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에서 은퇴한 이후, 지난해 3월부터 새로운 삶을 시작하면서 나의 주된 활동 공간은 두 곳이다. 한 곳은 부산 근교의 텃밭이고, 또 다른 한 곳은 <오마이뉴스>다. 텃밭은 은퇴 이전부터 주말농장으로 채소를 가꾸어 왔던 곳인데, 은퇴 이후에 확장해서 주로 육체적인 활동을 하는 공간이다. 오마이뉴스는 은퇴 이후에 인연을 맺은 곳이다. 여기서는 새로운 정보와 소식을 접하며,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마음껏 글로 풀어내는 정신적인 활동을 한다. 이런 육체적·정신적 활동을 하기까지는 내 나름의 계획과 노력이 있었다.
직장 생활 말년에 나는 은퇴 이후 어디에서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아갈지를 깊이 생각했다. 가장 큰 원칙은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후회 없이 해보자'는 것이었다. 은퇴 전에 부모님은 돌아가셨고 자식들은 독립해 가장으로서의 무거운 역할은 거의 끝났기에, 은퇴 이후에는 나를 위해 내가 원하는 것을 하고 싶었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형편 닿는 대로 나 자신을 위한 삶을 살고자 했다. 그리고 인생길을 같이 걸어온 아내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내면서 우리 부부의 노후를 아름답게 장식하고자 하는 기대가 컸다. 은퇴 이후에는 진정한 나의 삶이 시작될 것으로 여겼다.
텃밭은 나의 놀이터이자 힐링 장소
그래서 가장 먼저 주말농장으로 가꾸던 텃밭의 규모를 늘렸다. 직장 생활에 쫓겨서 텃밭의 일부만 채소를 가꾸고 나머지 상당 부분은 묵혀두고 있었는데, 은퇴 직후부터 놀고 있던 땅을 개간하기 시작했다.
포클레인을 동원해 텃밭 농장의 배수로를 정비하고, 농작물 재배에 필요한 물을 확보하기 위해 우물도 팠다. 낡은 울타리를 걷어내고 새롭게 단장을 했다. 작은 관리기를 장만해 묵은 땅을 갈아엎었다. 잡초가 나는 것을 방지하려고 부직포를 깔았다. 이렇게 텃밭 농장의 대체적인 형태를 갖춰나가면서 농작물들이 자라게 될 터전을 만들었따.
텃밭은 내가 흙을 가지고 노는 일종의 놀이터인 셈이다. 텃밭 농사는 내가 40대 후반, 우연한 기회에 채소를 가꾸기 시작하면서 어린 시절에는 느끼지 못했던 농사의 매력에 빠져들어 어느새 취미가 됐다.
지금은 단순히 시간을 때우는 취미 정도가 아니라 하루 일과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농기구로 흙을 파고 뒤집고 고르는 게 일이 아니라 놀이처럼 느껴진다. 내가 가지고 노는 흙에 농작물의 씨를 뿌리고 모종을 심는다. 작물들을 가꾸고 자라는 과정을 쭉 지켜보는 것도 하나의 놀이처럼 재미가 있다.
다행히 아내도 식물을 좋아하여 농작물을 가꾸는 것에 정성을 들인다. 우리 부부는 텃밭에서 가끔은 티격태격하지만, 대부분은 알콩달콩 즐겁게 시간을 보낸다. 텃밭은 나의 놀이터일 뿐만 아니라 우리 부부의 힐링 장소이기도 하다.
세상과의 소통 창구로 찾게 된 시민기자제도
그런데 텃밭 농사로 은퇴 이후의 생활이 어느 정도 안정됐지만, 그것만으로는 채워지지 않는 가슴속 공허감이 남아 있었다. 뭔가 세상과 소통하면서 나의 이야기를 풀어놓을 수 있는 소통 창구가 필요했다.
그래서 언제든지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수단으로 글쓰기를 하고자 했던 것이다. 작가라고 불릴 정도의 뛰어난 글쓰기 능력은 아니지만, 그런대로 나의 마음속 이야기를 표현할 정도의 글쓰기는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다. 하지만 세상을 향해 어디에 어떻게 글을 써야 할지 막막했다.
