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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반복되는 제도 개선 논의

2025년도 최저임금 인상률은 전년도 대비 1.7%로 이는 우리나라에서 최저임금 제도가 시행된 이후 두 번째로 낮은 인상률이다. 역대 가장 낮았던 인상률은 2021년도의 전년도 대비 1.5%였는데 당시는 코로나19로 인한 비상 상황이었다는 점에서 다른 시기와 비교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2025년도 최저임금액은 시급 1만 30원으로 최저시급 1만 원 시대를 열었다는 점에 의미를 두는 시각도 있다. 그렇지만 이미 2017년 제19대 대통령 선거 당시 문재인, 유승민, 심상정, 홍준표, 안철수 등 대부분 주요 후보들이 최저시급 1만 원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1만 원 도달 시기를 가장 늦게 설정한 후보도 2022년을 목표로 했을 정도로 최저시급 1만 원은 마치 오래된 숙제 같은 수치였다. 그러다 보니 최저시급 1만 원의 의미는 많이 퇴색되었고, 무엇보다 최저임금 인상률이 물가 인상률에도 미치지 못하는 데다 지금 같은 고물가 시대에는 1시간을 일해 받는 최저임금으로 밥 한 끼 제대로 사먹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해마다 최저임금 논의가 시작되는 시기부터 최저임금이 결정되기까지 최저임금 제도의 문제점과 한계, 개선 필요성 등이 제기된다. 이는 2018년도 최저임금 인상률이 전년도 대비 16.4%로 인상 폭이 상당히 높았던 때나, 올해처럼 역대 두 번째로 낮은 수준으로 인상된 때나 마찬가지이다. 그리고 2018년 문재인 정부에서 최저임금이 결정된 직후와 올해 윤석열 정부에서 최저임금이 결정된 직후, 양 정부는 모두 '최저임금 결정구조'를 개선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2019년 문재인 정부에서는 '최저임금법 일부개정법률안'을 통해 최저임금 제도개선안을 발표했는데, 그 주요 내용은 최저임금위원회를 구간설정위원회와 결정위원회로 나누어 이원화하면서 구간설정위원회를 전문가로 구성하겠다는 안이었다.

2025년 최저임금이 결정된 직후에도 정부는 최저임금 결정구조 개선을 위한 연구용역을 실시하고 개선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사실상 최저임금 인상률 결정을 주도하고 있는 정부는 최저임금 인상률에 대해 노동계에서 불만족스러울 때도, 반대로 경영계에서 불만족스러울 때도 정부의 성향 문제가 아니라 제도 자체 문제인 것으로 돌리고 싶은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최저임금 결정을 둘러싼 문제들이 단지 결정구조 개선으로 획기적으로 나아질 것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그렇지만 처음 도입되던 1986년에 만들어진 최저임금 제도가 40여 년 가까이 되는 지금까지 변화 없이 그대로 유지되고 있는 상황에서 개선이 필요한 부분은 있을 수밖에 없다. 실제 제도 개선이 추진된다면 적어도 지금보다는 합리적인 근거와 과정을 통해 최저임금이 정해질 수 있는 방향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최저임금 결정구조 문제점과 한계

현행법상 최저임금은 최저임금위원회에서 심의, 의결하고 이를 토대로 고용노동부 장관이 결정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이처럼 형식적으로 최종적인 결정 권한은 정부가 가지고 있지만, 정부는 위원회가 심의· 의결한 최저임금안에 따라 최저임금을 결정한다. 정부가 위원회의 최저임금 안대로 결정하기 어렵다고 인정될 때에는 그 이유를 명시하여 위원회에 재심의를 요구할 수 있다. 그러나 재심의를 요구한 경우에도 위원회가 재적위원 과반수 출석과 출석위원 3분의 2 이상 찬성으로 재의 결한 때에는 그에 따라 결정하도록 함으로써 사실상 위원회가 최종적인 결정 권한을 가지고 있다.

현행 제도와 같은 방식은 노사위원이나 각계에서 전문적인 학식과 경험을 가진 인사가 다수 참여할 수 있고, 공익위원이 노사 의견을 조정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반면 현실에서는 최저임금 심의 의결 과정의 투명성과 공정성이 확보되지 못하고 오히려 갈등과 반목이 지속되고 있다는 문제가 있다.

