선택, 빗나간 집중
기초과학 고사, 건전한 연구풍토 파괴 등 우리 과학기술의 미래를 희생해서라도 선택과 집중을 통해 그 이상의 성과를 거둘 수 있다면 이를 재평가할 수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에서 야심차게 추진하였고 최근 과제 선정이 완료된 글로벌탑 전략연구단 사업(이하 글로벌탑 사업) 사례를 살펴보면, 선택과 집중 전략이 잘못된 결과로 이어질 우려도 제기된다.
글로벌탑 사업은 작년에 발표된 R&D 혁신 방안에서 비중 있게 제시되었던 사업으로, 출연연 간의 장벽을 허물고 협동 연구를 활성화하여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을 개발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참여 연구자의 PBS 부담을 해소하고 소속기관의 경계를 허무는 등 파격적인 방안이 발표되었다가 출연연 통폐합 추진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일부 보류되는 우여곡절도 있었으나, 올해만 1000억 원 규모의 예산이 투입되는 대형 연구사업이다.
이 사업에 50개가 넘는 연구단이 지원하였으며 최종적으로 다섯 개 연구단이 선정되었는데, 선정된 분야는 이차전지, 수소, 첨단바이오, 원자력, 반도체 분야로 모두 12대 국가전략기술에 해당하는 분야이다. 일견 합리적으로 안배된 것으로 보이나, 공교롭게도 다섯 분야 모두 12대 전략기술 중에서도 가장 기술성숙도가 높은 분야라는 공통점, 그리고 관련된 국내 대기업을 쉽게 떠올릴 수 있는 분야라는 공통점이 있다. 설상가상 연구단 최종 선정평가에 참여한 위원의 상당수가 유수 대기업의 전·현직 임원들이었다.
글로벌탑 사업은 5년에 걸쳐 추진 예정인데, 향후 5~10년 이상의 미래를 대비하기 위한 기술에 투자하는 것이 사업 취지에 부합할 것이다. 그러나 올해 선정 결과는 현재 각국의 기업 간 경쟁이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어 몇 년 내에 가시적 성과를 내야 하는 분야가 대다수라는 점에서 당초 취지를 무색하게 하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각 연구단에서는 기술 실증화를 위한 설비 구축 등에 상당한 예산을 배정할 수밖에 없었고, 결과적으로 1000억 원이라는 거액이 투입된 사업임에도 일부 참여연구자는 1억 원도 되지 않는 연구비를 배정받게 되는 민망한 일도 벌어지고 있다. 해당 연구자는 연구비 추가 확보를 위해 다른 과제 수행에도 신경을 써야 하므로 당연히 글로벌탑 사업에만 집중할 수는 없게 되었다.
선정된 분야에 대한 연구개발 필요성이 없다는 뜻은 아니지만, 출연연의 역량을 집중하여 혁신적인 기술을 개발한다는 글로벌탑 사업에서 추진할 필요성이 있는 것인가 하는 의문이 남는다. 단기성과 창출과 실증화를 목적으로 하는 연구사업들은 이미 산자부, 중기부 등에서 수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사례 하나만으로 전체 R&D 정책의 방향성을 평가하는 것이 무리일 수도 있으나, 가장 중점적으로 추진해온 사업에서조차 제대로 된 방향을 잡지 못한다면 다른 사업의 향방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2024년 연구개발 예산 삭감으로 어려움을 겪은 과학기술연구자 입장에서 정부 R&D 예산 증가 또는 2023년 수준 이상으로의 복원은 환영할 만한 일이다. 그러나 2025년도 예산 편성(안)을 살펴볼 때, '선택과 집중'을 특징으로 특정 분야에 예산을 집중하고, 경쟁을 강조하며, 글로벌 협력을 전략으로 하는 윤석열 정부의 'R&D다운 R&D'가 초래할 문제도 우려되는 상황이다.
'선택과 집중'이 오히려 연구생태계를 황폐화하고, 한정된 연구자들에게 자원을 몰아주어 소위 정부가 타파하고자 했던 카르텔을 발생시키지는 않을지, 묻지마 식 글로벌 R&D 협력의 폐해는 없을지 면밀해 검토해야 한다. 공공의 이익을 위해 정부가 투자하는 정부 R&D가 그 본연의 목적에 부합할 수 있도록, 정부는 더욱 면밀히 투자 전략을 고민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