텔레그램 창업자이자 최고경영자(CEO)인 파벨 두로프가 성 착취물 유포와 마약 밀매 등 각종 범죄를 공모한 혐의로 프랑스에서 기소됐다.
프랑스 검찰은 28일(현지 시각) 성명을 통해 두로프가 미성년자 성 착취물을 조직적으로 유포하거나 마약 밀매 등을 공모한 혐의, 범죄 조직의 불법 거래를 가능하게 하는 온라인 플랫폼 관리, 텔레그램 내 불법 행위와 관련한 프랑스 수사 당국의 협조 요청을 거부한 혐의 등으로 예비 기소했다고 밝혔다.
프랑스의 예비 기소란 수사 판사가 범죄 혐의가 있다고 믿을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지만 추가 조사가 필요하다고 판단될 경우 내리는 것으로 기소 행위에 준하는 것을 의미한다.
두로프는 보석금 500만 유로(약 74억 원)를 내는 조건으로 석방을 허가받았다. 다만 프랑스 당국은 두로프에 대해 출국 금지 명령을 내리고 일주일에 두 번씩 경찰서에 출석해 조사받도록 했다.
"텔레그램, 범죄 수사에 비협조적"
프랑스 검찰이 두로프에게 적용한 첫 번째 예비기소는 '조직적 집단의 불법 거래를 허용하는 온라인 플랫폼을 관리하는 데 공모한 혐의'로 이는 최대 10년의 징역과 50만 유로의 벌금에 처할 수 있다.
검찰은 미성년자 성 착취물과 관련한 사건을 수사하면서 텔레그램에 용의자의 신원을 알려달라고 요청했지만, 텔레그램의 응답이 없자 지난 3월 두로프에 대한 체포 영장을 발부했다.
두로프는 지난 24일 저녁 파리 외곽 르부르제 공항에 전용기를 타고 내렸다가 체포돼 조사받고 있다.
두로프의 형이자 텔레그램을 공동 창업한 니콜라이 두로프에 대해서도 체포 영장이 발부됐다는 보도가 나왔지만, 검찰은 "현재로서는 파벨 두로프가 이 사건에 연루된 유일한 사람"이라며 "다른 사람에 대한 체포 영장은 피의자가 체포된 뒤에만 공개될 것"이라고 AP 통신에 전했다.
두로프 형제가 2013년 창업한 텔레그램은 철저한 보안으로 비밀 보장을 강점으로 내세워 세계적 플랫폼으로 성장했다.
검열이 엄격한 일부 지역에서 언론과 표현의 자유를 제공한다는 평가를 받지만, 익명성이 각종 범죄에 악용되는 데다가, 텔레그램이 수사 당국에 비협조적이라는 비판도 잇따랐다.
AP 통신은 "세계적인 소셜미디어 대부분은 미성년자 성 착취물 유포 등 심각한 범죄가 있을 때 국가 및 국제기관과 협력하지만, 텔레그램은 이를 무시한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두로프 수사, 정치적 동기 있나... 마크롱 "절대 아냐"
그러나 두로프의 변호인 다비드-올리비에르 카민스키는 "메신저 서비스에서 저질러질 수 있는 범죄 행위에 소셜미디어 대표가 연루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완전히 터무니없다"라고 반발했다.
텔레그램은 별도의 성명을 내고 "모든 준법 정신을 다해 디지털 기술과 관련한 유럽 법률을 준수하고 있다"라며 "(텔레그램은) 전 세계 10억 명이 사용하는 의사소통 수단으로서 빨리 이 상황이 해결되기를 바라고 있다"라고 밝혔다.
일각에서는 두로프에 대한 프랑스 검찰의 수사가 정치적 동기에서 비롯된 것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두로프가 프랑스에 특별 기여한 사람을 위한 절차를 통해 프랑스 시민권을 얻었지만, 2018년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텔레그램 본사를 두바이에서 프랑스 파리로 옮기라고 제안한 것을 거부했다"라고 보도했다.
이에 대해 마크롱 대통령은 엑스(옛 트위터)를 통해 "두로프의 체포는 절대 정치적 결정이 아니라 판사들의 결정에 따른 것"이라면서도 "자유는 소셜미디어와 실생활에서 시민을 보호하고 기본권을 존중하는 법적 틀 안에서 지켜진다"라고 밝혔다.
반면에 러시아 정부는 "프랑스가 확실한 증거 없이 두로프를 기소한 것은 정치적 동기를 위해 디지털 기술 기업을 협박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라고 비판했다.
크렘린 대변인 드미트리 페스코프는 "두로프가 법적 방어에 필요한 모든 기회를 갖기를 바라고, 우리는 러시아 시민인 두로프에게 도움을 제공할 수 있다"라면서도 "그가 프랑스 시민이기도 하기 때문에 복잡한 상황"이라고 밝혔다.
두로프는 러시아와 프랑스 외에도 아랍에미리트, 카리브해의 섬나라 세인트키츠 네비스 등 여러 시민권을 갖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