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독서 시장 흐름이 이상하다. 독서법에 관한 책은 잘 팔리는데 정작 책은 안 팔린다. 독서법을 알고 책을 읽으면 좋은 일이겠으나 정작 책은 안 팔린다니 이해를 못 하겠다.
인문학을 소개하며 필요성을 강조한 책은 잘 팔리는데 정작 인문학 관련 책은 팔리지 않는다.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은 필요하지만 깊은 독서는 안 한다는 뜻이다. 남진우 시인의 시 <타오르는 책>을 읽어보자.
그 옛날 난 타오르는 책을 읽었네
펼치는 순간 불이 붙어 읽어나가는 동안
재가 되어버리는 책을
행간을 따라 번져가는 불이 먹어치우는 글자들
내 눈길이 닿을 때마다 말들은 불길 속에서 곤두서고
갈기를 휘날리며 사라지곤 했네 검게 그을려
지워지는 문장 뒤로 다시 문장이 이어지고
다 읽고 나면 두 손엔
한 움큼의 재만 남을 뿐
놀라움으로 가득 찬 불놀이가 끝나고 나면
나는 불로 이글거리는 머리를 이고
세상 속으로 뛰어들곤 했네
그 옛날 내가 읽은 모든 것은 불이었고
그 불 속에서 난 꿈꾸었네 불과 함께 타오르다 불과 함께
몰락하는 장엄한 일생을
이제 그 불은 어디에도 없지
단단한 표정의 책들이 반질반질한 표지를 자랑하며
내게 차가운 말만 건넨다네
아무리 눈에 불을 켜고 읽어도 내 곁엔
태울 수 없어 타오르지 않는 책만 차곡차곡 쌓여가네
식어버린 죽은 말들로 가득 찬 감옥에 갇혀
나 잃어버린 불을 꿈꾸네
-<타오르는 책>, 남진우
평범한 사람이 몸을 일으키기 위해 가장 기본적으로 한 일은 독서였다. 유향이 쓴 <설원>에는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광형은 중국 전한(前漢) 시대 학자이자 정치가다. 광형은 공부할 때 집이 가난하여 촛불을 켜지 못해 벽을 뚫고 이웃집 불빛으로 책을 읽었다. 책이 없어 책이 많은 사람과 친하게 지내며 빌려 읽었다. 결국 태자를 가르치는 태자소부와 승상의 자리까지 오르는 큰선비가 되었다.
전한 때 매신은 집이 너무 가난하여 나무를 하여 생계를 유지하면서도 책을 읽자, 부인이 말리다 못해 집을 나가버렸다. 뒤에 매신은 무제에게 <춘추(春秋)>와 <초사(楚辭)> 등을 강론해 회계태수가 됐다. 매신이 부임하는 길에 오나라에서 옛 부인과 그 남편을 발견하고 관청에서 숙식하게 했으나, 옛 부인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사람에겐 다른 동물은 지니지 못한 능력이 있다. 오직 인간의 유전자에만 있는 말하기 능력이다. 이런 사실을 우리는 경험적으로 안다. 태어나서 몇 년 지나면 학습 과정이 없어도 모국어를 익힌다. 걷기를 배우는 것처럼 아주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그러나 글은 자동으로 익히지 못한다. 일정 기간 학습 과정이 필요하다. 말하기와 달리 인류가 문자를 발명하고 글을 사용하기 시작한 시기는 아주 최근이기 때문이다. 역사학자들은 기원전 4000년~2000년 전쯤으로 본다.
"책을 읽을때 일어나는 뇌 변화"
당연히 영아의 뇌에는 글이나 문자를 담당하는 영역이 없다. 그러나 인간의 뇌는 '가소성'이 있어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뇌에는 변화가 일어난다. 뇌는 스스로 새로운 회로를 만들며 재편하기 시작한다. 미국 터프츠대학교 교수며 독서와 언어 연구센터 소장 매리언 울프(Maryanne Wolf)는 <다시, 책으로>에서 이렇게 밝혔다.
"문해력은 호모사피엔스의 가장 중요한 후천적 성취 가운데 하나다. 이는 우리가 아는 한 다른 그 어떤 종도 해내지 못한 것이다. 읽기를 배우는 행위는 인류의 두뇌 작동 목록에 완전히 새로운 회로를 추가했다. 잘 읽는 법을, 특히 깊이 읽는 법을 배우는 긴 진화 과정은 회로의 연결 구조 자체를 바꿨고, 이는 뇌 전체를 재편했으며 그 결과 인간의 사고 본성 또한 새로이 구조되었다. 깊이 읽는 것은 두뇌를 형성할 뿐 아니라 사상가를 만들어 낸다."
인간은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부터 생각하는 힘이 생겼다는 것이다. '깊이 읽기'와 '골똘히 생각하기' 는 뇌 회로를 더욱 두껍게 한다. 그러면서 비판적 사고, 개인적 성찰, 상상, 공감 같은 인지 과정이 형성된다. 책을 읽지 않으면 성숙한 인간으로 성장할 기회를 포기하는 것과 같다.
독서할 때 필요한 것이 질문과 사색이다. 아무리 좋은 책이라도 질문과 사색이 없으면 소화 안 된 음식물이 되는 것이다. 꼭꼭 씹어 먹어야 소화가 잘되듯 책을 읽을 때도 질문과 사색으로 꼭꼭 씹듯이 읽어야 한다. 그러니 질문과 사색 없이는 제대로 독서 했다고 볼 수 없다. 독서로 입력된 정보와 지식은 배경지식 위에 쌓이며 섞인다. 이 과정에서 통합, 유추 같은 '생각의 확산' 과정이 일어난다. 이때 섬광 같은 통찰을 얻기도 하고 창의적 발상으로 발전하기도 한다.
남진우 시인은 독서를 '놀라움으로 가득 찬 불놀이'로 표현했다. 당신은 지금까지 살아오며 불놀이 같은 독서를 몇 번이나 했을까? 불놀이 같은 독서를 한 후 '불로 이글거리는 머리를 이고 세상 속으로 뛰어'든 경험은 있는가?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오정환씨는 미래경영연구원장 입니다. 이 기사는 화성시민신문에도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