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보강 : 29일 오후 4시 20분]
각종 비위 혐의로 탄핵소추된 이정섭(53·사법연수원 32기) 대전고검 검사 탄핵 심판이 29일 헌법재판소(헌재)에서 기각됐다. 헌법재판관 전원 일치 판단이다. 헌재는 국회가 통과시킨 탄핵소추 사유 중 상당 부분에 대해 "특정되지 아니하여 형식적 적법성을 갖추지 못했다"며 구체적인 판단으로까지 나아가지도 않았다. '국회의 굴욕'이라 할 만하다.
지난 5월 안동완 검사 탄핵소추안 기각에 이어 검사 탄핵은 두 번 연속 헌재 문턱을 넘지 못하게 됐다. 현재 헌재에는 손준성 대구고검 차장검사 탄핵 심판만 남은 상황이다.
이번 헌재 결정은 향후 국회의 검사 탄핵 움직임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현재 국회에는 민주당 주도로 검사 4명(엄희준, 김영철, 강백신, 박상용)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발의돼 법제사법위원회(법사위)에 회부된 상태다.
소추 사유 중 상당 부분 "특정되지 않았다"... 일부는 "직무집행과 관련 없어"
이정섭 검사 탄핵 심판은 이전 안동완 검사 때보다 판단이 명확했다. 안 검사 때는 기각 5 대 인용 4로 갈렸지만, 이번에는 재판관 전원이 기각 의견이었다.
헌재는 검사가 탄핵 대상이 되지 않고, 국회가 탄핵소추권을 남용했다는 이 검사 측 주장은 배척했다. 하지만 그 외 다른 내용에서는 이 검사 측의 변론을 거의 전부 수용했다.
9명 재판관 전원은 탄핵소추 사유 중 ▲ 범죄경력조회 무단 열람 ▲ 부정청탁금지법 위반(리조트 예약 및 이용 관련) ▲ 골프장 예약 편의 제공 ▲ 처남 마약 혐의 수사 무마 의혹 부분은 혐의가 구체적으로 특정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이어 ▲ 집합금지명령위반(리조트 예약 및 이용 관련)과 ▲ 위장 전입은 검사의 직무 집행과 관련이 없어 탄핵 사유가 될 수 없다고 봤다.
다만 ▲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재판 당시 증인 사전 접촉으로 무죄 선고를 야기한 부분에 대해서는 재판관이 일부 나뉘었다. 국가공무원법 제56조(성실 의무)와 헌법 제7조 1항(공무원은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이며, 국민에 대하여 책임을 진다)을 위반했는지 여부에 대해 다수(7인)는 위반하지 않았다고 봤지만, 소수(2인)는 위반이 인정된다고 했다. 다만 소수 의견도 위반 정도가 파면에 이를 만큼 심각하지는 않다고 판단했다. 과정은 다소 갈리지만 결론은 모두 기각인 것이다.
검사 탄핵 연속 기각, 손준성만 남아... 검사 4인 탄핵안에도 영향
이번 탄핵심판 기각은 어느 정도 예견된 결과였다. 이 검사에 대한 수사를 진행 중인 검찰 측에서 비협조적인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다.
지난해 10월 국정감사를 통해 이 검사 비위 의혹이 터지자 서울중앙지검은 11월 20일 해당 골프장과 리조트에 대해 압수수색에 나서는 등 수사에 돌입했지만, 현재까지 9개월이 지나도록 아무런 결과를 내지 않고 있다. 헌재의 탄핵심판이 시작되면서 몇 차례 대검과 서울중앙지검에 사실조회를 요청했지만, 두 곳 모두 감찰과 수사 중이라는 이유로 자료 제출을 거부했다.
소추 사유 중 대부분이 "특정되지 아니하여 형식적 적법성을 갖추지 못했다"는 판단이 나온 데는 이런 배경이 깔려 있다. 만약 검찰의 수사가 빠르게 진행되어 헌재 탄핵 심판 중에 결과가 나왔거나, 또는 헌재의 사실 조회에 검찰이 최대한 협조했다면, 최소한 사안이 특정조차 되지 않는 상황은 벌어지지 않았을 수 있다.
이번 헌재 결정은 검사에 대한 탄핵 심판 중 두 번째 결정이다. 지금까지는 모두 기각이었다. 이제 헌재에는 손준성 검사에 대한 건만 남았다.
지난해 12월 1일 이 검사와 함께 국회에서 탄핵소추안이 통과된 손준성 대구고검 차장검사에 대한 탄핵심판은 현재 서울고등법원에서 항소심 공판이 진행 중이라는 이유로 잠시 정지된 상황이다. 다음 주 금요일(9월 6일) 항소심 선고일이 잡혀 있다. 항소심 결과가 나오면 헌재 탄핵 심판도 곧 재개될 것으로 보인다.
안동완, 이정섭 검사 탄핵 심판의 연이은 기각은 검사 탄핵을 이어가려는 더불어민주당의 움직임을 위축시킬 것으로 전망된다. 현재 엄희준, 김영철, 강백신, 박상용 검사 탄핵소추안이 민주당 주도로 발의돼 국회 법사위에 회부돼 있다. 그중 김 검사 탄핵과 관련해 한 차례 청문회를 열었지만 아직까지 뚜렷한 진전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