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10·29 이태원 참사를 다룬 미국 제작 다큐멘터리 <크러시>
10·29 이태원 참사를 다룬 미국 제작 다큐멘터리 <크러시> ⓒ 파라마운트플러스
 
"작가님, 이태원 참사 다큐가 미국 에미상 후보에 올랐어요."

지난 7월 26일 새벽 3시, 그날도 여전히 잠들지 못하던 나는 함께 이태원 참사에 대한 다큐멘터리 <크러시>(Crush)를 작업했던 한국 제작사 피디의 SNS 게시물을 통해 이 다큐가 에미상 뉴스·다큐멘터리 부문 후보에 올랐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 게시물을 확인한 이후, 곧바로 피디로부터 에미상 노미네이트를 알리는 메시지가 왔다. 서로가 눈물이 날 정도로 매우 기뻐했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개인 SNS에 그 감정을 전하는 것밖에 없었다.

다른 유명한 작품이나, 대형 작품처럼 홍보대행사가 따로 있었다면 이 작품이 에미상에 노미네이트 되자마자 언론에 전달되고 실시간으로 뉴스가 났겠지만 우리에겐 홍보대행사도, 마케팅 전문가도 없었다. 한국에서 일어난 일로 만들어진 다큐멘터리지만, 한국에서는 방영조차 되지 않는 작품이었기 때문일까.

미국 파라마운트사가 제작한 다큐멘터리 <크러시>는 지난해 10월 OTT 서비스인 '파라마운트 플러스'를 통해 공개되었으나, 한국에서는 해당 콘텐츠에 접근할 수 없어 논란이 불거진 바 있다(관련 기사 : 이태원 참사 다룬 '크러시', 결국 한국에서 못 본다). <크러시>가 사실상 한국 사람들에겐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존재조차 모르는 다큐멘터리일 뿐이었다는 사실을 새삼 체감했다.

그래도, 다음 날 오전이 되기만을 기다렸다. 누구 하나라도 기사를 쓰지 않으실까. 다른 것도 아니고 미국 최고의 권위가 있는 시상식, 에미상의 후보가 된 것인데. <오징어게임>이 에미상을 휩쓸었을 때, 우리나라 배우가 에미상 시상식에서 상을 받을 때, 나라 전체가 들썩이고 다 같이 기뻐하던 장면을 나는 아직도 기억하고 있었으니까. 그런데 바라던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유족들조차 모르고 있던 소식

 
 파라마운트+ 다큐멘터리 '이태원 크러시(CRUSH)' 메인 예고편 캡처 화면
파라마운트+ 다큐멘터리 '이태원 크러시(CRUSH)' 메인 예고편 캡처 화면 ⓒ 파라마운트플러스
 
언젠가 이런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어떨 때가 가장 무섭냐고. 주저하지 않고 대답했다. 희망이 없을 때가 가장 무섭노라고.

"나는 되게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인데, 이 세상 사람들이 아무도 관심이 없을 때. 그거 되게 무서운 거거든요. 내가 살아갈 가치가 없어진다고 해야 할까. 저에게는 희망이 없다는 것이 그런 것이에요."

희망이 없어 보였지만, 손 놓고 있기에 이 소식은 너무나 귀중한 것이었다. 내가 홍보대행사가 되어야 했다. 직접 언론사에 소식을 돌리기로 했다. 인터뷰를 함께 진행했던 몇몇 기자님들께 소식을 알리고, 이태원 참사와 관련해 언론을 담당하는 시민 대책위원회 분들께 단체 이메일을 보내 달라고 알렸다.

스스로 직접 알리기 전까지 유가족들과 시민대책위조차 알지 못했던 소식이라는 것을 알고 난 뒤 내 심경은 더 복잡해졌다. 우리는 이 큰 소식을 너무 작은 개인이 끌어안고 있었다는 사실을 마주한 순간이었다.

다큐멘터리 <크러시>를 만들 때, 나는 이태원 참사 생존자로 단순히 출연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제작 과정 전반에 참여했다. 당시 미국에서 건너온 <크러시>의 공동 총괄 프로듀서 조시 게이너가 내게 물어봤던 질문이 생각났다.

이태원 참사는 분명 한국에서 일어난 일인데, 왜 여야를 막론하고 국회의원들이 이 참사와 관련한 다큐멘터리 인터뷰에 응하지 않는 것이냐고. 여야가 최선을 다해 참사에 대한 진상을 밝히겠다고 약속하는 모습이 연일 뉴스에서 흘러나오던 시점이었다.

글쎄, 그들은 왜 그랬을까. 그들은 무엇을 국민에게 약속하고 있었던 걸까. 그렇게 힘들게 제작을 이어가던 중, 단 한 사람, 용혜인 국회의원만이 인터뷰를 수락했다. 그리고 그가 제공한 소방대원들의 보디캠 영상에 담긴, 생생한 그날의 모습이 <크러시>를 통해 한국을 제외한 여러 나라들에서 공개되었다.

우리만의 이야기가 아닌

 
 파라마운트+ 다큐멘터리 '이태원 크러시(CRUSH)' 메인 예고편 캡처 화면
파라마운트+ 다큐멘터리 '이태원 크러시(CRUSH)' 메인 예고편 캡처 화면 ⓒ 파라마운트플러스
 
"it's too small!"

다큐멘터리 프로듀서 조시가,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이태원 거리를 도착했을 때, 참사가 일어난 거리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작은 골목을 보며, 외쳤던 말이다.

"너무 작아, 어떻게 이런 데서 그 많은 사람이 한꺼번에 죽은 거야?"

이 이야기의 시작을 알리는 다큐멘터리가 꼭 에미상에서 수상을 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미국에서 인정받는 유명한 작품이 되면, 역으로 우리나라로 수출되어우리의 이야기를 우리가 볼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이 다큐멘터리 제작 기획서를 받아본 날, 나는 이 다큐멘터리 팀이 아주 유명한 제작팀이라는 것을 알고 바로 승낙했다. 과거에도 미국 총기난사 사건을 다룬 다큐 < 11분 >으로 큰 상을 받은 팀이었다. 내게는 이런 제작팀이 필요했다. 제대로 알리고, 제대로 다큐멘터리를 만들어줄 수 있는 그런 팀이 말이다.

그래야 우리의 이야기가, 우리의 참사가 우리만의 이야기가 아닌 전 세계의 참사가 될 수 있으니. 그것이야말로 생존자와 유가족을 제대로 치유하는 진상 규명의 본질이 된다는 것을, 나는 누구보다 잘 안다.

에미상 다큐멘터리 부분 시상식은 9월 26일(현지시각) 생중계로 진행된다. <크러시>외에는 다른 4개의 작품이 후보로 올랐다. 참사를 알리고 참사를 제대로 이해받기 위해, 나는 오늘도 기도한다. '수상할 수 있게 도와주세요.'

에미상 수상 소식을 품에 안고 오면, 이전과는 달라진 이태원 참사 2주기를 맞이할 수 있지 않을까.

#이태원참사#에미상#크러시
댓글7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