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박 5일간의 세부여행 후 내 기억에 선명하게 새겨진 순간들을 꼽으라면 단연코 이것이다. 바로 호텔 직원들이 내게 건넨 밝은 미소를 곁들인 인사. 보통은 여행 후 오랜 여운이 남는 장면을 그곳의 자연경관, 맛있는 음식을 떠올리게 마련인데 나는 그 어떤 것보다 그들이 내게 인사를 건네던 순간들이 뇌리에 선연히 남았다.
그들은 하루에도 몇 번씩 마주치는 순간마다 빠짐없이 인사를 해왔다. 인사를 받는 내가 민망할 만큼 말이다. 나의 검은눈동자가 그들의 눈동자와 겹쳐지는 순간, 그들은 입가에 환한 미소를 머금으며 "굿모닝", "헬로우" 하며 인사를 건넸다.
처음엔 그 인사를 무심코 지나쳤던 나도 어느새 그들처럼 밝은 미소로 화답하고 또 먼저 인사를 건네기도 했다. 그 순간 피부색도 언어도 다른 그들과 나 사이의 마음의 장벽이 허물어진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여행 마지막날, 아침 일찍 눈이 떠져 혼자 방을 나와 호텔 근처를 산책하려 나왔는데 호텔 프론트에서 마주친 직원에게 한 번, 마침 조식 식당 오픈을 준비하던 직원에게 한 번, 비치로 나가는 길목에서 한 번, 총 3연타로 인사를 받은 적이 있었다. 아침부터 내리쬐는 햇살에 땀으로 절어있던 내 얼굴이 그들의 인사 샤워로 일순 보송해진 느낌마저 들었다.
그곳에서 머무는 동안 나는 수차례의 인사 샤워를 받았고, 인사와 함께 날아든 그들의 환한 미소는 여행을 다녀온 지 일주일이나 지는 지금까지도 내 몸 구석구석에 스며 기분 좋은 향기를 내뿜고 있는 중이다. 여행이 남긴 기분 좋은 여운은 그동안 일상 속 사소한 행위로 치부했던 인사에 대해 깊이 있게 생각하게 만든 계기가 되었다.
인사. 한자어로는 사람인 에 일 사. 사람이 하는 일이다. 인사를 국어사전에서 찾아보면 마주 대하거나 헤어질 때에 예를 표하는 말이나 행동이라 정의한다. 사전적 정의처럼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에서 인사는 사람이라면 마땅히 해야 하는 예의 있는 행동이다. 인간 사이를 이어주는 중요한 인사. 하지만 날이 갈 수록 자동화 되고 바빠지는 사회에서 인사는 간과하기 쉬는 사소한 무언가로 치부되고 있다.
가장 작은 사회라 불리는 당장 학교에서 만나는 아이들만 해도 그렇다. 복도에서 선생님을 마주쳐도 무심히 지나가는 학생들, 심지어는 아침 등교 후 담임선생님을 봐도 인사 없이 조용히 들어오는 학생들. 그렇게 인사 없이 지내는 무미건조한 일상들에 익숙해지다 보니 나도 인사를 지도할 생각도 받을 생각도 잘 들지 않았다. 오히려 인사를 지도하면 꼰대소리를 들을 까 염려할 정도 였으니 말이다.
그러다 도덕시간에 예절에 대한 공부를 하다 인사에 대한 실험 영상을 우연히 접하곤 인사가 가진 놀라운 힘에 대해 깨닫게 되었다. 그 영상은 한 택배아저씨가 택배 물건을 들고 있다가 떨어뜨리는 상황. 택배아저씨가인사를 한 상황에서는 12명 중 10명이 떨어진 물건을 주워주었고, 그렇지 않는 상황에서는 12명 중 3명만이 물건을 주워주었다. 인사라는 행위는 사람들 사이를 부드럽게 만드는 힘이 있다는 메시지를 남긴 그 짧은 3분의 영상이 인사를 가볍게 치부했던 내 생각을 날카롭게 때렸다.
