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 같은 지방에서 지원사업 선정받는 거? 중앙에서는 쳐주지도 않아. 제대로 된 필력으로, 글로 승부해."
소위 '중앙'이라는 곳에서 작품 활동 중인 소설가가 꺼낸 말이었다. 울산문화재단의 청년지원사업으로 두 번째 시집을 출간한 나는 저격당한 기분에, 마시던 커피가 목구멍에 탁 걸렸다. 제대로 된 필력이 어디 '중앙'에만 존재하는가. 이미 나는 열심히 나의 글을 쓰며 글로 승부하려 정진하는 중인데 말이다.
그분은 자신과 친분 있는 이름난 시인들을 호명했다. 나는, "예, 그분들의 시편들 참 좋지요"라고 응수했다. 덧붙여 내가 아는 뛰어난 지역 시인 분들을 호명해 드렸는데, 그분은 아무도 알지 못했다. 분명 이름난 상의 수상자도 있었는데 말이다. 적잖은 황망함에 나는 커피잔에서 어지러이 솟아오르는 김처럼 휘청였다.
이제 시를 쓴 지 3년 차인 나는 아직 배울 것도 많고 갈 길도 먼 사람이다. 그러나 문학계 선배이신 분의 말을 듣고 있자니 퍽 기운이 빠졌다. 그분은 그저 현실을 알려주고자 함이었겠지만 말이다. 모든 말들을 덮어놓고 인정하자니 부당하고, 그렇다고 전부 잘못된 인식이라 반박하기에는 께림칙한 것이다.
어찌됐건 소화되지 않는 불합리에는 예리하게 날이 서야 지극히 정상 아닐까. 지역 시인들이 아무리 대단한 실력자여도, '중앙'에서 알아보지 못하는 데에는 문제가 있다. 어디 그게 문학계만의 문제겠는가 싶냐마는. 또 그게 어디 하루 이틀 일이었겠나 싶지만은 말이다.
3년 전, 경상도 지역 시인들이 합동으로 기획한 시집 <시골시인-K>를 읽었다. 이 시집은 견고한 중앙을 향해 던지는 강단있는 외침이다. 유의미한 시도였다고 회자되는 이 프로젝트 시집은 현재 <시골시인-J>(제주)를 거쳐 <시골시인-Q>(question)로 이어지고 있다.
"시골시인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 잘 가요, 황인숙, 이성복, 전윤호, 그리고 젊고 예쁜 도성안 시인들이여 / 오늘은 연탄불고기 식당도 일찍 문 닫는 / 이름 불러줄 이라곤 가까운 가족밖에 없는 / 그런 시인들 하나둘 모여 / 늦은 저녁, 빈대떡에 막걸리로 목 축이는 시간"(이필 시인 "웰컴, 시골시인" 중에서)
이필 시인은 이번 프로젝트 시집에 실린 산문에서 '표현의 광란'에 가보고 싶었다고 고백한다. K-프로젝트 덕분에 다시 돌아나가는 길을 잃어버려서, 그래서 더없이 고마웠다는 걸로 미루어 보건대, 그녀는 분명 광란의 질주를 원 없이 했던 것 같다.
"나는 종이인형처럼 나부끼며 세상과 붙었다가 떨어진다 //(중략) 들썩이고 휘청이고 뒤집히는 동안 / 이렇게 처절하게 매달려 본 적이 있었던가 / 웃으며 박수치는 사람들을 위해 또 한 번 무대 가운데로 초대하는, / 신이시여! / 저에게 이 장르는 개그가 아니라 생존입니다"(권상진 시인 "디스코 팡팡" 중에서)
권상진 시인을 만나기 위해 경주에 간 적이 있었다. 먹을 데가 마땅찮다며 이런저런 식당을 미리 알려주는 모습에 배려를 느꼈다. 대화를 나누며 권상진 시인 특유의 시니컬한 면모가 돋보였고, 어떤 말들은 날카롭게 나를 찌르기도 했다. 그러나 이야기의 귀결이 다정했던 것은 사람과 삶을 바라보는 애정 어린 시선의 발로였으리라.
