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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복무 중 정신질환이 생겼지만 보상은 아예 꿈도 못 꾸죠."

지난 2021년 11월 육군 훈련소에 입소한 이한결(30)씨는 우울감과 자살 충동 증세로 한 달 만에 군 병원에서 '적응장애' 진단을 받았다. 통제된 공간에서 단체 생활을 해야 하는 등 군입대로 생긴 정신질환이었다. 이씨는 훈련소를 마치고 자대 배치를 받고도 약물 치료를 지속했으나 증상은 쉬이 호전되지 않았다. 오히려 자대에 와서는 양극성 정동장애와 편집성 조현병으로 추가 치료를 받으면서 남은 복무 기간을 다한 뒤 만기 전역했다.

훈련소에서 생긴 정신질환들은 전역 이후에도 이씨를 따라다녔다. 그는 지금도 정신과 외래 진료를 받으면서 망상·조증·우울증 치료를 병행하고 있다. 이씨는 12일 <오마이뉴스>와 한 통화에서 "군대에서 다른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저를 험담하고 비난하는 소리처럼 들려서 고생을 했는데 전역하고도 그런 소리들에 대한 민감성이 높아 계속 진료를 받고 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씨는 전역 이후 국가로부터 아무런 보상을 받지 못했다. 군인재해보상법 제33조에 따르면 군복무 중 생긴 부상과 질병으로 심신장애 판정을 받고 퇴직하거나 퇴직 후 6개월 이내에 심신장애 판정을 받은 군인에게는 장애보상금이 지급된다. 만기 전역한 이씨의 경우 '6개월 이내'라는 문구가 문제가 됐다. 의료상 진단과 별개로 장애인복지법상 정신장애 등록을 위해서는 최소 1년 이상 정신과 치료를 받았다는 진료 기록지를 제출해야 하는데, 복무 당시 치료를 시작해 전역한 지 1년이 훌쩍 넘은 지금까지도 장애 등록 절차를 통과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씨는 "신체·발달장애 등 장애를 뚜렷하게 확인할 수 있는 다른 장애 유형과 달리 정신장애는 외래 치료와 약물 복용을 꾸준히 하더라도 서류상으로 장애를 증명하는 게 굉장히 어렵다. 엄격한 서류 심사 기준 탓에 실제 일상생활이 어렵거나 치료받은 지 1년이 훨씬 넘어도 장애 등록이 나오지 않을 수 있다"라며 "그런 상황에서 군인재해보상법상 퇴직 후 6개월이란 기간을 맞춰 보상을 신청하고 받는다는 건 아예 꿈도 꾸지 못한다"라고 말했다.

보건복지부 장애정도 판정기준에 따르면 정신장애 진단을 받으려면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로부터 1년 이상 정신과 치료를 받고 그중 3개월 이상 약물치료가 중단되지 않아야 한다. 복지부가 규정하는 정신장애 유형은 조현병·조현정동장애·양극성정동장애·재발성우울장애·기질성정신장애·강박장애·투렛장애·기면증 총 8가지다. 훈련소 입소 직후 이씨에게 생긴 '적응장애'는 여기에 해당하지 않는다.

이씨는 "군인재해보상법이 정신장애 특성을 반영해 현실적인 기간을 고려하는 방향으로 개정될 필요가 있다"라며 "군복무 중이거나 전역 이후 정신장애 판정을 받은 사람들에게 그동안 보장되지 않았던 재해 보상이 이뤄져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장애보상금 판정 기간 퇴직 후 6개월→18개월로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서미화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군복무 중 부상과 질병으로 정신장애 판정을 받은 군인의 경우 장애보상금 판정 기간을 퇴직 후 6개월 이내에서 18개월 이내로 확대하는 '재해군인보상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 발의하기로 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서미화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군복무 중 부상과 질병으로 정신장애 판정을 받은 군인의 경우 장애보상금 판정 기간을 퇴직 후 6개월 이내에서 18개월 이내로 확대하는 '재해군인보상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 발의하기로 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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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해병대 채 상병 사망 사건', '육군 훈련병 얼차려 사망 사건' 등에서 군 장병 인권과 복리후생이 충분히 보장되느냐는 지적이 제기되는 가운데, 전역 후 정신장애 판정 기간을 늘리는 법 개정안이 오는 19일 발의된다. 군에서 정신장애를 얻은 장병들이 한참 짧은 장애보상금 지급 기간으로 제대로 된 보상을 받지 못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서미화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군복무 중 부상과 질병으로 정신장애 판정을 받은 군인의 경우 장애보상금 판정 기간을 퇴직 후 6개월 이내에서 18개월 이내로 확대하는 '재해군인보상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 발의한다. 현행법은 판정 기간을 퇴직 후 6개월로 짧게 규정하고 있어 전역한 군 장병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나 조현병 등 정신장애를 뒤늦게 진단받더라도 보상 지급이 어렵다는 게 의원실의 설명이다.

장애계에서도 비슷한 문제 제기가 나왔다. 한국정신장애인연합회는 "현행 군인재해보상법에서는 신체적 장애 특성만 고려돼 온 것이 사실"이라며 "정신장애 특성은 다른 장애와 달리 육안으로 확인하기가 어렵고 검사로 밝히기도 어려우며 장기간 치료를 요하는 경우가 많아 군복무 중 또는 전역 이후에도 짧은 기간 내 장애 등록을 하기가 어렵다"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군대 내 폭행, 부조리, 통제된 환경, 외상적 사건 등으로 평생에 걸쳐 씻기 어려운 정신적 질병을 얻었음에도 국가가 이를 보상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인데 이번 개정안으로 정신장애 판정 기간이 늘어난다면 국가가 공무상 심신장애를 입는 모든 대한민국 국군을 형평성 있게 보상하는 첫 단추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번 개정안을 대표 발의하는 서미화 의원은 "채 해병 사건으로 직업군인과 국군장병의 복리후생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높아지는 가운데 나라를 지키기 위해 헌신한 군인이 전역 이후 정신장애 판정 기간을 이유로 국가로부터 내쳐져서는 안 될 것"이라며 "법 개정을 통해 정신장애를 겪는 전역자에 대한 사각지대를 없애겠다"라고 밝혔다.

13일 기준 법안 공동 발의에는 김예지 국민의힘 의원을 비롯해 민주당 의원 10여 명이 참여한 상태다. 서미화 의원실은 추석 연휴 이후인 19일 이번 개정안을 공동 발의키로 했다.

#군인재해보상법#서미화#정신장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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