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 토요일, 일요일(8/31, 9/1) 전북 군산에서 '2024 군산북페어'가 열린다.
그래서인지 지난 달부터 군산에선, 책을 매개로 한 이들이 만나면 서로 '북페어 가시죠?' '거기서 만나요'라는 게 인사처럼 되었다.
대한민국 곳곳에서 다양한 북페어(도서전)가 열리고 있으니 혹자는 이런 소식에 심드렁할지 모른다. 게다가 만약 책에 별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면 더욱 그럴 것이다.
그러나 군산 거리마다 너울대는 이 포스터를 보자. 강렬한 노을빛 색감과 굵은 활자에 호기심이 동하지 않는가? 게다가 군산시, 군산시립도서관, 소통협력센터군산, 행안부가 주최, 주관한다.
온라인서점 Yes24, 출판사 아트북스, 출판협동노동조합 도서구매 플랫폼 책광장모두, 그리고 군산의 이성당과 군산말랭이마을이 후원하고 있다. 이쯤 되면 군산시 전체가 들썩거릴만한 행사임을 알겠다.
군산 시내 도서관과 책방들에 비치된 큼직하고 도톰한 팜플렛의 '환영의 말'을 보자. '...상업출판, 독립출판, 셀프 퍼블리싱을 통틀어...'라는 구절이 있다. '책'은 문학과 비문학, 자기계발과 학습서 등 내용으로만 구분하지 않는다. '책'이라는 물건이 출판되는 방법에 따라 이렇게 다양하다.
만약 그동안 온라인과 대형 서점만 이용해 왔다면 이른바 '상업출판' 혹은 '관습출판'의 책만 만나왔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책의 세계는, 그보다도 훨씬 다양하고 재미있다.
책을 만드는 사람, 사는 사람... 모두를 배려한 축제
개인 창작자나 소규모 출판사가 아무리 새롭고 신선한 주제를 다뤘어도, 흥미롭고 실험적인 편집과 디자인으로 만들었어도, 유통이 어려워 판로가 막힌다. 온라인이든 오프라인이든 규모있는 서점이라고 해도 세상의 '모든' 책을 판매하지 않기 때문이다.
운이 좋아서 서점에 들어갔다 해도 매대에 '누워'있지 않으면 여간해서 독자를 만나기 어렵다. 그러니 보따리 장수 마냥 전국 곳곳의 '북페어'를 찾아가 자신들의 책을 소개하며 간절히 독자를 만나고자 할 것이다.
독자로서 나의 첫 도서전 참여는 십 여 년 전 파주출판도시에서였다. 책에 둘러싸여 부스를 지키고, 책을 살펴 보고 사고 파는 그곳의 모두가 낯설지 않았다. 책으로 모였다는 연대감이 주었던 흥분을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세월이 흐르면서 어느 순간부터 '북페어'는 책을 사고파는 '시장'으로만 기능하는 듯해, 그때 느꼈던 희열과 열정을 다시 느낄 수가 없었다.
군산북페어는 이러한 문제점을 날카롭게 인식하고 있다. '판매전'의 기능도 중요하지만, 그것만을 위한 자리로 만들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있다. 준비한 여러 프로그램을 살펴보면 그 의도를 읽을 수 있다. 군산북페어 2024 에서는 '책'을 둘러싼 담론을 책 창작자와 향유자가 함께 고민하고 나누고자 한다.
책을 판매하는 '서점'이라는 공간이 도시 안에서는 어떤 역할을 할까. 책은 상품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서점은 다른 가게와 달리 책을 팔기 때문에 판매공간 이상의 존재 의미를 '가질 수' 있다.
다만, 그렇다고 모든 서점이 저절로 문화공간이 되지 않는다. 서점은 자신의 존재를 어떻게 규정해야 할까. 주제 1, '도시가 책을 판다 Books For Sale'의 토크와 강연이 그것이다. (주제 강연 두 가지의 제목은 순서대로 이렇다. '서점은 도시를 어떻게 변화시켰나? '/ '책방 B&B 12년, 요즘 생각하는 것들'.)
서점을 여타 가게와 다르게 만드는 '책'이라는 물건이 있다. 책, 그것은 무엇인가. 무엇보다도 책은 문학과의 관계를 떼어놓을 수 없다. 문학은 책이라는 매체 외에는 존재할 수 없는 유일한 예술 장르이자, 책의 주요한 내용물이기 때문이다.
군산 북페어에서는 수십 년 동안 우리나라 문단의 대표주자로 활동하고 있는 여전한 현역 황석영 작가와 2030세대의 박참새, 서한나, 조예은 작가들의 이야기를 이틀에 걸쳐 각각 들을 수 있다.
책의 의미를 시간성과 역사성, 현재성의 시각으로 토론할 수 있겠다. 주제 2, '책을 탐구한다 Sail For Books'의 특별대담과 토크이다. ('작가와 떠나는 책으로의 항해'/ '우리 시대 책의 의미는?')
