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재가 노래하는 곳>은 흡인력이 정말 강한 소설이었다. 소설의 배경이 습지인데, 읽는 내내 눅진하고 풍요로운 습지에서 허우적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인간과 자연의 상관 관계를 성장소설 속에 노련하게 버무리는 것에 그치지 않고 로맨스와 스릴러, 법정 이야기까지 담아내다니. 작가가 일흔의 나이에 처음 쓴 소설이라는 게 도저히 믿기지 않았다. 분명 글을 오래 써온 사람이고 살아온 삶도 예사롭지 않으리라 짐작되었다. 글은 치열하게 고민하며 살아온 한 사람의 삶을 그대로 반영하지 않던가.
대체 작가인 델리아 오언스는 어떻게 살아온 사람일까. 작가의 이력을 살펴 보니 동물행동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는 것과 아프리카에서 7년 동안 야생동물을 관찰하고 연구한 성과를 정리해 책을 출간했다는 사실이 눈에 띄었다. 야생에서 오랜 시간 동물을 관찰하며 살았다니. 자연과 한 몸처럼 살아간 <가재가 노래하는 곳>의 주인공 카야가 오버랩됐다. 아프리카에서 그는 어떤 시간을 보냈을까.
야생 동물 연구에 나선 부부
그렇게 찾아본 책이 <칼라하리의 절규>였다. 이 책에는 오언스 부부가 신혼이었던 1974년부터 7년 간 남아프리카 보츠와나 공화국의 칼라하리에 머물며 야생동물 연구에 매진한 이야기가 담겨있다.
지독하고 긴 건기가 있는 칼라하리는 생명이 살기에 좀 척박한 땅이다. 그럼에도 그곳에서 기나긴 이동을 하며 목숨을 부지하고 유전자를 전파해 가는 동물들이 있다. 더 늦기 전에 온전한 야생의 세계를 보고 싶었다는 이들 부부의 도전은 무모하지만 대단하다. 간신히 연구비를 지원받으며 단순한 먹을 거리와 집기들로 버티고, 자연과 하나 되어 살기 위해 분투한 두 사람.
완전한 야생에서의 삶은 결코 녹록지 않았다. 건기에 들불이 번져 순식간에 모든 것을 삼킨 적이 여러 번이었고, 수년 간 비가 한 방울도 내리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비가 오더라도 폭풍우가 몰아쳐 모든 집기와 야영장이 날아가고 엉망이 되기도 했다. 밤낮의 온도차도 심해 한낮에는 그늘에서도 50도를 육박하다가 밤이 되면 수온주가 뚝 떨어지는 일이 잦았다. 먹을 거리가 다양하지도 않았고, 물과 기름이 충분하지도 않았다. 야생 연구는 그야말로 생존과 직결된 문제였다.
그 속에서도 이들 부부는 어떻게든 동물들과 자연스럽게 어울리기 위해 노력한다. 이곳의 동물들은 태어나 한번도 사람을 본 일이 없다. 이들 부부는 동물들을 면밀히 관찰하되 영향은 미치지 않으려 노력한다. 자주 만나는 동물들에게 이름을 지어주고, 이들이 우기와 건기에 어디에서 지내는지, 먹이는 어떻게 구하며, 번식과 육아는 어떻게 하는지 등을 오랜 시간에 걸쳐 관찰하고 연구한다.
그들이 마주한 건 야생 동물들의 삶만이 아니었다. 죽음도 함께였다. 그들이 생명을 구해준 사자 본즈가 인간에게 사냥을 당하고, 아끼며 관찰하던 갈색하이에나 스타가 역시 관찰대상이던 수사자 모펫과 머핀에 의해 갈기갈기 찢기고, 야영장 귀염둥이였던 뾰족뒤쥐가 그들의 조수 목스에 의해 박제가 되는 등 말문이 막히는 상황을 수차례 맞닥뜨린다. 마치 제목이 <인생>임에도 다양한 죽음을 보여주는 위화의 소설처럼.
