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위가 한창 기승을 부리고 있는 8월 어느 날 30여 명의 도민행복대학 수강생들이 낭도를 찾았다. 송은일 전남대 이순신해양문화연구소 연구실장의 인솔로 낭도의 역사와 문화, 생태 등을 탐방하기 위함이다.
장수만과 여자만 사이에 위치한 낭도는 우리나라 섬 중 84번째로 큰 섬이다. 둔병도와 적금도, 사도와 추도, 상계도(웃닭섬)와 하계도(아랫닭섬) 등으로 둘러싸여 있다. 행정구역상으로는 여수시 화정면에 속해 있다. 화정면은 낭도는 물론 백야도, 개도, 둔병도, 월호도, 여자도, 조발도, 적금도, 상화도, 하화도 등 온전히 섬으로만 이뤄져 있는 지역이다.
문헌에 따르면 임진왜란 이후 이곳 낭도에 말을 목양하는 목장을 설치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목장에서는 군마용으로 사용되는 말을 길렀다. 당시 이곳에 63호의 민가와 저수지 2곳, 마신당 1채 등이 있었다고 한다.
낭도에는 여산마을(135호)과 규포마을(11호) 등 2개의 큰 마을이 있다. 단일 부락으로서는 화정면에서 가장 큰 인구를 가지고 있는 곳이 여산마을이다. 이곳엔 논이 없기 때문에 주민들은 주로 밭농사를 짓는다. 어업으로 생업을 유지하는 가구는 그다지 많지 않다고 한다.
낭도에서 생산하는 주요 작물은 고구마이다. 고구마를 캐서 넓적하게 잘라 말린 절간고구마(빼때기, 이곳에서는 '빼깽이'라 부름)가 주 수입원이다. 전성기 때에는 1년에 1만 6000가마 정도의 빼때기를 생산했다 한다. 하지만 지금은 대부분의 주민들이 노쇠할 뿐만 아니라, 멧돼지 때문에 고구마를 심을 수 없다.
이 섬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던 최항묵씨(71)는 어렸을 때의 기억 중 아버지와 함께 장터에 갔던 기억이 가장 선명하다고 했다. 생필품을 사기 위해 장터에 가는 일은 이 마을에서는 꽤 큰일이었다. 노젓는 배를 타고 여자만을 가로질러 벌교의 5일 시장으로 가곤 했다. 새벽 미명에 아버지와 함께 배를 타고 출발하여, 장을 보고 집에 도착하면 어둠이 짙게 깔린 밤이 되었다 한다.
이곳에 식생하고 있는 수목은 주로 난대림이다. 육지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후박나무, 예덕나무, 천선과나무 등이 자라고 있다. 하늘의 신선들이 먹었다고 해서 '천선과'라 한다. 천선과나무 열매의 모양은 작은 무화과와 비슷하다. 이곳 사람들은 이 나무를 '젖꼭지 나무'라 부른다.
2020년에 이 섬은 천지가 개벽한다. 배로만 육지에 나갈 수 있었던 섬이 자동차를 타고 육지에 왕래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육지와 연결된 다리 덕분에 매년 수많은 관광객이 이 섬을 찾는다. 이 섬을 찾는 이유는 이곳에 천혜의 관광자원이 많기 때문이다.
2015년 전라남도 지정 '가고 싶은 섬'으로 선정된 낭도는 해안선의 길이가 19.5km이고, 총 세 개의 둘레길이 있다. 그중 관광객들로부터 가장 사랑받는 길인 1코스는 2.5km의 거리로 낭도 해수욕장을 출발하여 산타바오거리까지의 해안 둘레길이다. 숲길을 따라 해식애와 퇴적암층을 볼 수 있는 바닷가의 절경은 방문객들의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낭도 캠핑장 바로 앞에 있는 낭도해수욕장을 기점으로 숲길을 따라가다 보면 신선대와 천선대는 물론 공룡발자국 화석을 만날 수 있다. 특히 신선대가 있는 너른 바위 위쪽에서는 다른 곳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사각형의 주상절리를 만나게 된다. 천선대를 조금 지나 남포등대 쪽으로 가면 천상의 비경인 사도와 추도를 지근거리에서 볼 수 있다.
이 섬을 비롯하여 부근의 섬들(사도, 추도, 목섬, 적금도 등)에서 발견된 공룡 발자국은 천연기념물 434호로 지정되었다. 6500만 년 전 중생대 백악기 공룡들의 집단 서식지였던 이곳이 당시에는 바다가 아닌 호수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아마도 이곳이 한반도 공룡들의 최후의 피난처였을지도 모르겠다.
1코스 막바지에 널찍하고 깨끗한 모래사장을 가지고 있는 장사금해수욕장을 지나 산타바오거리를 거쳐 언덕길을 내려가다 방본석(81)씨를 만났다. 그는 낭도에서 태어나 평생을 이곳에서 살았다 한다. 마을 이장도 여러 차례 했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낭도가 다리를 통해 육지와 연결된 후 달라진 점이 무엇인지를 그에게 물었다.
"섬 주민들에게 가장 큰 애로사항이 뭐겠어요. 응급환자가 발생했을 때입니다. 이제는 전화만 하면 119구급차도 올 수 있어요. 그것이 저희에게는 가장 큰 혜택이지요."
하지만 문제점도 언급했다.
"매일 자동차로 우리 섬을 찾는 사람들의 수가 많아요. 그러다 보니 좁은 길이 꽉 막힐 때가 자주 있지요. 시에서 지원해 줘서 길을 넓히고는 있지만, 아직도 혼잡한 교통이 문제입니다. 그리고 방문객들이 몰래 버리고 간 쓰레기 역시 큰 문제고요."
여산마을에 살고 있는 주민의 실태에 대해서 물었더니, 그는 노령에도 불구하고 좋은 기억력으로 자세하게 대답해 주었다.
"여산마을은 총 135호에 180여 명이 살고 있습니다. 이분들 중에 노인정을 찾는 남자 노인이 61명, 여자 노인이 105명입니다."
그렇다면, 180여 명의 주민 중에 166명이 65세 이상의 노인이라는 말이다. 이분의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주민의 92% 정도가 고령자이다. 이 섬의 인구 고령화가 심각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낭도가 속해 있는 화정면의 노령화지수를 알아보기 위해 여수시 홈페이지에 나와 있는 인구통계 자료를 분석해 보았다.
노령화지수(Ageing Index)란 한 사회의 고령화 정도를 나타내는 지표로 특정 인구 집단 내에서 노인 인구가 차지하는 비율, 즉 65세 이상 인구와 14세 이하 인구의 비율을 비교하여 나타낸 수치이다.
2023년 12월 말 화정면의 주민 2059명 중, 65세 이상의 인구는 1124명이다. 반면 14세 이하의 인구는 44명이다. 노령화지수가 무려 2554.5이다. 다시 말해서 65세 이상의 인구가 14세 이하의 인구보다 25.5배 이상 많다는 것이다. 농어촌 소멸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는 말은 들어왔지만 이처럼 심각한지는 미처 몰랐다.
주민들이 살고 있는 대부분의 주택들은 낡아 보였다. 눈에 띄는 새 건물들은 대부분 펜션, 식당 및 카페다. 주로 외지인들이 와서 지어놓은 것들이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이곳 원주민들은 사라지고, 텅 빈 마을에 펜션과 식당 몇 채만 놓여있을 것을 생각하니 충격적이다.
방본석씨의 마지막 말이 잊히지 않는다.
"우덜 죽어불먼(우리들이 죽고 나면) 누가 여길 지킬지...... "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여수넷통뉴스에도 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