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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여름은 유난히 꾸물거리며 지나 간다. 최장 기간 열대야, 쏟아지는 폭염경보, 그런 여름도 조금씩 식어간다. 한 뼘씩 여름이 뒤로 물러나고 있음을 느낀다. 아주 미세하지만 풀이 자라는 속도, 볕의 따가운 정도가 다르다. 여름의 뒷문이 열렸다(관련 기사: 폭염에도 에어컨을 켜지 않고 있다 https://omn.kr/29skm ).

좋건 싫건 그럼에도 매 순간 한결같은 것은 없다. 금방이라도 죽을 듯 울어대던 고라니는 무더위가 시작되자 입을 닫았다. 한밤에 휘파람 불던 호랑지빠귀는 풀벌레의 야유에 무대를 떠났고, 새벽녘 개구리 울음은 매미 소리에 밀려났다.

섭씨 26도 이상이 되어야 울어대는 주행성 매미, 올여름은 아마 그들에겐 최적의 날씨다. 하지만 한여름 청량감을 주던 매미 소리도 이젠 잠을 못 이루게 하는 소음 공해가 되었다. 대낮처럼 밝은 도시의 조명 때문인데 약을 쳐서라도 없애 달라는 민원이 빗발친다고 한다.

이런 '벌레'는 많은 이들이 시골살이를 꺼리는 이유 중 하나다. 슬리퍼를 신고 풀밭에서 일하다 보면 깜짝 놀랄 만큼 강하게 물어대는 것이 있다. 개미다.

나는 시골살이를 하면서 벌에도 쏘이고 쐐기에도 물려봤다. 매번 예상치 못한 아픔에 머리털이 곤두서곤 했다. 붉은색 다리가 21쌍(42개)이 달린 왕지네는 나도 보기만 해도 기겁한다.

벌레는 '곤충을 비롯하여 기생충과 같은 하등 동물을 통틀어 이르는 말'로, 일반적으로 무척추동물을 이른다. 그런데 사람들의 뇌리에 벌레는 징그럽거나 하찮다는 느낌이 박혀있는 것 같다. 벌레를 좋아하는 어른이 있을까?

'농약 안 쓴 채소' 좋은 건 알지만 정작 돈 주고 사 먹는 건

벌레들 시골에 살다보면 여러 벌레들의 민낯을 있는 그대로 만나곤 한다.
벌레들시골에 살다보면 여러 벌레들의 민낯을 있는 그대로 만나곤 한다. ⓒ 김은상

고 김민기 하면 '아침 이슬'과 '지하철 1호선'이 따라붙는데, 나는 그보다 벌레가 먼저 떠오른다. 그가 생전에 가장 심혈을 기울여 추구한 장르는 아동극이었다.

이 극에는 많은 벌레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노래극 <개똥이>는 그가 공개 발표한 마지막 창작물이다. 나는 극 중에서 쇠똥구리와 풀잎들이 부르는 <새벽>이라는 노래를 좋아한다.

하지만 벌레 이야기가 먹히는 것은 딱 그 즈음까지인 것 같다. 시선이 땅과 가까운 아이들은 벌레를 신기한 동물로 여긴다.

어려선 친근하게 여기고 가까이하지만, 자라면서 이런 태도는 확연히 달라진다. 교육의 효과일까? 부모들은 자신의 아이들이 놀이에서조차 위험을 감수하길 꺼린다. 게다가 벌레는 축축하고 지저분한 곳을 좋아하기 쉽다.

하지만 사람은 벌레 없이 존재한 적이 없었고 존재할 수도 없다. 곤충이 없다면 굶주리거나 지구상에서 사라지게 될 테니까.

