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락할미새, 검은등할미새, 까치, 쇠백로, 중대백로, 삑삑도요, 흰목물떼새, 때까치, 칡때까치, 흰뺨검둥오리, 가마우지, 왜가리, 박새, 물총새, 유혈목이, 무자치...
오랜만이다. 천막이 있던 자리로 내려가니 물총새 등 새들이 맑은 물에 목욕하면서 몸단장하느라 바쁘다. 쇠백로는 자갈을 살살 긁어서 물살이가 움직이게 유도하고, 잽싸게 낚아챈다. 때까치는 여기저기 몰려다니며 다른 새 친구들을 내쫓고 있는데 그 모습도 자연의 일부이기에 귀엽다.
민물가마우지는 강물을 따라 위아래로 오가며 떼로 몰려다닌다. 환경부가 '유해 조류'로 선정한 가마우지는 고인 물을 찾아 사는 습성을 가졌다. 4대강 사업 이후 금강에 가마우지가 급격하게 늘었다고, '금강 요정'(김종술 오마이뉴스 시민기자)이 했던 말이 떠오른다. 고인 물을 만들어 개체수가 늘어난 것인데, 이제는 유해 조류라고 해서 죽여도 된단다.
얼가니새(이경호 대전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는 "다시 4대강 보의 수문을 열어 강물을 흐르게 하면 서식처가 줄어든 가마우지가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알아서 번식을 줄일 것"이라며 상황이 이렇게 된 것을 안타까워했다. 사람의 일에 이리저리 쫓겨다니는 가마우지의 모습을 보면서 '사람이야말로 생태계 교란종'이라는 누군가의 우스개가 맞는 말인 듯싶다.
물 채운 강이 아니라 살아있는 강을 보라
2022년 5월, 환경부가 발표한 '4대강 보 개방 모니터링 종합분석 보고서'에는 보 개방 이후 물 체류시간이 감소하고, 유속이 증가했고, 물 흐름이 개선됐다고 적고 있다. 수질은 완전 개방 이후 물 흐름 개선으로 21년 유해 남조류 평균 세포 수가 예년 대비 최대 85% 감소했다. 특히 세종보, 공주보는 퇴적물의 모래 함량이 증가했고, 유기 영양물질 함량 감소 경향이 뚜렷하게 나타난다고 보고했다.
생태계는 어떨까? 습지, 모래톱 등이 형성되면서 다양한 물새류와 육상동물(표범장지뱀, 삵, 수달 등) 서식 환경이 개선되었다고 보고한다. 장기간 완전 개방한 세종보와 공주보 구간은 어류 건강성 지수가 증가했다. 특히 세종보 구간은 저서동물 건강성 지수가 증가하고, 흰수마자 서식 범위 확대를 확인했다고 보고했다. 물새류 종수도 증가했고 멸종위기 야생생물(노랑부리저어새 흰꼬리수리, 흰목물떼새, 금개구리, 표범장지뱀, 수달, 삵 등) 및 중대형 포유류 서식을 확인했다. 이게 22년 5월, 한화진 환경부 장관 재임 시절의 발표 자료였다.
이렇듯 보 개방 후 강이 살아나고 있다는 증거는 죄다 환경부가 갖고 있다. 그럼에도 4대강 16개 보 중 유일하게 개방된 세종보마저 담수를 강행하는 까닭은 과학이 아닌 정치 논리로 강을 바라보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지금은 돌변했지만, 지난 정권에서는 <조선> 등 보수 언론들이 4대강 재자연화 사업을 비판하면 보 개방 이후 녹조가 줄고 수질이 좋아진 과학적 모니터링 결과 수치를 들이대면서 적극 반박하던 게 환경부였다. 영혼 없는 공무원이라는 말이 딱 어울리는 게 지금의 환경부라고 할 수 있다.
기대할 것 없는 환경부 장관 교체… 답답한 강의 현실
'환경과 경제의 상생'
이 말은 지난 25일 한화진 전 환경부 장관이 이임식 때 강조한 말이다. 26일에는 김완섭 신임 환경부 장관이 취임식을 했다. 한 전 장관의 이임사를 읽다가 위의 표현이 낯이 익어서 살펴보니 김 신임 장관이 인사청문회 때 한 말과 똑같다. 결국 그 나물에 그 밥이다. 환경의 최후 보루여야 할 환경부가 경제와 개발 부처에 휘둘렸던 전임 장관의 전철을 밟을 게 확실하다.
아니 더 후퇴할 수도 있다. 한 전 장관은 그나마 환경 분야 연구 경력이 있는 인사였다. 그런데 신임 장관은 기획재정부 출신이다. 이곳만은 꼭 보존해야 한다고 국가가 지정한 설악산 국립공원에 케이블카를 놓는다고 결정한 윤석열 정부에 대한 비판 여론이 일고 있는데, 벌써 신임 장관은 "케이블카도 넓게 보면 생태관광"이란다. 이런 궤변론자가 환경 수장이라니...
지난 24일, 국립생태원 멸종위기종복원센터에서 세종보 농성장의 수염풍뎅이를 조사한다고 나왔다. 그런데 이야기를 들어보고 실망했다. 본인들은 조사연구 보고서만 제출하는 것이고, 실제적인 대책은 환경부가 마련해야 한단다. 수염풍뎅이 서식을 전수 조사하고, 보전대책을 마련해야 하는 환경부가 세종보 담수에 눈이 멀어있는데 제대로 된 방책이 나올 수 있을까. 심란했다.
"파바바바박~ 뚜둑"
하천 둔치의 재난안전본부에 설치해 둔 타프(그늘막)가 날아가는데 걸린 시간은 5분이었다. 엄청난 비바람이 순식간에 농성장을 쓸고 지나갔고, 그 와중에 타프 기둥이 뚝 부러졌다. 생각해 보면 단 5분 후도 예측할 수 없는 것이 사람의 일, 자연의 일이다. 그저 받아들이며 살아갈 뿐이다. 대신 소나기가 그치자 찜통 같았던 농성장이 시원해졌다.
이날은 중복 날, 김은실씨가 든든한 채식 밥상을 들고 방문했다. 장맛비 그치고 이제 막 폭염이 시작될 텐데, 지치지 말라고 격려하면서... 땅에서 난 가지와 상추, 감자, 단호박, 호박잎은 중복 보양식으로 충분했다. 두런두런 둘러앉아 이야기를 나누며 정성스러운 도시락을 먹는 풍경, 이게 바로 평화이다. 오늘은 또 이렇게 농성장을 지켰다. 김은실씨만이 아니다.
"무엇을 사갈까요?" "필요한 거 없어요?" "무엇을 함께 할 수 있을까요?"
천막농성 90여 일이 가까워 오고 있는데 아직도 이런 말을 건네며 많은 사람들이 농성장을 찾아오고 있다. 그럴 때마다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농성하고 있다고 더 많이 소문을 내어 주시고, 더 많은 사람들과 손잡고 와서 살아있는 강의 아름다움에 한번 푹 빠져보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