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월 첫째주, 방방곡곡 진솔한 땀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찾아가는 '체험 함양 삶의 현장'을 연재한다. <주간함양> 곽영군 기자가 함양의 치열한 노동 현장 속으로 들어가 체험하면서 직업에 대한 정보와 함께 노동의 신성한 가치를 흥미롭게 전하는 연재 코너이다. 관련 영상은 유튜브 '함양방송'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편집자말] |
"띵동~ 고객님이 주문하신 택배가 금일 오후 O시에 도착할 예정입니다"라는 메시지는 휴대전화 알림 중 가장 반가운 소식 중 하나다. 요즘엔 당일 배송도 가능해져서 인터넷으로 주문한 물건을 늦어도 3일 이내에 받을 수 있다.
그만큼 택배 시스템은 간편해지고 보편화됐지만, 뜨거운 날씨와 같은 도전에 직면하는 택배기사들도 있다. 이번 체험에서는 찌는 듯한 폭염 속에서도 군민들에게 행복을 전달하는 택배 기사들의 일상을 살펴봤다.
1500개 택배 상자가 눈앞에
7월 23일 오전, 함양읍 관변마을 인근에 위치한 롯데택배 사무실을 찾았다. 주중 가장 많은 물건이 함양군으로 들어오는 날짜는 화요일, 오늘이 체험하기 딱 좋은 날이다.
체험지에 도착한 시간은 오전 10시 10분께, 푹푹 찌는 날씨와 높은 습도로 인해 사무실을 지키는 강아지들이 날카롭게 짖어대고 있다. 이내 오늘 체험을 안내할 베테랑 택배기사 방보현씨가 트럭을 몰고 사무실 안쪽으로 들어왔다. 간단한 인사를 나누고 방씨가 믹스커피를 권한다. 여러 체험지를 누비며 깨달은 사실이 있다. 어렵고 고된 현장에는 꼭 사전에 믹스커피를 권한다. 오늘도 그렇다.
이날 배송할 물건이 들어오는 시간이 가까워지면서 다른 기사들도 트럭을 몰고 등장했다. 모두들 정겹게 인사를 나누고 믹스커피 한 잔씩 마신다.
대형트럭이 굉음을 내며 언덕을 오르는 모습이 보인다. "오늘 저 트럭 안에 들어 있는 택배를 모두 하차하면 된다"라고 방씨가 웃으며 설명했다.
트럭이 하차장에 주차되고 문이 열렸다. 산처럼 쌓여있는 택배들은 시작부터 사기를 꺾어 놓았다. 택배 개수는 1500개가량, 이번 체험을 마치면 며칠 동안은 파스를 안고 살 것 같다.
시작 전 장갑과 함께 바코드를 찍을 수 있는 기계를 받았다. 손목에 착용하는 인식 기계는 버튼을 누르면 택배를 인식하고, 인식된 정보는 택배가 함양군에 들어왔음을 받는 이에게 알린다. 흔히 우리가 자주 안내 받았던 문자 "띵동~ 고객님이 주문하신 택배가 금일 오후 O시에 도착할 예정입니다"가 이 과정을 통해 문자 발송이 된다.
트럭 옆에 레일을 붙이고 발붙일 공간도 없는 트럭에 올랐다. 족히 2미터가 넘게 쌓여있는 택배를 조금씩 정리하며 주위 공간을 확보했다.
종이박스, 스티로폼 등 재질도 다르고 모양도 다양하다. 얼핏 보기에는 무거워 보이는 박스도 있고, 작지만 무게가 많이 나가는 물건도 있다. 또한 습기로 인해 젖어 있는 박스는 찢어질 우려가 있어 옮기는 과정이 조심스럽다.
택배에 부착된 바코드를 인식하면 "띵동" 소리가 들린다. 이는 제대로 정보가 입력됐다는 것을 의미한다. 연달아 두 번 바코드를 찍거나 잘 못 인식하면 "삑삑" 경고음이 들린다.
서둘러 하나둘씩 방씨와 함꼐 호흡을 맞추며 물건을 내렸다. "어이 김씨 올라와서 일 좀 거들어"라고 방씨가 외쳤다. 속도가 시원찮은 모양이다.
