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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주 전부터 열 다섯 살 아이가 자꾸 다리가 저리다고 했다. '일흔 다섯도 아니고, 열 다섯이 그럴 수 있나' 싶으면서도, 동시에 온갖 불길한 예감들이 떠올랐다. 아이가 어디 아플까봐서다.

정형외과와 신경외과 등 여러 병원 검사를 전전한 뒤 나온 결론은 다소 힘빠지게도 '도수치료를 열심히'였다. 그런데 도수치료 두 번째 날, 병원은 내 동의도 없이 치료 시간을 늘려서 진료비를 추가했다. 그러면서 갑자기 면담을 하자더니, 짐짓 심각한 얼굴로 말한다. 거북목과 척추 측만증이 엄마인 내게도 보인다나.

엄마와 딸이 세트로 도수 치료를 끊지 않으면 둘 다 디스크로 발전할 것이다, 마침 지금은 다시 없을 할인가이니 놓치면 손해다,라며 병원에서 진행 중인 도수 프로그램을 좌라락 펼쳐 보여준다.

어쩐지, 의사와 도수 치료사가 단결해서 '호객님, 어서 카드를 내 놓으시지요' 하는 느낌이었다. 그들 말을 듣다가 불안으로 들끓던 마음이 점차 착착 접혔다. 접힌 단면에는 '내가 혹 디스크더라도 여기 병원에서는 치료 안 해!'라는 결심이 들어섰다.

퇴근한 남편에게 이 이야기를 했더니, 최근 자기 회사 후배도 목 디스크로 고생했는데, 요가 두 달 만에 디스크 완치 판정을 받았다고 한다. 게다가 마침 그 요가원이 우리집에서 마을버스 네 정거장 거리였다. 어디 한 번, 하는 마음으로 1회권을 끊어서 아이와 함께 갔다.

중학생이 요가를 좋아할까 싶었는데, 하고 나니 등이 시원해서 좋다고 한다. 아이 마음이 바뀌기 전에 얼른 한 달 치를 등록했다.

생각해보면, 내가 미디어에서 접한 요가는 '저런 게 된다고?' 싶은 모습뿐이었다. 나와 아이의 요가는 '이게 안 된다고?'에 더 가까웠다. 우리의 요가는 그저 팔다리를 뻗고 약간 기울이는데 그쳤다. 스트레칭이라고 하기에도 민망하다.

수익 위해 '공포 처방'하는 병원... 때로는 걸러 듣기도 필요하다

이게 된다고? 요가는 이렇게 신기한 동작만 하는 줄 알았다
이게 된다고?요가는 이렇게 신기한 동작만 하는 줄 알았다 ⓒ 픽사베이

그런데도 다음날이면 은은한 근육통이 있었다. 별로 한 게 없는데도 생기는 근육통이 반가웠다. 요가 1회차에 아이는 다리 저리다는 소리도 안 한다. 더 반가웠다. 의사의 충고는 새겨들어야 하지만 때로는 걸러 듣기도 필요했다.

처음엔 '등이 시원해서 좋다'고 했던 아이는 이번 한 달이 끝나면 더 이상 하지 않겠다고 했다. 힘들고, 재미가 없다나. 힘드니까 운동이지! 소리가 목 끝까지 올라왔지만, 꾹 눌렀다.

고작 한 달이지만, 아직 아이는 8회도 다 채우지 못했지만, 그래도 수확이 있다. 이유 없는 통증이 있다고 해 무조건 병원만 찾을 게 아니라, 찬찬히 직접 내 몸을 관찰하고 움직이는 시간을 주면 예상보다 금방 괜찮아진다는 배움이다. 아이도 그걸 느꼈다.

내가 말로 했으면 그건 '잔소리'가 돼 바로 튕겨져 나갔겠다. 그런데 요가원에서 낑낑대며 몸을 늘려본 덕에 아이도 여기에 수긍한다. 남은 횟수는 다 채우겠다는 아이 말이 그래서 더 예뻐 보였다.

