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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년 11월 17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지역화폐 예산확보를 위한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이 대표는 이 자리에서 "골목 경제의 마중물, 지역화폐 예산 민주당이 반드시 살릴 것"이라고 말했다.
 2022년 11월 17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지역화폐 예산확보를 위한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이 대표는 이 자리에서 "골목 경제의 마중물, 지역화폐 예산 민주당이 반드시 살릴 것"이라고 말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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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일 민주당이 당론으로 추진하는 지역사랑상품권 이용 활성화 법(지역화폐법) 개정안이 법사위를 거쳐 추석 전에는 본회의를 통과할 것으로 보인다. 핵심은 지역화폐 발행을 국가 재정으로 지원하도록 의무화하는 것이다. 그나마 다행이다 싶으면서도 여당이 '자식 세대 빚 잔치법'이나 '현금 살포성 포플리즘' 악법이라며 반발하는 것을 보니, 갈 길이 멀어 보인다. 만성적 내수 불황에 부모들이 다 죽을 판인데, 자식 세대인들 무사하겠는가?

정부는 작년에 이어 올해에도 지역화폐 예산을 아예 책정하지 않았다. 내년도 민생 예산안이 졸속인 이유는 보편 위험을 선별로 구제하는 잡다한 대책들로 가득하지만, 정작 내수 불황을 타개할 근본 대책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대부분 구제 지원 성격의 사후적 선별책들이고, 경기 대응성을 높일 수 있는 매출 증대 대책은 전무하다.

유일한 소비 진작책인 지역화폐 사업도 예산의 매출 승수가 미미한 온누리상품권 사업으로 대체해 폐지하겠다고 한다(승수효과는 정부가 지출하는 재정 규모 이상으로 투자와 소비를 일으켜 총수요 즉 사회 전체의 소득을 늘리는 효과다). 위기의 자영업자·소상공인에게는 긴축을 통한 경기 부양에 나서겠다는 말로 들린다. 일단, 사망선고를 받은 지역화폐 예산부터 살려낸 후, 지속 가능 사업으로 제도화해야 한다. 온라인상품권으로 지역화폐 공백을 메우려는 것이 졸속이거나 부실인 이유를 살펴보자.

내수 불황의 주범은 구조적 소득 충격

자영업 위기의 본질은 가계의 실질 소득이 기조적으로 감소하는 소득 충격에 빠졌기 때문이다. 경제가 성장해도, 수출이 블록버스터급으로 늘어난다 해도, 소비의 원천인 가계 소득은 역주행하거나 잘해봤자 제자리다. 내수 부문은 월평균 실질임금증가율이 3년 연속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할 만큼 심각한 상태다. 구체적으로, 2022년에 2.7% 성장했는데도 실질임금은 오히려 –0.2%로 감소했고, 2023년 성장률은 1.4%인데 실질임금은 –1.1% 역성장했다. 올해에는 수출 경제 호조에 힘입어 2%대 중후반의 성장률 전망이 우세한데, 2분기 실질임금은 여지없이 –0.4%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다. 이 정도면, 민생 경제는 구조적 소득 충격이 만성적 내수 불황으로 이어지는 경기 침체에 빠진 것으로 보는 것이 맞다.

신념과도 같은 부자 보편 감세를 과감하게 추진하면서도 민생 긴축재정을 고집하는 이유는 있지도 않은 낙수 효과에 대한 망상을 포기하지 못해서다. 이번에는 가계 소득 통계로 한 번 더 확인해 보자. '실질가계소득'은 2022년 2분기에 6.9%로 정점을 찍은 이후에 장기간에 걸쳐 제로성장 선(그림의 X축)을 넘나들며 아예 길게 누워버렸다. 2022년 –1.0%, 2023년 0.5%, 2024년 2분기 0.8% 등으로 0%대 성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자영업자가 대부분인 '실질사업소득'은 더 심각한데, 코로나 재정 지원이 종료된 2022년 이후 마이너스 성장이 일상화되는 국면에 진입했다. 가계소득이 구조적 요인으로 늘지 않는다면, 내수 업종이 지금의 매출 충격을 시장에서 자력으로 타개할 방법은 사실상 없다. 내수경제가 코로나 이전의 균형으로 돌아가기 어려운 이유다.

