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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2월 18일, 민주노총 전국민주일반노동조합 부산본부 외국어교육지회가 출범했다. 조합원 대부분이 부산지역의 영어 회화강사 노동자들이다. '원어민 강사'라고 통칭한다. 그럼에도 이름을 '원어민 강사'노조나 '영어회화'노조 대신 '외국어교육'노조로 정한 건 한국인을 포함한 다양한 인종과 국적, 직종에 제한을 두지 않고, 학원에서 함께 일하는 여러 노동자들과 함께하고자 함이다. 지회 출범부터 현재까지 함께 활동하고 있는 동료 조합원들이자, 노조를 시작한 후 '매일, 매달 희망을 느낀다'는 원어민 영어강사 노동자 잭(Jack)님, 퀸(Quinn)님의 이야기를 7월 중순 몇 차례의 이메일을 통해 들을 수 있었다.
 
 많은 학원들이 아직도 탈세 등의 이유로 외국인 강사들을 프리랜서로 등록하려고 해 이에 항의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많은 학원들이 아직도 탈세 등의 이유로 외국인 강사들을 프리랜서로 등록하려고 해 이에 항의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 전국민주일반노동조합 외국어교육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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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분은 어떤 시간과 경험을 지나 한국에서 원어민 영어강사로 일하고 계신가요?
잭 : 전국민주일반연맹 부산본부 외국어교육지회 지회장 잭입니다. 부산에서 영어강사로 일하고 있어요. 대학에서 공부하면서, 여생을 책상 앞에 앉아 일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좀 더 활동적인 일을 하고 싶었고, 세계를 탐험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아시아에서 영어를 가르칠 기회를 찾다가 한국의 영어강사 채용 담당자를 통해 기회를 얻었죠. 한국이 좋아서 8년째 살고 있습니다.

퀸 : 저도 원어민 강사로, 함께 활동하고 있는 퀸이라고 합니다. 저는 캐나다에서 4년동안 영어, 수학 강사 일을 했어요. 처음엔 어떤 개념을 설명하고 학생들과 토론하는 것이 좋아서 시작했는데, 세 살배기 아이들을 맡아 매 순간 성장을 지켜보면서 큰 보람을 느꼈어요. 생활비를 감당할 수 없어서 캐나다를 떠나야겠다고 생각했고, 한국에 와 사설 학원에서 원어민 강사로 지내고 있습니다.

- 원어민 강사의 노동에는 어떤 것들이 있나요? 수업 시간 외에도 다양한 일들이 있을 것 같아요.
"수업을 제외하면 행정 업무이지만, 강사마다 직무에 편차가 커요. 특히 대형 프랜차이즈 학원에서 일하면 할 일이 너무 많아요. 시험지 채점, 수업 보고서 작성, 특이 사항이 생기면 한국인 직원에게 별도의 보고서도 써내야 합니다. 강도 높은 수업 스케줄과 별개로 이 모든 것들을 해내야 하니 결국 쉬는 시간에 일을 하거나 집으로 업무를 가져가게 돼요. 수업 사이 쉬는 시간 5분씩을 휴게시간이라고 쳐서 법정 휴게시간도 따로 안 주고, 식사 시간도 따로 없어서 그 5분 사이에 요깃거리를 한두 입 먹습니다."

- 원어민 강사는 주로 누구와 어떤 방식으로 계약을 맺고 임금을 지급받나요?
"계약은 학원장과 강사 사이에 이루어지는데, 대부분의 학원이 저마다 정해둔 강사 급여표가 있고, 협상의 여지가 별로 없어요. 일자리는 주로 리쿠르터(채용 담당자)들을 통해서 찾습니다. 정보가 그쪽으로 다 가거든요. 리쿠르터들은 학원과 강사들을 매칭해주고, 면접을 성사시키고, 비자 서류 작성도 도와줍니다. 리쿠르터를 믿기 어려울 때도 많아요. 유명한 브랜드 학원이라는 이유만으로 아무도 원하지 않을 것 같은 일자리를 연결해 주기도 하고, 특정 학원과 일하기를 강요하면서 비자 서류를 인질로 잡아두는 경우도 있거든요."

- 비자 서류가 인질이 된다고요?
"한국에 원어민 강사로 와서 일하려면 E-2 비자(회화지도)가 필요한데, 학원과의 근로 계약을 해야 E-2 비자가 허가돼요. 그 밖의 일은 할 수 없고, 원장의 허가 없이는 이직도 할 수 없어요. 그런데 많은 학원들이 아직도 탈세 등 이윤을 위해 외국인 강사들을 프리랜서로 등록하려고 하고, 그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비자 갱신과 체류에 어려움을 겪어요. 강사들 대부분이 하루에 8~9시간, 주 5일 정도 일하는데, 그보다 적은 시간만 고용해 주는 경우도 있어요. F-2(거주)나 F-3(동반), F-5(영주)나 F-6(결혼이민) 같은 '더 강한' 비자를 가지고 있으면 비자 문제 때문에 학원에 의존하지 않아도 되고, 더 좋은 조건으로 일하면서, 임금도 더 높게 받을 수 있죠."