어제는 밤 9시에 함께 수련을 갔다. 돌아오는 길, 학교에서 있던 일을 나직하게 읊어주는 아이 얼굴에 네온 사인 불빛이 살포시 내려앉았다.

그 모습이 왜인지 유독 귀여워서 나도 모르게 반달 눈이 됐다. 아이가 중학생이 된 이후로 이렇게 귀엽게 보였던 적이 있었나? 싶었다. 그런데 그런 내가 아이 눈에도 어색했나 보다.

"엄마, 나랑 엄마랑 덩치도 비슷하거든? 근데 왜 이렇게 나를 애기 보듯이 봐?"
"비슷 아니고 더 커도, 너는 나한테 (늘) 애기지!"

내 대답에 아이는 툴툴거리면서도 입술 끝에 미소가 걸쳐졌다. 아이 허리를 슬쩍 안았더니, 아이는 내 어깨에 머리를 기댄다. 지난 몇 달 간 냉전을 반복하느라 잃어버렸던 다정함이 우리 사이를 통과하는 중이다.

좌충우돌 크는 아이, 그런 아이를 움직이게 만드는 것

다리 저리다는 말이 꾀병 같기도, 무섭기도 했던 지난 몇 주간의 기억이 스쳤다. 사춘기의 징징거림은 참으로 다채롭구나 싶어서 내심 짜증이 치솟았던 날도 있다. 병원에서 순식간에 카드를 내고 결제할 뻔했던 것을 아이 탓으로 돌리고 싶은 날 또한 있었다.

아이는 그냥 제 또래 아이답게 좌충우돌 하며 크고 있는 것이다. 좀 더 오래 산 어른인 내가 잘 못 받아준 탓이겠다.

 사춘기 아이는 그냥 제 또래 아이답게 좌충우돌 하며 크고 있는 것이다.(자료사진)
사춘기 아이는 그냥 제 또래 아이답게 좌충우돌 하며 크고 있는 것이다.(자료사진) ⓒ guillepozzi on Unsplash

이번에 보니, 아이를 움직이게 하는 건 명령이나 당위, 질책이 아니라 그저 다정함이었다.

요가원을 가지는 않더라도 일단 집에서 한 번씩 폼롤러에서 몸을 펴고, 다운독 자세를 해보면 어떻겠냐는 내 말에 바로 얼른 크게 고개를 끄덕여주는 거 보니 확실하다.

아이는 학교에 가고, 나 혼자 오전 수련을 갔다. 마지막에 다운독 자세(엎드려 땅을 보는 자세)를 하는데 ,나도 모르게 왜인지 눈물이 핑 돌았다. 나와 아이가 각자 만든 찌그러진 다운독, 어설픈 자세일지라도 그게 앞으로 우리를 조금은 평온하게 해 줄거란 믿음이 생겼다.

역시, 처음부터 끝까지 죽어라 나쁘기만 한 일은 없다는 말은 진리였을까. 갑자기 아팠던 아이, 게다가 대뜸 '공포 마케팅'을 시전한 병원 덕에 우리는 이렇게 요가를 함게 배운다. 병원에서 적당하게 도수 치료를 진행했더라면 어땠을까. 나는 착실히 요금을 착착 결제 했겠고, 함께 다운독 요가를 하며 눈물이 고일 일은 없었겠다.

그간 중학생 아이의 사춘기 호르몬에 맞춰 같이 날뛰느라 멍울진 내 마음. 그런 내 마음도 이제 요가원에서 요가를 하며 싹싹 풀리기를, 그래서 아이와 다른 이들에게 더 다정해질 수 있기를 바라본다. 나마스떼.

다운독 우리가 요가원에서 배운 가장 수준 높은 동작. 물론 이렇게 완벽한 다운독은 못한다
다운독우리가 요가원에서 배운 가장 수준 높은 동작. 물론 이렇게 완벽한 다운독은 못한다 ⓒ 픽사베이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개인SNS에도 실립니다.


#반갑다사춘기#요가#신경외과#정형외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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