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8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사회적 정년을 맞아 은퇴한다.
하지만 이들 중 상당수는 먹고 살기 위해 다시 노동시장으로 회귀한다. 현재 우리나라의 평균 은퇴 나이는 72.3세다. 정년은 비자발적 실업이며 경력 단절일 따름이다.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늦은 나이까지 일하는 나라다. 우리 시대의 은퇴란 무엇인가. 생애 후반부는 어떤 모양으로 조각해야 하나. 인생 곡선은 어떻게 그려야 할까. 이글은 퇴직과 정년, 은퇴와 수명이라는 변곡점을 통과하는 중년/장년/노년의 고령자들이 좋은 삶(good life)을 살려면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가를 성찰하기 위해 기획된 것으로, 이후 몇 차례에 걸쳐 연재할 계획이다. [기자말] |
우리나라 사람들은 일(노동)과 놀이를 대립적 관점에서 바라보는 경향이 있다. 이태원 참사(2022.10월)가 일어났을 때, 인터넷 공간에 저주에 가까운 악성댓글이 횡횡했다. 참극의 원인을 개인 잘못으로 돌리는 것도 모자라 노는 행위 자체를 부정적으로 인식하는 현상은 곳곳에서 감지된다.
한국에 거주하는 외국인들이 우리나라 사람들의 언어와 삶을 들여다보면서 고개를 갸우뚱하는 표현 중 하나가 '열심히 살자'라는 말이다. '열심히 일하자'라는 말은 수긍이 가지만, '열심히'와 '삶'은 서로 어울리는 조합이 아니라는 뜻이다. 언제부터 이런 관습과 문화가 만들어진 것일까.
먹고사는 '일'이 너무 힘들고 고단하기 때문일 것이다. 한국인의 마음속엔 '놀기를 바라면서도 노는 꼴을 보지 못하는' 모순된 감정이 병존하는 것 같다. 이런 성향은 나이가 많을수록 더 강하게 표출된다. 산업화 세대와 베이비붐 세대의 인생 사전에는 놀이가 없다. 이들 대다수는 어린 시절부터 노동의 숭고함과 농업적 근면성을 내면화한, 일 중독자(workaholic)이다.
'먹고 사는 일이 다급한데 한가하게 놀이 타령인가?'라고 반문할지 모르겠다. 그런데 사실은 그 반대다. 힘들고 어려운 환경일수록 놀이가 중요하다. 기자의 관찰에 따르면, 자기만의 놀이를 가진 사람이 놀이가 없는 이보다 훨씬 '좋은' 삶을 살고 있었다. 놀이가 고단한 삶을 지탱하는 버팀목 역할을 해주고 있었다.
아래 그림은 돈, 건강, 놀이, 관계의 기준 점수를 각각 25점(총점 100점)으로 놓고 관찰 대상자 100명을 평가해 본 것이다. 돈은 노후 자금 준비 정도를, 건강은 본인이 느끼는 건강 상태와 관리 여부를, 놀이는 즐거움을 동반하는 행위가 이루어지는가를, 관계는 주변에 마음을 주고받을 수 있는 상대가 있는가를 살폈다.
파란색 막대그래프가 돈과 건강의 평균값이고, 빨간색 선이 놀이 점수다. 평균값이 높다는 건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고 건강하다는 뜻이다. 반대로 점수가 낮다는 건 빈곤하고 건강도 나쁘다는 의미다. 전체적으로 돈과 건강의 평균값에 비해 놀이 점수가 상대적으로 낮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놀이에 투입하는 시간이 부족하다는 뜻이다.
그림 중간에 봉우리가 우뚝 솟은 곳(!)이 보일 것이다. 놀이 점수가 평균값을 훨씬 웃돈다. 돈 점수는 '보통' 수준이지만 좋아하는 일, 즉 놀이에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투입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이 호모 루덴스(Homo Ludens). 즉 놀이하는 인간이다. 좋은 삶(good life)의 요건을 두루 갖춘 이들이 이 그룹 안에 포진해 있다.
우리나라 중장년층은 어떻게 '놀고' 있을까. 아래 그림은 40대 이상 연령층의 주말 여가 활동 내용을 나타낸 것이다. 전 연령층에서 '놂'보다 '쉼'이 차지하는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다. 나이를 먹을수록 노는 활동은 줄어들고, 쉬는 활동은 늘어나는 현상을 보인다.
특기할 만한 사실은 40대와 50대, 60대의 구성비에 큰 차이가 없다는 점이다. 경제활동을 왕성하게 할 나이인 40/50대와 전반부를 마감한 60대가 차이를 보이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두 가지 설명이 가능하다. 하나는 60대도 돈을 버느라 놀 여유가 없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후반부에도 기존 생활 습관과 관성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는 뜻이다.
많은 중장년층이 놀이 없는 삶을 산다.
놀이가 있어야 할 자리를 휴식이 차지하고 있다. 마지막 한 방울까지 에너지를 쏟아야 겨우 생존이 가능한 피로 사회(fatigue society)가 만들어 놓은 서글픈 단면이다. 한국인의 정체성은 호모 라보란스(Homo Laborans). 즉 일하는 인간에 가깝다.
놀이가 없고 놀기를 잃어버린 이의 일상은 메마른 사막처럼 건조하다. 인류는 아주 오래전부터 놀이를 삶의 중요한 일부로 여기며 살아왔다. 어린 시절이 아름다운 장면으로 남아 있는 건 놀이가 함께 했기 때문이다. 놀이는 힘겨운 삶에 청량제 역할을 한다. 나이 들수록 놀이가 중요한 이유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문진수 시민기자는 최근 단행본 '은퇴의 정석'(2024.6.28/한겨레출판)을 출간했습니다. 이 기사는 책의 내용을 일부 인용, 재편집해 새로 쓴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