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박 6년 만이었다. 2018년 n번방 사태 이후 다시 폭발한 딥페이크(허위영상물) 성범죄 사태 앞에 정치권과 법조계, 전문가들은 이 6년이라는 공백에 주목했다. '같은 범죄가 왜 아직도 만연한가'라는 의문을 넘어, '정부는 그동안 무엇을 했는가'라는 성토다.
최근 '딥페이크 차단 6법', 일명 '서지현법'을 대표발의한 박은정 조국혁신당 의원의 발의 배경도 이 의문과 맞닿아 있었다. 법안은 서지현 전 검사가 이끌었던 법무부 디지털성범죄대응 TF에서 나온 권고안을 다수 반영했다. 윤석열 대통령 취임 직후 서 전 검사에 대한 법무부의 '원대복귀' 통보로 사실상 해산된 TF였다. (
관련 기사 : 법무부, 서지현 '원대복귀' 통보... "짐 쌀 시간도 안 주고 모욕적" https://omn.kr/1yxwm)
박 의원은 지난 12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진행한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딥페이크 이슈가 다시 부각되자마자 해산 당시의 기억을 떠올렸다고 전했다. 문제 의식은 "윤석열 정부가 이 문제를 키웠다"는 지적으로 나아갔다. 그는 "(딥페이크 범죄와 같은) 디지털성범죄는 관련된 전 부처가 합심해 달려 들어야 해결할 수 있다"면서 "그런 목소리를 낼 콘트롤 타워인 여가부 장관이 6개월째 공석 상태인 것"이라고 말했다.
박 의원은 검사 시절 대검찰청 공인 '성폭력 전문검사'로, 초임 때부터 성범죄 수사에 집중해 온 성폭력 범죄 수사 전문가다. 전문가가 바라 본 디지털 성범죄 해결의 핵심은 '시간'이었다. "전파는 너무 빠르고, 삭제는 너무 느린" 현실. 법안에는 TF가 권고한 '응급조치'를 담는 동시에, 아동·청소년에만 한정됐던 디지털성범죄에 대한 '신분 위장 수사'를 범죄 전반에 적용하는 안을 더했다. 범죄 포착과 동시에 피해 연령과 관계 없이 선제 대응이 바로 가능해야 한다는 시각에서다.
박 의원은 동시에 우원식 국회의장에게 "국회 차원에서 여야 모두 참여하는 (딥페이크 등 디지털성범죄 해결을 위한) 국회 특별위원회 구성"을 건의했다. 이미 여야가 각각 같은 문제 의식에서 특위를 구성하고 대응책을 내놓고 있는 만큼 발의에만 그칠 게 아니라 함께 성과를 보여야 한다는 요청이다. "그게 진짜 협치 아닌가요?"라는 말이 따라 나왔다.
아래는 박 의원과 나눈 대화를 일문일답으로 정리한 것이다.
"전 부처가 달려들어야 해결 가능... 윤 정부가 일 키웠다"
- 성폭력 공인 전문검사로 대검찰청에서 인증을 받을 정도로 검사 시절 성범죄 전담 검사로 오랜 기간 일했다. 수사 현장에서 딥페이크 범죄와 같은 디지털성범죄 사건을 바라볼 때 가장 시급하다고 생각했던 점은 무엇인가.
"2000년 검사가 된 이후 2002년부터 전담을 했으니 검사 시절 대부분 성폭력, 여성·아동 전담 검사로 일했다. 디지털 성범죄, 특히 불법촬영 문제는 평검사 시절엔 크게 이슈화 되지 않다가 IT와 휴대폰 기술이 발달하며 점차 문제가 됐다. 2018년 혜화역 시위에 여성들이 '국가는 없다'는 말을 내걸고 거리에 나왔던 건 디지털 성범죄에 정부 대응이 부재하다는 문제 의식이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에도 피해자들은 '불법 촬영물이 빨리 삭제가 안 되고 있다'고 호소했다. 전파는 너무 빠르고, 삭제는 너무 느렸다. 피해자들은 일상이 무너졌다. 당시 (이 문제를 놓고) 논의도 많이 했는데, (결론은) 국가 전체가 달려 들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법무부만 해서도 안 되고, 여성가족부를 포함, 과학기술 부처나 방송통신 부처 등 모두가 합심해 불법촬영물을 빨리 삭제하는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는 것이 답이었다."
- 그때로부터 벌써 6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그러나 같은 문제가 계속 반복되고 있는 상황이다.