베테랑 택배기사 '당혹' 순간
상자에 부착된 바코드는 쉽게 찾기가 어렵다. 또 습기로 인해 바코드가 흐릿한 경우 제대로 바코드가 인식되지 않는다. 끝까지 코드가 입력되지 않는 택배는 옆으로 따로 빼두고 차후 수기로 입력한다.
택배로 보낼 수 있는 물건은 최대 중량은 20kg 정도이며 물건의 부피와는 관계가 없다.
"간혹 화물로 보내야 할 것 같은 물건이 들어오면 정말 당혹스럽다. 가장 곤혹을 치루는 일은 엘리베이터가 없는 건물에 생수를 옮기는 것이다. 한두 개면 모르겠으나 대량으로 배송이 있는 날에는 정말 진이 빠진다."
운송되는 물건들은 대부분 종이박스 및 스티로폼으로 포장돼 있지만, 그렇지 않은 물건들도 종종 눈에 보인다. 종이가방에 유리 테이프를 감은 것도 있고 봉지에 담겨져 있는 것도 보였다.
"택배업에 종사하고 있으면 정말 다양한 물건들이 배송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예전에는 건전지 두 개를 택배로 보내는 사람도 있었다. 크기가 너무 작아서 잃어버리지 않을까? 걱정했던 기억이 있다."
점차 호흡은 거칠어지고, 머리가 어지럽다. 더불어 팔, 다리, 허리까지 통증이 밀려온다. 허리를 잠시 펴고 남은 물건을 확인하니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고 설렁설렁 일 하기에는 높게 쌓여 있는 물건들이 모래성처럼 무너져 내릴 것만 같다.
"택배가 머리 위에 있어 항상 긴장의 끈을 놓치면 안 된다. 상자 안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알 수 없고, 혹시라도 무겁고 뾰족한 물건이 머리 위에 떨어지면 큰 부상으로 이어진다."
트럭에 쌓인 택배가 중간쯤 빠졌을 때 시원한 물 한잔이 제공됐다. 이미 속옷까지 땀으로 젖은 시점에서 시원한 냉수는 꿀맛이 따로 없다.
택배기사들의 일정은 오전에 배송할 물건을 개인 트럭에 모두 싣는 순간부터 시작이다. 각자 맡은 구역이 정해져 있으며 당일 채워진 물건을 모두 배송해야 일과가 끝난다. 숙련된 기사들은 오후 4시쯤 일과를 끝내기도 하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에는 오후 10시가 지나도 일을 마무리하지 못한다.
"택배는 체력이 좋다고 해서 꼭 잘하는 것은 아니다. 대략적으로 맡은 구역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어떤 동선으로 움직일지 머릿속으로 미리 생각하고 이동하는 것이 효율적이다. 초보자들은 오후 10시가 지나도 일을 마무리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택배기사는 두 가지 부류로 나뉜다. 회사에서 기사를 고용하는 정규직원 기사와 함께 개인 사업자 기사가 있다. 직영기사는 말 그대로 회사에서 기사를 채용해 고용하는 형태로 연봉제이며 성과에 따라 보너스가 지급된다.
그러나 개인 사업자는 말 그대로 1인 기업의 사장과 같다. 방보현씨 또한 개인 사업자이며 자기가 한 만큼 수입이 생긴다. 개인 택배기사 평균 월급은 높은 편이지만 각종의 부가세 및 소득세 등과 같이 세원이 100% 노출돼 있다. 또한 차량유지비, 보험비, 통신비를 비롯해 배송사고로 인한 변상도 모두 자가 부담이라 부대비용이 많이 발생한다.
모든 일정을 마무리하고 바코드에 찍힌 택배 개수를 살펴보니 432개가 찍혀있다. 몸은 이미 만신창이지만 마음은 뿌듯하다.
코로나 바이러스 이후 생필품 주문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최근 택배 기사들이 과로사로 숨지는 사고가 많이 발생했다. 오늘 체험은 그들의 업무 중 일부분이지만 살인적은 근무 강도가 과언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앞으로 그들의 노고를 기억하며 집 앞으로 찾아온 택배기사님들에게 시원한 냉수 한 잔 건네며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 싶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함양뉴스에도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