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나는 가장 슬픈 순간에 사랑을 생각한다>는 2024년 7월, 그러니까 지난 달에 워터베어프레스에서 1쇄를 찍은 따끈따끈한 신간입니다. '새벽부터'라는 필명으로 소셜미디어에 글을 쓰는 저자는 60대 중반의 경비원입니다. 저자가 옛 트위터(X.com)에 쓴 글이 반향이 되어 이걸 모아 산문집을 펴냈습니다.
'새벽부터'라는 필명은 경비원이라면 누구나 마주하는 새벽을 떠올리게 합니다. 저자는 아파트와 빌딩에서 경비 근무를 하며 날마다 마주하는 새벽의 느낌과 감각으로 옛 트위터(X.com)에 짧은 글들을 썼습니다.
짧지만 깊이가 있는 글 덕분에 트위터에 친구들이 생겼습니다. 그걸 눈여겨본 출판사가 저자에게 출간을 제의했고, 한 권의 책이 되어 독자들을 만나고 있습니다.
쉽지 않은 삶, 그럼에도 계속 살아갈 이유
344쪽의 두툼한 책으로, 표지 디자인은 차분하고 고요합니다. 책을 펼쳐보니 8개의 챕터로 구성되었으며 챕터를 소개하는 문장을 덧붙였습니다.
1. 경비원 : 밤의 경비실에서 내가 지킨 것은 흔들리는 마음이었다.
2. 새벽 : 새벽에 깨어나는 모든 것들은 삶의 간절함을 담고 있다.
3. 아내 : 한 사람의 삶은 사랑의 기억이어야 한다.
4. 삶 : 슬픔도 쓰다 보면 아름다워진다.
5. 위로 : 내가 포기하지 않았던 것은 아름다운 세상에 대한 확신이었다.
6. 가족 : 나는 사랑을 생각한다.
7. 계절 : 봄을 기다리는 소박한 꿈으로 겨울을 견딘다.
8. 후일담 : 새로운 꽃이 뒤를 잇는 새벽에 나무는 잎을 키운다.
아파트와 빌딩에서 경비원으로 근무하면서 느끼는 감정과 생각을 읽기 쉬운 글로 풀어내지만 책에 새겨진 문장에는 깊이와 울림이 있습니다. 아파트 단지와 조화를 이루는 멋진 조경수는 주민들에겐 안식처가 되지만, 경비원에게는 고역입니다. 아파트 조경과 관련해서 저자의 경험이 담긴 문장이 있습니다.
"나무가 이렇게 창조적으로 쓰레기를 만들어 내는 것을 경비원 하기 전에는 몰랐다. 특히 소나무는 끝없이 쓰레기를 뿌린다." (15p)
날마다 새벽을 마주하며 온몸으로 새긴 문장의 비결은 저자가 평생을 먹고사는 일과는 관계없는 책을 사서 읽은 덕분입니다.
방의 4면을 책으로 가득 채우며 활자를 가까이했던 저자는 클래식 음악에 커피를 얹으며 새벽녘 경비실에 아늑함을 더합니다. 커피와 함께 안식을 찾은 저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새벽의 경비실에서 커피를 마시는 의식을 진행한다. 커피의 향기는 미명의 새벽어둠과 닮아 있다. 커피 향기가 아주 천천히 세상의 어둠을 따라 경비실을 채운다." (58p)
2022년 1월 2일, 새해 벽두에서 또 한 해를 살아내려는 저자는 그날의 감정을 한 줄의 문장으로 정리했습니다.
"선택하고 물러설 수 있는 삶이 아니다. 삶은 아름다운 문장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60p)
저자는 3년이 넘는 기간 동안 경비 근무를 하면서 매일 찾아오는 새벽을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자기 계발 도서는 희망과 행복을 노래하는 한편 날마다 저자를 잠으로 이끌어 최면을 유도하기도 한답니다.
하지만 이 책의 저자는 자신이 마주하는 새벽의 풍경과 함께 떠오르는 슬픔을 날마다 글로 새겼습니다.
"오늘이 최악이라고 생각하지만, 내일은 오늘이 그리울지도 모른다. 삶은 늘 어제를 그리워하며 앞으로 흘러간다." (146p)
새벽의 경비실에서 3년 넘게 살아내면서 마음으로 지켜 낸 문장을 엄선하여 펴낸 한 권의 책입니다. 고단해 보이는 저자의 삶에서 의미와 가치를 담은 문장을 만날 때마다 밑줄을 그으며 끝까지 읽었습니다.
50대 이후에 클래식 음악에 심취한 저자 덕분에 책을 읽던 저 또한 '안나 네트렙코(Anna Netrebko)' 와 '엘리나 가랑차(Elina Garanca)'를 알게 된 건 커다란 행운입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2명의 성악가가 함께한 공연 영상을 유튜브로 보면서 할 말을 잊었습니다.
'행복을 말하기 힘든 삶일지라도 계속 살아갈 이유가 되는 것들'이라는 부제의 이 책은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에필로그를 장식하며 끝을 맺습니다.
"사람은 앞으로만 가고 늘 발전만 하는 존재는 아닐 것이다. 이제는 더 이상 앞으로 나갈 꿈이 없는 세상에서 한 권의 책에 머무는 오늘을 담았다." (342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