그 후 나는 학교에서 지킬 아침 루틴으로 1번 선생님과 친구에게 인사하기를 새겨 칠판 앞에 붙여두었다. 그리고 인사를 잘 하는 법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인사란 먼저 눈을 마주친 사람이 하는 것. 그리고 밝은 표정을 건네며 상황에 맞게 인사를 해서 상대방에게 존중받는 기분을 들게 하는 것. 이 두 가지를 강조했다.
인사의 중요성을 알게 되면서 내가 그전과 달라진 점은. 인사하지 않는 아이들에게 "애들아 선생님에게 인사해야지" 대신, 내가 먼저 아이들과 눈을 맞추고 인사한다는 점이다. 처음엔 선생님이 먼저 인사해서 멋쩍어하던 아이들도 나의 꾸준한 인사를 받으며 달라지기 시작했다. 수줍게 들어와서 조용히 앉는 대신 먼저 "안녕하세요" 하며 밝은 목소리로 들어오는 것이다. 아이들의 아침 인사가 늘어나면서 교실 분위기도 한층 밝아져갔다.
얼마전, 인사가 주는 힘을 체감한 순간이 있다. 네 살 난 둘째 아이를 안고 있다 막 올라가는 엘리베이터를 가까스로 잡아 탄 적이 있었다. 안에는 많은 사람들이 타고 있던 상황. 이미 몇 차례 문이 열렸다 닫혔던 탓인지 표정에는 짜증이 역력했다.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이 느껴져 쭈뼛쭈뼛 서 있는데 갑자기 엘리베이터 안으로 높은 데시벨의 목소리가 울러퍼졌다. "안녕하세요!" 누군가 보니 딸아이였다. 자신의 옆에 있던 휠체어를 탄 할머니께 인사를 한 것. 그 순간 무겁게 흐르던 엘리베이터의 공기가 일순 가벼워졌다. 여기저기서 "귀엽다", "인사 잘하네"라는 소리가 들려왔다.
인사를 받은 할머니의 주름진 얼굴도 오후의 환한 햇살처럼 밝게 펴졌고, 아이의 고사리손엔 어느덧 땅콩캐러멜 두어 개가 들려 있었다. 미운 놈 떡 하나 더 준다는 말 대신 인사하는 놈 떡 하나 더 준다는 말은 인사성 밝은 딸아이에게 적합한 말일 게다. 덕분에 나도 따가운 시선으로 부터 벗어났고 심지어 뒤로 물러나 공간을 넓혀주시는 분도 계셨다.
데일카네기의 <인간관계론>에 보면 이런 말이 나온다. 상대가 내게 관심을 보이면 나도 상대방에게 관심을 갖게 된다. 밝은 미소로 인사를 하는 것만큼 상대에게 쉽게 관심과 예의를 전달할 수 있는 행위는 없다. 그렇게 인사로 단단히 다져놓은 관계가 내게 어떤 좋은 나비효과로 돌아올지도 모를 일이고.
세부여행을 다시금 돌아본다. 세부여행에서 나는 인사가 왜그리도 기억에 남았을까? 곰곰 생각해보면 수많은 관광객 중 하나로 치부되었을 내가 직원들의 인사로 인해 그 순간만은 특별한 존재가 된 듯 했기 때문이다. 마치 아무도 알아봐주지 않는 암전된 무대 위에 서 있던 내게 인사로 밝은 조명을 하나 탁 켜주어 존재를 밝혀준 느낌이랄까?
아침에 현관을 나서며 땀을 내며 일하시는 청소부 아주머니와 눈이 마주친다.
"안녕하세요, 더운 데 수고 많으시네요."
나의 한 마디에 아주머니의 머리 위에 밝은 조명이 탁 하고 켜진다.
"아이고... 알아주니 내가 다 고맙네. 좋은 하루되어요."
내 머리 위에도 밝은 조명이 탁 켜지며 어두운 현관이 잠시나마 밝아진다.
덧붙이는 글 | 작가의 브런치글에도 게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