과거의 한때 나는 글쓰기를 한 적이 있긴 하다. 텃밭 농사를 하기 한참 전, 30대 후반부터 40대 후반까지 10여 년 동안 오마이뉴스가 아닌 여러 일간지, 주간지 신문과 잡지에 독자 투고와 독자 칼럼을 써서 게재했다. 독자 투고는 500자 내외, 독자 칼럼은 1000자 내외의 짧은 글이었지만, 나의 목소리를 글로 담아내는 것에 재미를 느꼈다. 텃밭 농사를 하기 전, 나의 주된 취미는 독자로서 신문 글쓰기였다. 텃밭 주말농장을 하면서 두 가지를 병행하기가 어려워 글쓰기는 중단했다.
세상과 소통하기 위해 예전에 즐겨 찾았던 신문사들의 독자 투고란을 다시 찾아봤다. 나의 또 다른 취미인 글쓰기를 되살리고 싶었다. 그런데 내가 글쓰기를 그만둔 이후, 10여 년 사이에 신문사들의 독자 언론 환경은 크게 바뀌어 있었다. 예전에 넘쳐났던 신문들의 독자 투고란은 아예 없어지거나, 있더라도 부정기적으로 한 주에 한 번 정도, 아니면 한 달에 한두 번 정도 독자들의 글을 싣고 있었다.
이제 예전 방식으로는 안 되겠다 싶어서 이리저리 찾아보다가 만나게 된 것이 오마이뉴스다. 이전에는 간혹 오마이뉴스의 기사를 접하긴 했어도, 오마이뉴스에 시민기자제도가 있는지는 자세히 알지 못했다. 제대로 모르고 지나간 세월이 아쉽기만 하다. 어쨌거나 나는 좀 늦게 오마이뉴스와 인연을 맺게 되었지만, 시민기자 관련 내용을 알고 나니 뭔가 새로운 길을 발견한 듯 한껏 기분이 들떴다.
시민기자로서 느낀 즐거움과 변함없는 열정
오마이뉴스에 가입해 시민기자로서 글쓰기를 한 지가 딱 1년이 지났다. 지금까지 50건의 기사를 썼다. 신문기자로서 기사를 쓰는 것은 독자로서 독자 투고를 하는 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글을 쓰는 신분이나 입장부터 다르니 글쓰기가 다를 수밖에 없다.
글쓰기가 늘어나면서 간혹 맞게 되는 생나무 퇴짜(비채택)는 맞을 때는 아프지만, 아픈 만큼 시민기자로서 성숙해졌다. 지난 1년 동안 오마이뉴스에서 기사를 읽고 쓰면서 즐겼다. 다른 기자들의 글을 읽으면서 공감하기도 하고, 역경을 이겨내는 삶의 모습에 감동받기도 했다. 기사를 쓰기 위해서 나의 일상과 주변에서 일어나는 현상들을 좀 더 깊이 있게 들여다봤다. 우리의 삶이 어떻게 하면 좀 더 나아지고 행복해질 수 있을까 생각에 잠겨보기도 했다.
지난 1년의 내 일상은 텃밭에서 농사짓고, 오마이뉴스에서 글을 읽고 쓰는 두 축을 중심으로 돌아갔다. 텃밭에서 건강한 먹거리를 수확하여 가족과 친지들에게 제공했고, 오마이뉴스에서 글쓰기를 통해 나의 목소리를 세상에 드러냈다.
나름대로 생산적인 활동이었다고 생각한다. 앞으로도 개인적으로 하고 싶은 일들이 많다.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사회 활동도 해 보고 싶다. 젊은 시절처럼 목표와 계획을 세워서 무엇인가를 이뤄나가고 싶은 의욕과 열정에는 변함이 없다. 끊임없는 노력이 계속되는 한, 나이는 들어가지만 정신적으로는 늙는 게 아니라 여전히 성숙해지며 익어가고 있다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