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에 4남매가 9박11일 동안 이탈리아를 자유롭게 여행한 이야기를 공유하고자 씁니다.[편집자말] |
세 동생들과 자유여행으로 8일째 이탈리아를 돌아다니면서 기차와 버스, 지하철과 트램, 택시까지 대중교통을 다 이용해 보았다. 그런데 아직 배는 타 보지 않아서 배 타고 갈 수 있는 여행지를 꼽아보다가 여행 준비할 때 목록에 넣어 둔 카프리 섬이 떠올랐다.
동생들에게 몰었더니 모두 대찬성이어서 나폴리에 머문 지 사흘째 되는 날, 카프리를 향해 출발했다. 카프리는 아름다운 풍광과 때 묻지 않은 에메랄드빛 바다로 유명할 뿐 아니라 고대 로마제국 황제들의 별장지가 남아있는 유서 깊은 휴양지로 알려져 있다.
나폴리에서 카프리 섬에 가기 위해서는 베베렐로 항구에서 배를 타야 한다. 우리는 숙소에서 가까운 가리발디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무니시피오역에서 내렸다. 지하철역에서 베베렐로 부두까지는 걸어갈 수 있는 거리였다.
티켓박스에 가 보니 다행히도 금방 출발하는 카프리행 티켓이 있었다. 처음 타 본 페리에 마냥 신난 우리는 배 안 카페에서 커피도 사 마시면서 페리 여행을 즐겼다.
그런데 나폴리항에서 멀어질수록 바다는 거칠어지고 하늘은 먹구름으로 가득해졌다. 배가 심하게 흔들리면서 어떤 이는 뱃멀미를 하고 나이든 어르신은 직원의 부축을 받으며 어딘가로 쉬러 갔다. 걱정스러운 광경이었다.
나폴리를 떠날 때만 해도 하늘이 맑았는데 먼바다로 나오니 하늘과 바다가 성 나 있어 마음이 불안했다. 거세게 올라오는 파도가 페리를 흔들어 괜히 배를 탔나, 후회가 되고 두려웠다.
거친 바다를 1시간 여 달린 페리는 다행히 카프리 섬에 도착했다. 불안하고 걱정했던 순간 때문인 지 먹구름 낀 하늘과 비 오는 날씨는 문제되지 않았다. 무사히 항구에 도착한 것만도 감사했다.
간간이 내리는 비를 맞으며 우리는 항구 주변을 둘러보고 중심가로 올라가기 위해 푸니쿨라를 탔다. 카프리 섬은 고지대에 마을이 만들어져 있어 푸니쿨라를 타고 올라야 한다.
푸니쿨라에서 내리니 움베르토 1세 광장이 보였다. 광장은 중심가답게 사람들로 바글거렸는데 높은 곳에 올라와 바라보는 절벽과 마을과 바다 경치는 날이 흐려도 좋았다.
이제 우리는 발길 닿는 대로 거닐면서 카프리를 탐험하기로 했다. 광장에서 이어진 골목은 상가들로 빼곡한데 가게 하나하나가 아기자기하고 개성있고 멋스러워 구경하는 재미가 있었다.
이탈리아 남부답게 카프리 역시 레몬으로 장식한 가게가 있고 마그네틱도 바다빛인 푸른색과 레몬색인 노랑을 위주로 산뜻한 것들이 많았다. 방문하는 도시마다 마그네틱을 사 모으는 나는 마그네틱을 눈여겨 보았는데 카프리의 마그네틱은 크고 고급스러워 가격도 비쌌다. 나에게는 다소 과하게 느껴져 사진으로만 담아 왔다.
중심가로부터 바위산이 보이는 곳까지 거닐다가 우리는 근처에 있는 식당에 들어가 피자와 음료를 점심으로 먹었다. 피자맛은 나폴리보다 못 했는데 가격은 나폴리의 2배였다. 카프리가 부자들의 휴양지라는 말을 실감하는 일이었다.
점심을 먹고 나오니 다행히도 흐렸던 하늘이 조금씩 개고 있다. 다시 광장 쪽으로 가고 있는데 막냇동생이 계단을 따라 올라가 보자고 제안했다.
우리는 위로 향해 있는 좁은 골목길로 들어섰는데 중심가의 북적거림이 사라지면서 소박하고 자연친화적인 집들이 나지막이 자리 잡은 동네가 나왔다. 타일로 꾸민 마당과 벽, 개성 있는 대문들이 나무와 꽃들 사이사이 이어지고 있었다.
한가롭게 걷다 보니 골목길 끝에 전망대가 나왔다. 앞이 탁 트인 전망대에서 보는 하늘은 어느새 먹구름이 걷혀 청명했고 바다는 다양한 푸른 물감을 풀어 놓은 듯 파랑의 향연이었다.
멀리 보이는 마을은 바위 절벽 위에 옹기종기 앉아 있고 작은 섬들과 푸른 하늘을 인 다양한 코발트빛 바다는 자연이 만들어놓은 최고의 예술품이었다. 처음 보는 아름다운 풍경에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다양한 파랑이 잔잔히 물결치는 바다는 봐도 봐도 질리지 않았다. 천국이 있다면 이런 곳이지 않을까, 싶었다. 더구나 이 좋은 풍경을 혼자가 아니라 동생들과 같이 나눌 수 있어 더 좋았다. 햇살은 따사롭고 하늘은 청명하고 바다는 맑아서 푸르고 사람들은 여유롭고 세상은 평화로웠다.
우리는 내려갈 생각도 하지 않고 한참 동안 자연이 만들어낸 천국같은 풍경을 바라보고 또 바라보았다. 언제 또 이런 풍경을 만날 수 있을까, 싶어서 눈 속에 마음 속에 꼭꼭 담아두었다.
폭염이 기승을 부리는 요즈음, 지난 봄에 다녀온 카프리를 떠올린다. 오염되지 않은 자연이 오롯이 제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카프리의 바다가 그리워지는 여름날이다.
덧붙이는 글 | 제 브런치 스토리에도 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