그럼에도 결국 '물성' 지닌 물건
책이 특별한 가치를 담보한다고 해도, 결국은 '물건'이다. 책이라는 물건을 누가, 어떻게 만드는가? 책을 읽고 만지는 우리 대부분이 무의식적으로는 느껴도 또렷하게 의식하지 못하는 책의 '아름다움', 혹은 책의 '물성'은 결국 세심한 북디자인에서 나온다. 평소 만나기 힘든 북디자이너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볼 수 있다.
열 명의 북디자이너 인터뷰를 담은 "펼친 면의 대화"(2024, 아트북스)의 저자 전가경 작가가 열화당의 박소영 디자이너와 나누는 대화의 자리에 함께할 수 있다. 더불어 책에 소개된 북디자인을 실물로 접할 수 있는 전시가 있다.
이왕 시작했으니 마저 소개하지 않을 수 없다. 직접 책을 엮는 제책 방법을 체험하는 워크숍이 있다. '진(Zine) 제작을 위한 바인딩 실습'이다. 진(Zine)은 다기한 주제를 자유로운 형식에 담는 것으로 이번 워크숍에서 그 형식을 이해할 수 있다. 김명수 북 아티스트가 진행한다.
제일 먼저 신청한 프로그램이었지만, 손이 둔한 나보다 세심하고 꼼꼼하게 차후 바인딩 기법을 활용할 분께 내 신청 기회를 양보하기로 했다. 그 대신 나는 이번 봄, 군산 하제마을 팽나무에도 찾아왔던 시인들을 만나는 자리에 참석하기로 했다. 김현, 유현아, 이소연, 전욱진 시인들의 '문학작품에서 찾은 군산' 낭독회다.
경쟁이 치열했던 프로그램 신청에 실패했어도, 북페어는 여전히 즐길 것이 많다. 세계의 서점 토트백 컬렉션과 독립출판 아카이브 전시도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서점, 출판사, 개인 제작자 뿐만 아니라 창작컬렉티브, 디자이너, 건축사무소, 도서관, 학교, 디자인 스튜디오, 전시기획사, 문학상, 영화제 등 다양한 주체가 참여하고 있는 부스가 100개나 있다.
특히 그 중 5팀은 공식 초청한 일본과 대만의 출판사, 서점, 기획자 등이다. 맥주 마시는 컨셉으로 잘 알려진 B&B는 강연도 진행한다. 어쩌면 이틀, 48시간 내내 종일 있어도 시간이 부족할지 모른다.
군산의 13개 동네책방이 모여 꿈꾼 행사
마지막으로 이번 북페어를 기획, 운영하는 '군산책문화발전소'를 살펴보자. 군산의 13개 동네책방 연합체인 이들은 작년 상반기부터 원도심 곳곳에서 움직이기 시작했다.
지난해 2700편 넘는 응모작이 모인 '군산초단편문학상'을 기획한 것을 시작으로, 올해의 북페어를 실현하기 위한 타지역 북페어 운영진, 서점 등과 위크숍을 진행하고 공개 회의를 하는 등 야심차고 세밀하게 준비를 해왔다(관련 기사:
군산 동네책방이 주최한 문학상에 몰린 원고들 https://omn.kr/272n0 ).
그들은 군산북페어가 '동시대 출판 문화의 핵심을 가로질러, 중요한 것이 중요하게 다뤄지는 꽤 의미있는 행사가 될 수 있다'고 여기고 있다.
지역의 책문화, 아니 문화 자체에 대한 고민을 지역의 민간 단체들이 스스로 협업하여 만들어 왔다. 이러한 과정 자체가 이미 혁명이 아니었던가.
지난 7월 독립출판물 북페어 '전주책쾌'에서 프로파간다의 김광철 대표가 강연하는 자리가 있었다. 그는 3년 전 군산으로 이주하여 책방 '그래픽숍'을 오픈했다.
한국의 대표적인 독립출판 출판사 '프로파간다', 그런데 지난 2007년부터 머물렀던 서울 홍대 앞을 떠나 군산으로 터전을 옮긴 까닭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그는 이렇게 말한다. '혁명, 그리고 사랑'이라고 말이다(관련 기사:
이 독립출판사의 앞선 안목, 이유를 알았습니다 https://omn.kr/29ubd ).
'군산북페어2024'는 군산 시민만을 위한 책 시장판이 아니다. 출판과 북페어, 그리고 책문화에 대한 새로운 담론을 제시하고자 도전하는 만남의 자리이다.
군산북페어가 이제 사흘 앞으로 다가왔다. 군산 시민은 물론 전국의 많은 사람들이 군산회관으로 올 것이다. 주차장이 협소하고 공사가 완료되지 않았다고 흉보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구 군산시민문화회관(전북 군산시 대학로 308))이 새로운 시민의 공간으로 탈바꿈하는 과정을 목격할 것이며,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일상의 공간에서 펼쳐지는 책축제를 즐길 것이다.
책문화를 함께 즐겁게 향유하는 우리는, 이미 한 배를 타고 있는 항해의 동료들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추후 개인 SNS에도 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