 실질가계소득·실질근로소득·실질사업소득 증감률 추이. 자료: 통계청 가계동향조사(가구당 월평균 가계수지)
 실질가계소득·실질근로소득·실질사업소득 증감률 추이. 자료: 통계청 가계동향조사(가구당 월평균 가계수지)
ⓒ 통계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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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채 함정에 빠진 자영업자 대출 역시 매출이 폭발적으로 늘지 않는 한, 시장 실패 영역에 진입한 것으로 보는 것이 맞다. 자영업자 코로나 대출은 2019년 685조 원에서 2024년 1분기 1056조 원으로 코로나 대출 증분만 371조 원이나 된다. 더 심각한 문제는 잠재 부실이 현실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자영업자 대출 연체율은 2019년 0.76%에서 올해 1분기 1.66%로 2배 이상 증가했고, 연체액은 2021년 2.6조 원, 2023년 8.4조 원, 2024년 1분기 10.8조 원으로 급증하는 등 부실 확산 속도만 보면 이미 선을 넘어선 것으로 보인다.

가장 큰 문제는 근본 대책이 부재하다는 것이다. 정부가 내놓은 민생 예산안은 보편 위험에 잡다한 선별 구제책으로 대응하는 것들뿐인데, 이는 정상 경제에서나 쓸 수 있는 수단들이다. 내수가 불황인데 소득 보전 대책이나 내수 진작책을 현금 살포라 매도하면서 경기 대응성 보편 대책을 내놓지 않는다. 대책은커녕 멀쩡한 지역화폐 사업도 없앨 판이다. 그나마 소비 진작책의 명맥을 유지해 온 지역화폐 예산마저 전액 삭감해 버렸다. 단언컨대, 근본 대책이 빠진 민생 예산안으로는 결코 작금의 내수불황 국면을 타개할 수 없다. 그렇다면, 지역화폐 예산 전액 삭감이 최악의 정책 실패인 이유를 살펴보자.

지역화폐 중단이 최악의 정책 실패인 이유

 경기지역화폐.
 경기지역화폐.
ⓒ 경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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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온라인상품권 사업 확대가 매출 감소 대책인 이유를 살펴보자. 매출 증대를 위한 소비 대책이라고 해 봤자 지역화폐와 온누리상품권 정도가 전부다. 이와 관련된 정부의 정책 방향은 너무나도 명확하다. 전국 기반의 온누리상품권 발행을 확대하는 대신, 정부는 지역화폐 지원에서 발을 빼겠다는 것이다. 기재부가 작년에 이어 올해에도 내년도 지역화폐 예산을 책정하지 않은 이유다.

정부가 지역화폐 사업을 반대하는 표면적인 이유는 중앙정부와 무관한 한시적 지원 사업이라는 것이다. 실제 목적은 이재명표 정책 꼬리표가 붙은 지역화폐 사업을 억제하는 데 있어 보인다. 관련 예산을 놓고 보면, 나름의 성과를 거둔 것으로 평가할 만하다. 지역화폐 예산은 코로나발 경기 충격으로 2021년에 1조 2522억까지 늘어났으나, 이후 2022년 7053억 원, 2023년 3522억 원, 2024년 3000억 원 등으로 꾸준하게 감소하고 있다. 반면, 온누리상품권 사업비는 올해 3514억 원까지 증가하며 처음으로 지역화폐 예산을 넘어섰다. 문제는 상호보완성이 있는 두 대책을 대체제로 취급하면, 총량 감소의 법칙이 작동한다는 것이다. 즉, 하나가 하나를 대체하기보다는 둘의 합이 줄어드는 부작용을 초래한다는 의미다.

그렇다면, 지역화폐 폐기가 최악의 정책 실패인 이유를 살펴보자.