식사 시간 따로 없고, 1년에 이틀 이상 못 쉬기도

- 원어민 강사를 대하는 학원 사용자의 태도가 인종과 연령, 성별, 한국어 실력 정도에 따라서도 차이를 보이나요?
"원어민 강사를 대하는 태도와 기준은 다양해요. 그렇지만 어느 쪽이든 선입견과 차별에 기반하고 있는 것 같아요. 한국어를 어느 정도 할 줄 아는 사람을 선호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한국어나 한국에 대해 너무 잘 알면 다루기 어렵고 부당한 일에 항의하기 좋으니까 탐탁지 않아 하는 경우도 있죠. 남성보다는 여성을 좀 더 선호하는 것 같고, 30대가 지나면 강사 일자리를 찾기 힘들어집니다. 학원에서는 학부모들에게 젊고 활기찬 강사진을 어필하고 싶어 하거든요. 북미 출신의 백인 강사를 우대하고, 유색인종의 경우에는 괴롭힘, 언어 폭력, 심지어 신체적 폭력을 당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우리는 북미에서 온 백인 영어 교사로 대다수의 한국인들로부터 좋은 대우를 받고 있다고 느껴요. 그렇지만 때때로 한국인 동료들로부터 중국 교포와 필리핀 이주민들에 대해 혐오 섞인 표현을 듣게 돼요. 제가 그분들의 마음을 대변할 순 없겠지만, 만약 한국인들이 저에 대해 같은 방식으로 이야기하는 걸 들었다면, 저는 이 사회를 훨씬 부정적으로 볼 수밖에 없었을 거예요. 이주노동자가 한국 사회에 갖는 경험과 인상은 그들의 국적과 직업에 달려있는 것 같아요. 몇 달 전에는 두 명의 남아프리카 흑인 여성 강사가 학원에서 탈출하는 걸 돕기도 했어요."
 
 회의 중인 외국어교육지회 조합원들.
 회의 중인 외국어교육지회 조합원들.
ⓒ 전국민주일반노동조합 외국어교육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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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러한 인권침해 범죄를 포함한 노동법 미준수, 노동자 권리 억압, 산재, 임금 미지급 등의 문제가 생길 경우 어떻게 해결하시나요?
"한국의 노동 관련 법률에 대한 명확한 정보를 알기가 어렵기 때문에 대부분의 강사들은 자신의 권리가 침해되고 있는지조차 모르는 경우가 많아요. 예를 들어 대부분의 어학원에서 연차 휴가일자를 학원에서 일방적으로 정해버립니다. 5인 이상 사업장인데도 여름 닷새, 겨울 닷새, 총 열흘의 휴가만 줘요. 휴가 기간도 학원 방학에 맞춰 강제하고요. 심지어 그것조차 보장하지 않는 학원들도 있습니다. 공휴일이 연차휴가라고 주장하면서 1년에 이틀 이상 못 쉬게 하는 거죠. 이게 다 업계 관행이 되어버려서 많은 강사들이 싸울 생각조차 못 합니다.

제가 원장에게 근로기준법을 들어 휴가 문제를 제기했더니 엄청 화를 내더라고요. 매일 복도에서 저를 비난하고, 휴대폰 녹음기를 켤 새도 없이 교실로 들어와서 자기가 법을 훨씬 더 잘 안다며 윽박질렀어요. 세 달 가까이 시달리고, 함께 싸워낸 끝에 결국은 적법한 휴가 일수를 쟁취했습니다. 저는 그 학원을 떠나기 위한 원장의 동의서를 얻느라 그 권리를 포기해야 했지만요.

법적인 도움이 필요할 때 많은 강사들이 LOFT(외국인 강사를 위한 법률사무소)와 같은 페이스북 그룹에 의존하지만, 거기엔 잘못된 정보들도 많이 올라와요. 국민신문고의 다국어 청원사이트를 통해 고용노동부에 진정을 넣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절차에 필요한 서류가 뭔지도 모르고, 문자 메시지나 음성 녹음과 같은 특정 증거를 제출하려면 공인행정번역사도 통해야 하다 보니 혼자서는 끝까지 싸우기가 어렵죠. 그래도 이제는 노조가 있으니, 단체로 함께 요구하고 압박할 수 있게 됐어요."

- 올해 2월, 외국어교육지회를 출범하셨지요. '외국어교육지회'가 해나갈 일에 대해서 말씀 부탁드립니다.
잭 : 제가 있던 학원에서 강사들은 2020년 한 해 동안 단 하루도 휴가를 낼 수 없었어요. 저는 고용노동부 진정을 위한 증거를 수집하기 시작했고, 동료들을 모아나갔어요. 학원의 동료 중 한 사람이자 지금 저와 노조 활동을 같이 하고 있는 친구가 민주노총 부산지역본부 청년위원회와 연결되어 있었고, 노조의 도움을 받아 우리 6명이 사건에서 이겼어요. 2023년 초에 청년위에 가입했고, 그 이후로 천천히 동지들을 조직해 나갔어요.

지역의 동료 강사들이 빼앗긴 임금과 휴가를 포함한 노동자의 권리를 되찾을 수 있도록 싸우고 있습니다. 4월엔 부산글로벌빌리지와 임금 협약을 했고, 지역의 사립 학원들과도 단체교섭을 해나가려고 합니다. 우리는 영구적으로 개선된 노동조건을 쟁취할 거예요. 노동조합을 하면서 희망을 느꼈어요. 외국인 강사들이 더 이상은 쉽게 착취 당하지 않으리라는 걸 학원들에 보여줬잖아요. 매 달이 점점 더 희망적이고 신이 나요. 제가 이 단체의 일원이 되고 우리가 함께 만드는 역사의 일부가 된다는 것이 너무 기쁘고 영광스러워요. 투쟁!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메밀 님은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선전위원입니다. 이 글은 한노보연 월간 일터 8월호에도 실립니다. 한노보연 후원 문의 : kilshlabor@gmail.com


#외국어강사#노동조합#이주노동자#교육#외국인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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