최저임금위원회는 노동자위원, 사용자위원, 공익위원 각 9명 동수로 구성되고, 공익위원 9명 중에는 2명의 상임위원이 포함된다. 이 중 공익위원은 전원을 고용노동부가 제청하고 대통령이 위촉하기 때문에 사실상 정부의 영향을 강하게 받을 수밖에 없어 공익위원 및 최저임금위원회의 독립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 사실상 정부가 최저임금 수준의 결정을 주도하게 되는 구조인데 형식적으로만 최저임금위원회를 앞세운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최저임금을 심의·의결하는 과정은 노동계와 경영계의 최초 요구안 및 제시안이 제시되면 공익위원들이 노사 각자에게 수정안을 제시하도록 유도하면서 의견을 접근시키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그런데 최저임금 실제 결정 과정을 보면 노사 간의 합의가 아니라 대부분 노사의 최종안에 대해 위원들의 투표로 최저임금이 결정되었고 이 과정에서 공익위원이 큰 영향을 미친다. 그간의 최저임금 결정 과정을 보면, 노동자 측이나 사용자 측 중 어느 한쪽이 집단으로 불참하거나 퇴장하는 가운데 표결이 이루어진 경우가 많아 결국 공익위원들이 캐스팅보트 역할을 하게 되었다. 이처럼 사실상 공익위원들에 의해 최저임금 결정이 좌우되는 현행 제도가 최저임금위원회 본래 취지와 부합되는지에 대해 의문이 제기된다.

 2024년 최저임금위원회 4차 전원회의
 2024년 최저임금위원회 4차 전원회의
ⓒ 한국노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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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공익위원 구성을 보면 교수가 절대다수를 차지하고 있고, 전공은 대체로 경제학, 경영학에 집중되어 있으며, 그 외 종종 법학, 사회복지학 전공자가 참여한다. 교수는 최저임금법상 공익위원 요건 중 하나인 '학식이 풍부'한 전문가에 해당하지만 현장 경험은 부족한 경우가 많아 공익위원 구성이 지나치게 교수에 집중된 점도 재고가 필요하다. 제5대, 제6대 위원회에서 시민단체(한국여성민우회) 대표 1명이 참여한 적이 있으나 이후에는 교수와 국책연구원 종사자만으로 구성되고 있다.

해외 국가들의 최저임금 결정구조

최저임금 관련 ILO협약으로는 1928년 제26호 최저임금 결정제도 협약(C.26 Minimum Wage-Fixing Machinery Convention, 1928), 1970년 제131호 최저임금 결정 협약(C.131 Minimum Wage Fixing Convention, 1970)이 있다. 우리나라는 2001년에 이들 협약을 비준했다.

최저임금 결정구조와 관련해 ILO 제26호 최저임금 결정제도 협약 제3조에 따르면 이 협약을 비준하는 회원국은 최저임금 결정제도의 성격과 형태 및 그 운용방법을 결정할 자유를 가진다고 하면서도, 몇 가지 조건에 따라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그 내용을 보면, 첫째, 산업 또는 그 일부분에 관하여 최저임금 결정제도를 적용하기 전에 관련 사용자와 노동자 대표(사용자단체와 노동자단체가 존재하는 경우에는 그 단체의 대표자 포함)와 권한 있는 기관이 협의하는 것이 적당하다고 인정한 직업상 또는 직무상 특별히 자격 있는 사람과 협의하여야 하고, 둘째, 관련 사용자와 노동자는 국내 법령에 정해진 방법 및 정도에 따라, 다만 어떠한 경우에도 같은 인원수와 평등한 조건으로 최저임금 결정 제도 운용에 참여하여야 한다.

그리고 ILO 제131호 최저임금 결정협약 제4조 제3항에 따르면 최저임금 결정제도 성격상 적당한 경우에는 제도 운용에 관련 사용자단체와 노동자단체의 대표(그러한 단체가 존재하지 않는 경우 형평성에 기초한 사용자 및 노동자 대표), 국가의 일 반적 이익(공익)을 대표하는 데 권한이 있다고 인정되고 대표적인 사용자단체 및 노동자단체와 협의하는 것이 국내법 또는 관행에 따른 것이라면 이들 단체와 충분히 협의해 임명한 자가 직접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위와 같은 ILO 기준에 따르면 최저임금 결정제도를 운용하는 데 노사공익 3자 직접 참여의 원칙과 노사 대표 동수 구성 원칙이 요구되고, ILO 협약을 비준한 우리나라 역시 이러한 원칙을 준수하여야 한다.