첫째 이유는 투입 예산의 매출 증대 효과를 비교하면, 지역화폐가 온누리상품권 사업을 압도한다는 점이다. 동일한 예산이면 지역화폐 발행액 규모가 4배 정도 크다. 2023년의 경우, 지역화폐는 3525억 원을 투입해 20.9조 원어치를 발행했지만, 온누리상품권은 2898억 원의 사업비로 4조 원 발행에 그쳤다. 온누리상품권과 달리, 지역화폐는 중앙정부와 지자체 간 협력사업으로 추진되기 때문에, 지방정부가 참여해 예산의 발행 승수를 높이는 구조다. 따라서 중앙정부 예산이 늘기만 하면, 거의 모든 지자체가 "할인율 확대·매칭예산 증액" 등을 통해 지역화폐 발행 규모를 늘리게 된다.

지역화폐의 경우, 투입된 예산 대비 발행액 배수가 2021년 19배, 2022년 39배, 2023년 59배로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지방정부의 참여 유인이 높아지면서 예산의 발행 승수가 60배까지 올라온 것이다. 반면, 중앙정부 주도 사업인 온누리상품권은 예산의 발행 승수가 할인율에 따라 15배 내외 선에서 머물고 있다. 따라서 지역화폐 사업이 지역 경제나 상권 활성화에 적합한 소비 진작책임을 부인하기 어렵다. 예산의 매출 기여도가 미미한 온누리상품권 사업으로 지역화폐 공백을 메우겠다는 것은 잘못된 진단과 처방이다.

 지역화폐와 온누리상품권의 매출증대 효과 비교 자료: 행안부, 2024년 지역화폐 발행액은 23년 승수(59배)를 이용해 추정한 수치
 지역화폐와 온누리상품권의 매출증대 효과 비교 자료: 행안부, 2024년 지역화폐 발행액은 23년 승수(59배)를 이용해 추정한 수치
ⓒ 행정안전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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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이유는 지역화폐 사업이 "경제 위에 정치" 논리에 휩쓸려 지속 가능한 내수진작책으로 뿌리내리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자영업자·소상공인은 내수 불황의 직격탄을 맞아 코로나 때보다 더 심각한 매출 충격에 노출되어 있다. 설령, 지역화폐가 한시적 지원 사업이라 해도 정부가 먼저 나서 관련 예산을 확대하는 것이 맞다. 또한, 지역 경제에 뿌리내린 지역화폐 정책을 폐기해야만 한다면, 정부가 더 좋은 소비 대책을 내놓으면 된다. 물론, 내수 불황의 파고를 선별로 대처하겠다는 것은 대책 없는 대책에 불과하다. 자영업 위기 극복을 위해서는 지역화폐와 온누리상품권을 모두 확대, 발행하는 정책 조합이 필요하다.

지역화폐 사업을 제도화해 지속 가능 정책으로 추진

자영업 위기는 민생 확대 재정을 통해 특단에 특단의 대책을 마련해야만 진화할 수 있다. 민생지원금이나 물가지원금 등과 같은 소득보전대책을 추진할 제반 환경도 녹록지 않다. 그렇다면, 유일한 카드는 지역화폐 정책을 지속 가능한 소비 진작책으로 정착시키는 것뿐이다.

일단, 전액 삭감된 지역화폐 예산부터 온전하게 복원해야 할 것이다. 물론, 지역화폐 예산은 증액하고 삭감하는 예산심의 과정을 거치면서 일정 부분 복원되겠지만, 이러한 미봉책으로는 결코 지금의 자영업 위기를 극복할 수 없다. 경제 상황만 놓고 보면, 2021년 코로나 예산(1조 원 이상) 수준으로 확대해야겠지만, 최소한 작년 예산(3000억 원) 정도는 확보해야 한다.

더욱 중요한 것은 지역화폐 사업의 법제화를 통해 예산의 지속 가능성을 확보하는 것이다. 안정적인 예산확보만 가능하다면, 지역경제에 뿌리를 내릴 소비 대책이 될 수 있다. 민주당이 당론으로 추진 중인 지역화폐법을 조속히 통과시켜야 하는 이유다.

 송두한 민주금융포럼 상임대표(전 민주연구원 부원장)
 송두한 민주금융포럼 상임대표(전 민주연구원 부원장)
ⓒ 송두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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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화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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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두한 박사 ㆍ국민대학교 특임교수 ㆍ전) 민주연구원 부원장 ㆍ전) 농협금융연구소 소장 ㆍKDI 경제정책 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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