벌레는 쓰레기를 처리해 주고 해충을 제거하고 토양에 영양을 공급하며 다른 생물의 먹이가 된다. 제비만 해도 부모와 새끼가 한 계절에 잡아먹는 곤충의 수가 약 100만 마리나 된다고 하니 새가 존재하려면 곤충이 있어야 한다. 식물도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아는 것과 교육은 따로 간다. '약 하나 안 친 채소'가 좋은 건 알지만 사람들은 그 채소보다 말끔하게 생긴 것들을 찾는다. 벌레의 척결이 곧 도시화이고 문명사회인 것처럼 여긴다. 맘에 들지 않으면 죽이고 없앨 방법만 열심히 고민해 왔다. 생태적 역할에 대해선 별로 생각하지 않는다.

자연을 바라보는 우리의 태도가 그렇다. 파리가 대표적이다. 파리도 수분 매개자이면서 사체를 먹어 치우고 분해해서 거름으로 되돌려주는 분식성 곤충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파리에 대한 인식이 좋아지거나 재평가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사라지는 것이 벌레만은 아니다. 다시는 그 시절, 그 공간, 그 마음으로 돌아갈 수 없다. 송충이를 닮은 강아지풀로 누군가를 깜짝 놀라게 하던 추억이, 줄지어 제 집으로 먹이를 나르는 개미들을 졸졸 따라가던 뒷모습이, 사마귀가 사마귀를 갉아먹어주길 기대하며 그곳에 갖다 대던 기억도 새로 돋지 못한다.

때론 시간 지나야만 알게 되는, 아름다운 시절

벌레들 시골서 만난 여러 벌레들 모습.
벌레들시골서 만난 여러 벌레들 모습. ⓒ 김은상

시골 여름은 밤낮없이 벌레들의 노랫소리로 빽빽하다. 사랑이 머무는 풍경이랄까? 어떤 놈에겐 짝을 찾는 세레나데일 것이고 또 어떤 놈에겐 짝을 못 이룬 구슬픈 엘레지일 터이지만, 인간에겐 하루 종일 몸을 비벼대는 그들의 고단함이 생명 연장의 변주곡이다.

그리스 신화 속, 새벽의 여신 오로라(Aurora)는 트로이의 왕자 티토노스(Tithonos)와 사랑에 빠진다. 인간과의 영원한 사랑을 꿈꾼 그녀는 티토노스의 영생을 제우스에게 애원하고, 결국 얻어낸다.

하지만 '정해진 미래'를 거스른 대가는 고약했다. 늙지 않고 나이만 먹는 인간은 없으므로, 세월이 흘러 폭삭 쪼그라든 티토노스는 죽음을 간청할 지경에 이르고, 결국 더 이상 견디지 못한 오로라는 그를 매미로 만들어 버렸단다.

어느덧 맴~맴~ 거리며 울던 참매미는 가고 지금은 쏴아~ 하는 말매미가 대세인 듯하다. 어느 것이 티토노스인지는 모르겠다. 매미 소리가 너무 극성스러울 때는 내겐 그 소리가 울부짖음으로 들리기도 한다. 인간 수명 연장의 대가를 왜 내가 치러야 하냐고 하소연하는.

좋은 시절이란 뭘까? 때론 시간이 지나야만 알게 되는 것이 아름다운 시절이다. 하지만 다시 오지 않는 시절, 돌이킬 수 없다는 그 단 하나의 이유 만으로 좋은 때가 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매 순간 우리는 다시 없을 시간을 살고 있다. 길어진 수명만큼 늘어난 어른들이 열심히 살아 망치는 세상이 되어선 안 되겠다.

나이 들면 아이가 된다고 한다. 멀찍이 시골로 나앉으니 아이처럼 벌레에 대한 관심이 되살아나는 여름이다.

덧붙이는 글 | 위 기사는 <벌레를 사랑하는 기분(정부희)>, <인섹타겟돈(올리버 밀먼)> 등 책을 읽고, 제 경험담을 참고해 작성했습니다. 이 기사는 개인 브런치스토리에도 실립니다.


60대 이상 시민기자들의 사는이야기
#벌레#곤충#매미#시골#시골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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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한 초보 뜨락생활자. 시골 뜨락에 들어앉아 꽃과 나무를 가꾸며 혼자인 시간을 즐기면서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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