"여성가족부 산하 기관인 디지털성범죄피해자지원센터 통계를 보면 (딥페이크 성착취물을 포함한 불법촬영물 중) 30%도 삭제 못 하고 있다. 그런데 피해는 전 세계에 퍼지는 거다. 30% 삭제됐다는 것도 맞는지 모르는 상황이다. 그렇기 때문에 문제가 됐을 때 초기에 빨리 삭제되는 것이 필요하다. 여가부 산하 센터만으로는 (이를 감당하기가) 불가능한 상태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심위)가 텔레그램과 어쨌든 협조 이메일을 주고받았다고 하는데, 경찰, 여가부와 창구를 공유해야 한다. 그런데 류희림 위원장은 방송장악에 골몰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는 상황이다. 방송 장악에 골몰할 게 아니라, 이처럼 중대한 국가적 범죄에 국가 기관 협력을 이끄는 역할을 해야 한다. 정부 기관이 유기적으로 대응해야 하는데, 제대로 되고 있지 않다는 우려가 있다."
- 이른바 '서지현법', 딥페이크 차단 6법을 발의했다. 서 전 검사가 팀장이었던 2년 전 법무부 산하 디지털 성범죄 TF 권고안을 많이 담았는데. 이 중에서도 가장 급하다고 보는 법안은 무엇인가.
"역시 빠른 조치다. 당시도 압수를 했지만, 고소하고 접수하고... 이런 절차를 진행한 후에는 이미 늦다. 그래서 이 법안에 응급조치를 담았다. 사건이 들어오면 사법경찰관이 (범죄가 빨리) 진행되기 전에 불법영상물에 압수 등 응급조치를 하도록 하는 안이다."
- 왜 2년 전에는 이들 권고가 법안으로 현실화되지 못했다고 보나.
"당시 서지현 검사가 2020년 디지털성범죄대응 TF 팀장을 맡았다. 이후 윤석열 정부가 들어섰고, 한동훈 법무부장관 취임이 임박했을 때 (법무부가) 서지현 검사를 원대 복귀 명령했다. 그리고 TF가 강제해산 되다시피 했다. (그 과정을 거치며) TF권고 내용들은 법무부 내에서 제대로 숙의되지 못했고, 사실상 폐기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 서 전 검사가 팀장이었던 디지털성범죄 TF의 권고안을 대부분 반영해 발의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2022년도에 제가 성남지청장으로 있을 때 (디지털성범죄 TF팀장이었던) 서 검사가 (법무부의 원대복귀 통보 이후) 성남지청으로 복귀했다. 그리고 제게 사직서를 제출했다. 굉장히 마음이 아팠다. 그 기억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딥페이크 범죄가 이슈화 됐을 때 당시 법무부에선 외면 당했던 권고안들을 법안으로 빨리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조국혁신당 모든 의원들이 서명해 발의하고 당론으로 채택했다. 전국 지역 시도당에선 입법화를 촉구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관련 기사
:
윤석열 취임 닷새만에 잘린 TF팀장 "딥페이크 고통, 국가 뭐했나" https://omn.kr/29ydi)
- 발의 기자회견 당시 윤석열 정부와 법무부장관이었던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의 책임론을 제기하기도 했는데. 디지털성범죄를 대하는 현 정부의 가장 큰 문제는 무엇이라고 보나.
"여가부장관 자리가 6개월 이상 공석이다. 콘트롤타워가 부재한 상황이다. 디지털성범죄는 여가부 뿐 아니라, 법무부, 방송통신위원회, 방심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국정원까지 불법촬영물 정보를 관할하는 모든 부처가 합심해야 하는 사안이다. 그런 목소리를 낼 여가부 장관이 없는 것이다. 각 부처가 따로따로 단발적으로 대응하는 상태로는 제대로된 대처를 하기가 어렵다. 윤석열 정부가 이 문제를 키웠다고 본다."
- 문제 해결을 위해 부처 간 연결이 중요하다는 말인데.
"영국의 경우 정부 산하기관으로 CEOP(아동 착취 및 온라인 보호센터)라고 있다. IT 회사에서도 파견을 나오고 각 부처 공무원과 경찰들이 함께 들어가 불법착취물을 삭제, 피해자를 보호하는 일을 2006년부터 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어떤가. 범죄지 토지관할 문제만 봐도 그렇다. (디지털 성범죄는) 누가 올렸는지 당장 알 수가 없다. 관할을 찾는다고 사건을 핑퐁 하고 있는 상황인데, 그 과정에서 불법촬영물은 일파만파 전파된다. 그래서 법안에 담은 게, 접수가 되면 관할을 빨리 정해서 하라는 규정이다. 가장 중점은 '빨리'다. 빨리 피해자의 불법착취 영상물을 삭제하고, 빨리 가해자에 대한 수사가 진행돼야 한다."
