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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한 부부가 10년 동안 나라 밖을 살아보는 삶을 실험 중이다. 이 순례길에서 만나는 인연과 문화를 나눈다.[기자말]

 
 레일라 파크에 망자의 이름으로 기증된 나무 아래, 망자의 이름 이니셜로 남겨진 한 마디.
 레일라 파크에 망자의 이름으로 기증된 나무 아래, 망자의 이름 이니셜로 남겨진 한 마디.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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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방과 부엌을 비롯해 이 집 거의 모든 것을 우리 부부에게 내주면서 무심한 듯 세심하게 우리를 호스팅하고 있는 친구는, 21년 만에 재회한 Taehur다. 그는 넓은 들과 숲 그리고 고요 외에는 거의 아무것도 없는 미국 미시간 시골마을 이스트 르로이(East Leroy)에서의 하루가 적적할까 봐 우리를 매일 14마일쯤 떨어진 인구 6만 정도의 배틀크리크(Battle Creek)로 데려가 그 도시의 구석구석을 안내한다.

배틀 크리크도 관광지가 아닌 만큼 화려한 볼거리는 없다. 그러나 미국 소시민들이 하루하루 살고 있는 일과 삶을 고스란히 목도하고 그들이 추구하는 일상의 가치들을 보고 대화하고 느낄 수는 있다.
 
 이스트 르로이의 집과 집사이에는 광활한 옥수수밭이 있거나 숲이 있다.
 이스트 르로이의 집과 집사이에는 광활한 옥수수밭이 있거나 숲이 있다.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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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내는 자연에 더 가까운 곳인 잔디 마당에 텐트를 치고 독서와 명상 공간으로 활용한다.
 아내는 자연에 더 가까운 곳인 잔디 마당에 텐트를 치고 독서와 명상 공간으로 활용한다.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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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나라 밖 여정을 여행이라고 말하는 대신 '수행'이라고 정의했던 우리의 방랑에 적확하게 맞아떨어지는 일과를 살고 있어서 우리 부부는 매일 환호성을 지르고 있다.

아내는 나들이에서 돌아오면 안방 대신 잘 관리된 잔디마당에 텐트를 치고 홀로 원서를 읽으며 영어 공부를 한다. 또 미세먼지 하나 없는 공기와 아름드리 거목을 껴안고 대화하는 마음 공부도 하고 있다. 나는 이 집을 중심으로 반경 20마일쯤 내의 커뮤니티를 답사하고 느끼는 활동을 하고 있다.

은퇴한 세 명의 일과는 각자 원하는 것을 찾아서 뭔가를 하지만 강제되는 것이 없다는 점에서 매일이 쉼이다. 그러나 또 다른 쉼의 의미를 더하고 싶어 지난 일요일에는 레일라 파크(Leila Park)와 우드랜드 파크(Woodland Park)를 걸었다.

먼 거리 걷기를 좋아하는 Taehur와 아내는 앞서거니 뒤서거니 걷고 나는 공원 안의 원시림을 홀로 탐험했다.
 
 생을 마친 나무는 다른 생물의 집이 되거나 먹이가 된다.
 생을 마친 나무는 다른 생물의 집이 되거나 먹이가 된다.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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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산을 기증해 조성된 레일라 파크의 정원
 유산을 기증해 조성된 레일라 파크의 정원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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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을 다한 거목이 죽어 다른 생물들 삶의 터전이 되고 있는 모습은 레일라 파크 정원을 닮았다. 이 공원은 유산을 기증해 조성되었다. 누구나 계절별 화초로부터 위안을 얻게 했다. 죽음의 쓸모이다.

어떤 이는 나무를 기증했다. 나무 가지에 나무 이름과 함께 망자의 이름을 기록했다. 한두 손가락을 붙인 크기의 '퍼플개오동. 카일 트레버 브라운, 그토록 아름답게 살았던 시간과 깊이 사랑했던 마음을 기억하며(Purple Catalpa. In memory of a life so beautifully lived and a heart so deeply loved. Kyle Trevor Brown)'라는 푯말이 걸렸다.

참 소박한 기부자의 흔적에 흡족한 마음으로 마음속 경의를 드린 다음 발걸음을 옮기려는 순간, 그 나무 아래에 소설책 크기의 시멘트 판에 음각된 문장이 보였다. 네 모서리와 가장자리는 흙에 덮여 있어서 그것 역시 과하게 자신을 드러내는 모습은 아니었다. 아래는 그 문장이다.

"I DON'T REGRET ANYTHING IN MY LIFE I'VE DONE. ONLY REGRET THE THING I DIDN'T DO._KTB1021(내 인생에서 내가 한 일로 후회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단지 후회하는 것은 내가 하지 않은 일들이다._KTE1021)"
 
 우드랜드 파크는 원시림 사이로 산책길을 낸 공원이자 자연보호구역이다.
 우드랜드 파크는 원시림 사이로 산책길을 낸 공원이자 자연보호구역이다.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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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걷기에 최적화된 레일라 파크
 걷기에 최적화된 레일라 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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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독자께서 이런 메시지를 주었다.

"저는 40세가 된 지금, 지난날을 돌아보니 돈이 되는 일을 찾아 억척같이 살아왔고 문득 이것들에서 벗어나 내가 좋아하는 일을 찾고 싶다는 간절함에 현실과 타협의 길에서 벗어나려 합니다. 저에게 족쇄처럼 채워진 계약 관계들을 하나씩 정리하고 이제 그만을 외치는 말이 왜 이리도 어려울까요?"

자문 같기도, 자탄 같기도 한 이 절실한 물음에 어떤 회신을 주어야 할지를 고민중인 참이었다. 이 분에게 시멘트에 음각된 문구는 단순한 위로를 넘어 실제적 도움이 될 문구라고 생각되었다. 하룻밤을 더 숙고한 뒤 내 자신에게도 보내는 마음으로 회신할 수 있었다.

"선생님의 질문이 계속 머릿속에 남았습니다. 이 물음에 적절한 조언이 될 문구를 어제 산책길에서 발견했습니다. 그것은 돌아가신 분이 세상에 남긴 마지막 말이었습니다. "내 인생에서 내가 한 일로 후회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단지 후회하는 것은 내가 하지 않은 일들이다."

덧붙이는 글 | 모티프원의 홈페이지에도 함께 게재


#미국여행#미시간#세계여행#배틀크리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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