한편, 최저임금위원회의 2022년 조사결과에 따르면 해외국가 중 41개 국가가 최저임금 제도를 가지고 있으며 OECD 국가 중에서는 26개 국가가 최저임금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해외 각국의 최저임금 결정구 조는 크게는 ① 의회에서 결정하는 방식 ② 정부(행정기관)가 결정하는 방식 ③ 별도 위원회에서 결정하는 방식 ④ 단체협약에 의해 결정하는 방식으로 분류할 수 있다. 다만 ②와 ③을 구분하는 경우, 정부가 결정하는 국가라 하더라도 최저임금 결정 전에 노사 단체 등 관련 단체와 협의를 하거나 자문기구가 제시하는 권고안을 고려하여 결정하는 경우가 많고, 별도로 설치된 위원회에서 최저임금 수준을 정하는 국가들의 경우도 최종적, 형식적 결정 주체는 정부가 된다는 점에서 ②와 ③의 구분은 사실상 최저임금 수준 결정이 정부 주도하에 이루어지는지, 별도로 설치된 위원회를 통해 이루어지는지 차이라고 할 수 있다.

최저임금 결정구조 개선 방향

우리나라 최저임금위원회 제도는 노사공익 3자의 직접 참여 원칙과 노사대표 동수 구성 원칙을 준수하고 있다는 점에서 ILO 최저임금 관련 협약 내용과 국제적 경향에도 부합되는 형식이라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현행 제도와 같은 위원회 결정 방식 대신 완전히 다른 결정 방식을 도입한다면 지나치게 급격한 변화가 되고 그로 인한 장단점을 예단하기 어려우며 새로운 유형의 결정 방식이 반드시 현행 제도의 단점을 보완해 줄 것이라는 근거도 찾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노동자위원, 사용자위원, 공익위원 간 합의가 이루어진 경우가 드물고, 결국 위원들의 투표를 통해 최저임금액이 결정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점, 이 과정에서 공익위원의 영향이 크다는 점 등을 고려할 때 현재와 같은 위원회 방식을 유지한다면 결국 신뢰도를 제고할 수 있도록 위원 구성 방식의 개선이 이루어져야 하고, 보다 깊이 있는 심의가 이루어질 수 있는 방향으로 개선되어야 한다.

우리나라 공익위원은 모두 고용노동부 제청으로 대통령이 위촉하고 있는데 공익위원 선정 시 노사 추천 제도가 필요한지 여부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다. 즉, 다양한 관점을 가진 공익위원들의 참여를 위해 노사정 각각의 추천을 통한 공익위원 구성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ILO 제131호 최저임금 결정협약에 따르면 공익위원을 임명하는 경우 이들을 사용자단체 및 노동자단체와 협의하여 임명하는 것이 국내법 또는 관행에 의한 것이라면 이들 단체와 충분히 협의하여 임명한 자가 위원회에 참여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독일의 경우 의결권이 없는 자문위원 2명이 최저임금위원회에 참여하고 있는데 이들 자문위원은 노사 추천에 의해 연방정부가 임명한다.

그리고 비정규직 등 최저임금 결정을 통해 임금 수준에 보다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취약계층 노동자들의 이해관계를 대변할 수 있는 대표들이 노동자위원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제도화하는 방안을 고려해야 할 것이다. 이 경우 사용자위원도 이에 대응하는 이해관계자의 참여가 보장되도록 해야 한다. 또한, 현재 위원회 내에는 연구위원회가 구성되 어 있는데, 최저임금 결정을 위한 기초 자료 수집과 분석 등이 더 깊이 있게 이루어질 수 있도록 연구위원회 구성 및 운영 방식에 대한 개선도 모색할 필요가 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격월간 <비정규노동>에도 실립니다. 글쓴이는 박귀천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입니다. 이 글은 한국비정규노동센터에서 발행하는 격월간 <비정규노동> 168호 9, 10월호 '특집[최저임금제도]' 꼭지에도 실렸습니다.


#최저임금#최저임금위원회#전원회의#제도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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