- 법안에 담긴 디지털성범죄 전반에 대한 위장 수사 도입은 어떤 효과를 기대할 수 있나.
"이미 아동·청소년 성범죄에는 가능한 수사다. 그걸 그대로 성인 대상 범죄에도 규정한 것이다. 경찰이 신분을 위장해 텔레그램에 들어가 증거를 수집하려 해도, 피해자가 아동 또는 청소년인 경우에만 위장 수사가 가능한 상황이다. 아동이든 성인이든 피해가 극심한 디지털성범죄를 아예 선제적으로 차단하려면, 더 이상 범죄가 진행되지 않도록 하는 방법이 필요하다. 저 뿐만 아니라, 국민의힘에서도 (비슷한 내용이) 발의 됐다. 그런데 (정부는) 거꾸로 이 디지털성범죄 위장수사 예산을 절반 가까이 깎았다고 한다. 깎을 게 아니라 확대해야 한다."
"모든 국민이 피해자... 여야 모두 머리 맞대야"
- 딥페이크 성범죄를 바라보는 여야의 문제 의식이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그래서 국회의장께서 국회 차원에서 (디지털성범죄 해결을 위해) 여야 모두가 참여하는 특별위원회를 구성해주셨으면 좋겠다. 그게 진짜 협치 아니겠나.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에서도 각각 특위를 만들었다고 들었다. 그럼 모든 당이 합쳐서 이 법안에 머리를 맞대고 어떻게 딥페이크를, 디지털성범죄를 차단할 것인가 고민할 수 있지 않겠나. 국민 모두가 피해자다. 여야가 해결책을 내면, 국민들께도 바람직한 모습을 보일 수 있지 않겠나."
- 법안 발의에 그치고 말 것이라는 우려도 많다. 특위가 구성된다면, 어떻게 진행돼야 한다고 보나.
"여야 모두 반대할 일이 없는 사안이다.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법제사법위원회, 여성가족위원회, 교육위원회 등 (이 문제와 연관된) 모든 상임위원회가 함께 들어와 논의를 했으면 좋겠다."
- 딥페이크 범죄의 경우, 법원의 '솜방망이 처벌'도 도마에 오른다. 노출 정도로 죄의 무게를 재거나, 피고인의 나이와 가족의 선도 의지 등이 유리한 양형으로 반영되곤 한다. 이러한 양형 문제에 대해선 어떤 생각을 갖고 있나.
"집행유예율이 일단 너무 높다. 딥페이크 성범죄 뿐 아니라 성범죄 전반에 양형이 낮다는 비판이 많았다. 이 법안에는 피해자 의사를 양형에 적극 반영하는 내용을 담았다. 양형 요소에 피해자를 중심에 놓고 고려해야 한다는 걸 기준으로 삼았다. 피해자의 회복 정도, 피해자의 처벌 의사 등이 충분히 반영되도록 했다. (지금까지는) 양형에 피해자가 의견을 낼 수 없었다. 피해자 치유의 첫 걸음은 정의로운 처벌이라고 생각한다."
- 재판 과정에선 어떤가.
"보통 형사 사건에서 피해자는 재판에서 사라진다. 기소 이후 재판에선 피해자보다 가해자에 대한 변호가 우선 눈에 띄는 게 사실이다. 가해자 중심으로 재판이 진행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특히 성범죄 사건의 경우, 피해자의 과거 성적 이력 등으로 흠집을 내거나, 심지어 피해자를 공격하는 심문이 이뤄지기도 한다. 미국에선 성범죄피해자 보호법(Rape shield law)이 있는데, '이 사건'과 관계 없는 피해자의 이력들이 재판에 나오지 않게 하도록 하는 법이다. 그 부분도 이번 법안에 있다."
- '국가 전체가 달려들어야' 해결되는 문제라고 했다. 같은 선상에서, 형벌 강화만이 답이 아니라는 시각도 나온다. 성인지 교육 등 디지털 성범죄를 다루는 사회 전반의 분위기를 전환해야 한다는 지적인데. 국회는 어떤 노력을 할 수 있을까.
"맞는 말이다. 가해자의 75% 이상이 10대 아닌가. '장난으로 만들었다'는 인식을 막도록, 성인지 교육부터 AI기술에 대한 '책임'을 강조하는 교육이 필요하다. 딥페이크 범죄가 가벼운 장난이 아니라, 중대한 성적 침해 행위, 누군가의 신체를 해하는 행위라는 것을 인지하게 해야 한다. 민주시민을 위한 교육이다. 자기가 존중 받고 싶은 만큼 타인도 존중해야 한다는 그런 교육이 분명히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