문득 궁금해졌다. 밥을 짓고, 아이를 키우고, 꾸역꾸역 일터로 출근하는 매일의 일상에 대한 정진 없이, 과연 삶이 묻어나는 시가 탄생할 수 있을까? 권 시인이 온몸으로 써왔을 시편들에는 "먹고사는 일"과 "삶"에 대한 경외가 뿌리내리고 있었다.
"해 질 녘 기울어진 운동장 위에서 / 한쪽이 추락할수록 / 다른 쪽이 날개를 다는 이유를 / 아직 잘 모르고 살아"(권수진 시인 "시소" 중에서)
"당신을 위해서라면 / 사랑하다가 죽어버릴 수 있다"(권수진 시인 "하루살이" 중에서)
사랑하다가 그냥 죽어버릴 수 있다는 슬픈 고백은 결연하다. 사랑하다 죽는 것 만큼 아름다운 게 있냐는 물음같기도 하다. 탄생과 더불어 죽음으로 향해 가는 인생이라는 마을버스에 올라탔다면, 사랑 말고 더 무얼 해볼까. 세상은 정반합의 과정을 통해 변모하며 때로는 진일보하거나 후퇴한다.
그 과정에서 일어나는 시소 같은 일들을 빠싹하게 아는 것보다 아직 잘 모르고 사는 게 더 행복할지도 모른다. 시소같은 일들을 아직 잘 모르니까, 그래서 더 사랑에 열려있는 것 아닐까. 시집에 실린 권수진 시인의 산문을 읽으면 가슴이 뻥 뚫릴 것이다. 내용이 궁금하다면 책을 구입해 보시라 말하고 싶다.
시인은 결국 본인 자신이 장르가 되어간다는 말이 있다. 이 책에 실린 여섯 분의 시편을 읽으면 느껴질 것이다. 유승영 시인의 "착각의 중심", "나에게 스승은 없소", 석민재 시인의 "우후죽순", "알의 한계에 대하여", 서형국 시인의 "진실 혹은 거짓", "굳이" 등의 시편에서 시인들의 얼굴이 작품 속에 서려있음을 알 수 있었다.
다시 이 글의 서두에 적었던 갑갑한 대화로 돌아가자. 나는 이 '중앙'의 소설가에게 <시골시인-K> 프로젝트를 열정적으로 전했다. 그러나 이 프로젝트 또한 결국 '이너 서클(inner circle)'이 만들어질 것이며 종국엔 다 비슷한 모양새로 끼리끼리가 될 것이라 응수하는 그분.
아! 평행선을 달리고 말았다! 아이러니하지만 그 분과 나는 서로를 미워하지 않는다. 어찌됐건 대한민국의 글밭을 사랑하는 마음이 조금이라도 있으니까 이런 대화가 진행되는 것 아닐까.
"시집에 수록된 여섯 분의 시는 밥하고 빨래하고 노동하고 사람을 만나고 온 손으로 쓴 시들이다. 책상에서 공부하고 대학원 가고 인맥 쌓아 상 받고 메이저 출판사에서 시집 내고 비슷한 경로를 밟아온 문학평론가들에 의해 상찬을 받아온 분들의 시가 아니다."
<시골시인-K>의 발문에 적힌 성윤석 시인의 글을 읽으며 중심을 잡아 본다. 시는 삶에서 나오고 시는 골방에서 나온다. 어떻게 살 것이냐, 무엇을 노래할 것이냐라는 질문은 결국 진정성의 문제다. 언제나 삶은 '태도'가 전부였다. 애정을 가지고 꾸준히 적자. 진짜 글로 승부하는 수밖에! 다른 길은 없다. 이 외에 다른 길은 없어야만 한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양윤미 시인의 브런치 채널에도 업로드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