이들 부부는 갈색 하이에나가 공동 육아를 한다는 놀라운 사실을 밝히기도 하고, 암사자들이 혈연관계가 아닌 새끼에게 젖을 물리는 장면도 목격한다. 암사자 뿐만 아니라 수사자도 협력 관계를 이룬다는 사실도 처음으로 알아낸다.
수년 간 지속된 가뭄으로 수천 킬로미터를 목숨 걸고 이동한 누떼가 인간이 설치한 울타리 때문에 먼 길을 다시 돌아가고, 결국 호수 앞에서 물 한 모금 들이키지 못한 채 스러져 가는 장면에서는 눈물이 핑 돌았다. 이 대학살극의 장면은 아이러니하게도 야생 동물에 대한 장기적인 연구가 왜 절실히 필요한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인간이 자연과 점점 멀어지고, 야생의 세계가 점차 사라지고 있는 이 시점에서 이들의 연구는 시사하는 바가 무척 크다. 동물의 이동거리는 인간의 상상을 초월한다. 인간도 오랜 시간 유목민으로 살았다. 아프리카에서 시작해 전 세계로 뻗어나가는 긴 이동을 자처한 호모 사피엔스다. 우리는 마치 늘 정착해 살아온 것처럼 말하지만, 사실 이동하며 살아온 세월이 훨씬 길다. 여전히 이동하며 살아가는 동물들을 이해하지 않고서 공존을 말할 수는 없다.
다음 책의 번역이 기다려진다
둘의 연구는 연구이기 전에 삶 그 자체였다. 도시의 편리함과 안락함을 내던지고 스스로 자연으로 걸어 들어가 혹독한 날씨와 환경을 견뎌내면서도, 지속해서 인간과 동물의 공존을 고민하고 그 실상을 알리려 노력한 그들의 삶에 경의를 표한다.
책을 읽으며 스스로에게 물어보았다. 나라면 이런 연구를 할 수 있었을까. 이런 연구는 일확천금이나 대단한 명예가 주어지는 일이 결코 아니다. 사랑하는 가족들을 자주 볼 수도 없다. 이들의 사명감은 스스로 짊어진 것이었다. 그 순수한 호기심과 탐구심이 너무나 귀하게 여겨졌다. 어린이는 모두 과학자이고, 과학자는 늙지 않은 어른이라고 했던가.
책을 덮고 한동안 먹먹해 눈시울이 불거졌다. 저자의 책이 더 읽고 싶어 찾아 보니 한국에는 번역된 책이 더는 없다. 칼라하리에서 돌아온 이후 그들의 삶이 궁금해 알아 보니, 한동안 연구 자료를 정리해 책을 내는데 집중을 했다고 한다.
이후 다시 칼라하리로 돌아가려 했지만, 보츠와나 공화국에서 입국을 거절해 다른 곳으로 연구지를 옮겨야만 했단다. 그 뒤의 연구를 담은 책이 <코끼리의 눈>과 <사바나의 비밀>이다. 하루 빨리 번역이 됐으면 좋겠다. 두 책에는 어떤 모습의 대자연이 그려져 있고, 그 속에는 어떤 야생 동물들이 살아 숨쉬고 있을까.
<칼라하리의 절규>를 읽고 나니 <가재가 노래하는 곳>을 더 깊이 이해하게 된다. 배경은 사막과 습지로 정반대지만, 왜 델리아 오언스가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인물을 주인공으로 내세웠는지, 주인공이 왜 문명세계를 어색하게 느꼈는지, 작가가 소설 속에 꼭 담고자 한 메시지가 무엇이었는지. 작가의 생각에 더 맞닿은 느낌이다.
소설이 많이 읽히는 만큼 생생한 한 편의 다큐와 같은 이들의 연구 이야기도 많이 읽히기를 바란다. 그래야 다른 책들도 번역이 될 테니. 그래야 동물들의 진짜 삶에 대해 더 깊이 이해하게 될 테니.
이 책의 추천사를 쓴 최재천 교수가 늘 강조하는 말 "알면 사랑한다"처럼, 더 알았으면 좋겠다. 더 알려고 했으면 좋겠다. 지구상에 엄연히 존재하는 다른 동물들의 진짜 삶을. 그래야 비로소 하나뿐인 이 지구에서의 공존을 모색할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